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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덜 버는 여자가 가사노동을 더 하는 것이 당연한가

남자가 실직하거나 집에 있는 경우는? 안 그래도 남자 자존심 다치는데 뭐라 하지 말아라, 빨래 널고 걷는 정도만 도와줘도 얼마나 훌륭한 남편이냐, 남편 기죽지 않게 밥은 잘 해서 먹여라 등의 조언이 넘쳐난다. 그런데 맞벌이 부인이 집에 와서 오줌 튀어 냄새 나는 화장실 청소하고, 애들 숙제 봐주고, 시댁 경조사 선물 챙기고, 다음날 해먹을 음식 재료 다듬는 건 아주 당연하다. 돈 조금 더 버는 남자는 집에 들어오면서 양말 아무데나 벗어던지고, 밥 먹으라고 할 때까지 텔레비전 앞에 뻗어있고, 주말이면 밀린 잠 몰아 자느라고 아이 봐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 너무나 흔하게 듣는다.

  • 양파
  • 입력 2016.10.19 11:03
  • 수정 2017.10.20 14:12
ⓒAlamy

돈을 덜 버는 여자가 더 버는 남자보다 가사노동을 더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얼마 전에 받았다.

그럼 그렇게 시나리오를 짜보자. 매달 천~이천만원을 벌어오는 전문의 이예리씨와 번역가 강준혁씨 부부.

준혁도 이해한다. 부인 예리는 능력 있고 바쁘다. 준혁은 일 년에 한두 권 정도의 번역서를 내고, 예리의 연봉 1/10도 못 번다. 그러므로 웬만한 집안 일은 다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좀 심하다 싶을 때 있다. 예리의 브라까지 손빨래 다 해줘야 하는데 어쩌다가 잊어버리면, 나는 힘들게 돈 벌어오는 동안 너는 맨날 집에 있으면서 (나도 집에서 일 하거든??) 그 정도도 못하냐 잔소리 날아온다. 식성 까다로운 예리의 입맛에 맞춰 저녁 차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그렇지만 예리는 일찍 출근해서 아침 안 먹고 점심 도시락도 안 바라는데, 하루 한 끼 밥 차리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한다. 재택근무다 보니까 예리의 부모님도 툭하면 식당으로 불러서 일을 시킨다. 다행히 캐셔 봐라 뭐 그런 일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둘의 아이 현이를 돌보는 것이 준혁의 일이기 때문이다. 등교 준비하고 학교 데려다 주고 오후에 데려오기. 언뜻 보면 오전에 시간 엄청 많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 집 청소 해주는 도우미 아줌마 오시고 오후에 현이 과외 선생님들도 많이 오지만, 그 선생님들 관리, 도우미분 관리, 일 시키고 돈 지불하고 뭐 등등은 다 준혁의 일이다. 아무리 월요일에 도우미분이 오신다고 해도 예리가 생리하는 중에는 생리대 찬 휴지통을 주말 내내 둘 순 없으니, 그걸 버리는 건 준혁이 한다. 예리가 어디 학회 출장이라도 가면 여행 가방 싸야 하고, 옷 드라이 클리닝 맡기고 찾아오는 것도 꽤 귀찮다. 공과금 처리도 은근히 일이 많고 예리 친정 식구들 경조사 챙기는 것도 잦다. 이런 일들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힘들다 호소하면 예리는 한마디로 답한다. "그럼 때려 치워. 얼마 번다고 그렇게 징징짜고 그래?" 그래서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자가 더 버는 집에서, 당신은 위와 같은 커플을 아는가? 그 반대는 어떤가? 여자가 덜 번다고 해서 육아와 가사 떠맡고, 재택근무라면 시댁 도우미 대기조인 케이스 아주 많다. 학교, 학원에서도 엄마한테 전화하고, 가사 도우미가 있다고 해도 구하는 사람도, 관리하는 사람도 보통은 부인이다.

남자가 실직하거나 집에 있는 경우는? 안 그래도 남자 자존심 다치는데 뭐라 하지 말아라, 빨래 널고 걷는 정도만 도와줘도 얼마나 훌륭한 남편이냐, 남편 기죽지 않게 밥은 잘 해서 먹여라 등의 조언이 넘쳐난다. 그런데 맞벌이 부인이 집에 와서 오줌 튀어 냄새 나는 화장실 청소하고, 애들 숙제 봐주고, 시댁 경조사 선물 챙기고, 다음날 해먹을 음식 재료 다듬는 건 아주 당연하다. 돈 조금 더 버는 남자는 집에 들어오면서 양말 아무데나 벗어던지고, 밥 먹으라고 할 때까지 텔레비전 앞에 뻗어있고, 주말이면 밀린 잠 몰아 자느라고 아이 봐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 너무나 흔하게 듣는다. 부인이 찾아주지 않으면 양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냉장고에 반찬 다 있어도 못 챙겨 먹는다는 남자도 많다. 그래도 용서받는다. 힘들게 돈 버니까. 여자는 돈 잘 벌어도 남편 기죽지 말라고 셔츠 다림질 해주고 아침밥 차려주는 사람이 칭찬받는다. 난 지난 몇 십년간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남자와의 인터뷰 중에 부인 옷을 손 빨래 해주거나 드라이 클리닝 다 맡아준다는 자랑, 애들 학교 준비물 다 맡아서 하고 부엌 청소도 겁나게 잘한다는 자랑은 들은 적이 없다. 그 반대는 많이 봤다. 잘나가는 여자지만 아이들과 남편 건사는 겁나게 잘 한다는 종류.

결론1. 어차피 여자에게 떠넘길 거였으면서 돈 덜 벌어서 그러는 것처럼, 곧 "네가 능력이 없으니 당연히 가사일 같은 건 네가 더 해야지"란 식으로 치사하게 합리화하지 말지?

결론2. 그럼 누가 더 합니까? 글쎄요. 친구와 같이 하우스메이트로 산다면 어떻게 나눠서 하시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상대와 내가 동등하다고 보고, 최소한의 배려만 한다 해도 쓰레기통 절대 안 비우고, 밥 차려줄 때까지 널부러져 있진 않겠죠? 당신은 어질러 대고 친구는 혼자 부엌 정리하고 청소하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 나도 힘들다 하는데 "그 따위로 유세하려면 일 관두고 풀타임으로 내 뒷바라지 해"라고 하지도 않겠죠. 같은 사람으로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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