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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독일에서 꼭꼭 숨은 최순실 모녀는 20개 방의 저택에서 10여명의 지원단과 살고 있었다

  • 원성윤
  • 입력 2016.10.18 08:02
  • 수정 2016.10.18 09:50
ⓒ한겨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최순실(60), 정유라(20) 모녀를 찾아 나선 4박5일 여정은 쉽지 않았다. 물어 물어 찾아가 보아도 이미 홀연히 사라져버렸거나, 다시 막막한 길과 맞닥뜨렸다. 분명히 그들을 본 사람들은 있는데 어디에서 사는지는 아예 모르거나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엄마와 딸이 자신들의 흔적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겹겹이 성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아낸 건 있다. 정유라씨는 20개 안팎의 방이 딸린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데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 큰 집엔 정씨 외에도 한국에서 데려온 그의 보모, 정씨를 지원하는 8명 안팎의 사람들, 이들 정씨 지원단의 식사와 청소를 거드는 여성이 함께 지내는 것으로 <한겨레>의 독일 현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정씨를 돕는 8~10명가량의 지원단은 통역, 운전 등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으며 독일 현지에서 고용된 사람도 있고 서울에서 온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가 사용하는 말과 그가 아끼는 10마리 정도 개를 보살피는 것도 정씨 지원단의 주요 일이라고 ‘최씨 모녀’의 거처 사정을 아는 이가 전했다. 최순실씨가 이 집에 지금도 상주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12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선수가 독일 예거호프 ·호프구트 승마장에서 훈련 받는 모습. 정 선수 쪽은 대한승마협회에 ‘국가대표 훈련 촌외(국외)훈련 승인요청서’와 함께 자신의 훈련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을 증명용으로 제출했다. 노웅래·김현권 더민주 의원실 제공

‘최씨 모녀’는 거처가 누설되지 않도록 보안 유지에 철저했다. 이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이 가끔 바깥출입을 해야 할 경우 정씨의 지원단 일행이 차에 태워 데려다주고 데려오곤 했다. 동양인이 많지 않은 이 지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여러 사람의 눈에 띌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입단속도 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의 사정을 잘 아는 프랑크푸르트의 한 40대 남성에게 위치를 물었지만 “알려고 하지 말라. 모르는 게 더 좋을 거다”라며 입을 닫았다. ‘최씨 모녀’의 거처는 독일 헤센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의 북쪽 외곽에 있으며 기자가 상당히 거리를 좁혀보기도 했으나 끝내 찾지는 못했다. 거처를 꽁꽁 숨긴 이들을 두고 독일의 한 교민은 고개를 저으며 짧게 말했다. “꼭 비밀의 성 같다.”

<한겨레>는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독일에서 최씨 모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미르재단, 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에 얽힌 최씨에 관한 의혹들과 그의 딸 정씨의 대학 특혜 입학 의혹에 대한 당사자들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들에게 다가가는 길목은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최씨가 거처를 숨기면서도 독일에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경우는 외동딸 정씨가 관련돼 있을 때다. 그는 딸의 승마 훈련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월엔 케이스포츠재단과 함께 정씨의 거처를 구입하려고 독일 부동산에 직접 연락하기도 했다. 그는 한 달 전인 9월까지만 해도 한인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극히 소수의 부동산 중개인들에게 최씨의 연락처가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하지만 최씨의 전화를 직접 받았다는 프랑크푸르트 쪽 부동산 중개인은 “나중에 최 회장님(최순실)의 전화번호로 다시 걸면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바꾸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최씨만 전화를 거는 일방 통화였다.

‘최씨 모녀’의 또 다른 흔적들이 정씨가 대한승마협회에 제출한 ‘국외훈련 승인요청서’에 남아 있다. 이 요청서는 정씨가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해 독일에서 훈련하고 있다며 2015년 10~12월까지의 훈련수당 등 지원을 요청한 서류다. 정씨는 여기에 2015년 10~11월까지 훈련장과 자신의 독일 거주지를 프랑크푸르트 외곽 비블리스에 있는 예거호프 승마장이라고 동일하게 적었다.

좁은 숲길을 달려 도착한 예거호프는 상당한 크기의 승마장이었다. 울타리가 승마장 전체를 에워싼 채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등 보안이 철저했다. 승마장 후원에 참여한 독일 기업의 이름들이 적힌 간판도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명단 중에 한국의 기아자동차도 보였다. 울타리 바깥에도 훈련장이 여러 개였고, 울타리 안쪽에는 말을 관리하는 마방과 훈련장이 추가로 있었다. 특히 정원이 있는 거주 시설과 고급 레스토랑까지 갖춘 곳이었다. 마차를 타고 결혼식을 성대하게 여는 이벤트도 열리는 승마장이었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운 독일 현지 직원들은 정유라씨를 정확히 기억했다. “말이 4마리였고, 같이 지내는 개가 9마리 정도였다. 정씨와 같이 지내는 다른 가족도 있었다. 흰색과 비슷한 색상의 9인승 차를 타고 다녔다. 훈련할 때는 독일인 코치가 와서 지도했다. 그런데 정씨가 지난 5월 정도에 이사를 갔다. 큰 호텔을 사서 프랑크푸르트 쪽으로 갔다고 다른 직원한테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인 것을 안 뒤엔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손으로 ‘엑스’(X) 자를 그리며 “일하러 가야 한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정씨가 2015년 10~11월까지 예거호프 승마장에서 훈련하다 그해 12월부터 훈련장을 바꿨다고 승마협회에 보고한 곳이 호프구트 승마장이다. 예거호프 승마장 내부 숙소에 계속 살면서 훈련할 때만 변경된 훈련장인 호프구트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호프구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도시 리더바흐에 있다. 이곳은 전문 선수뿐 아니라 승마를 취미로 배우는 아이들도 강습을 받는 승마장이다.

이곳에서 훈련 중인 독일 청년과 승마장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정씨와 모친 최씨를 모두 기억했다. 이들은 “정유라가 현재 이곳에서 훈련하고 있다”고 했다. 또 “엄마도 이곳에 종종 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승마장의 훈련 책임자인 다니엘라 뷔덴벤더씨는 “정씨를 9월까지는 보았으나 최근에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삼성이 구입해 정씨가 사용하도록 해서 특혜 논란이 일었던 명마 ‘비타나V’에 대해선 “현재는 그 말이 이곳(호프구트 승마장)에 없다”고 말했다.

역시 정씨는 기자가 이 승마장에 들렀던 12~15일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말과의 호흡이 중요한 승마의 경우 말과 선수 모두 훈련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씨는 지난 9월 말부터 자신과 모친 최씨, 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뒤 훈련장을 포함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 선수가 지난해 10월~11월 승마훈련을 받았던 독일 헤센주 예거호프 승마장 입구의 지난 15일 풍경. 프랑크푸르트/송호진 기자

정씨의 독일 코치인 크리스티안 캄플라데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정유라와 같이 훈련하고 있지 않다. 지금 유라가 독일에 있지만 훈련하는지는 모르겠다. 1~2주 후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만 말했다. 최씨 모녀가 독일에서 사용하는 돈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코치 급여를 누구에게 받는지 등을 물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최씨 모녀와 닿을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는 노숭일씨란 사람이다. 노씨는 정씨의 독일 훈련장을 제공한 사람이란 영문 증명서를 승마협회에 제출한 이다. 하지만 그가 증명서에 남긴 프랑크푸르트 외곽 도시 주소지로 찾아갔으나 노씨는 살고 있지 않았다. 해당 주소지엔 독일인, 러시아인이 살고 있었다. 허위 주소였다. 정씨가 협회에 제출한 국외훈련 요청서의 훈련일지가 일부 거짓으로 기록된 게 밝혀진 데 이어 훈련장을 제공했다는 사람의 주소지도 가짜였던 것이다. 노씨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었지만 ‘메시지를 남기라’는 기계 음성으로 넘어갈 뿐 그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노씨는 정씨의 독일 생활 지원단의 책임자처럼 최씨 모녀 곁을 지켰다. 지난 1월 최씨가 딸 정씨의 새 거처를 마련하려고 호텔 구입을 알아볼 때 부동산 중개인에게 대신 연락을 해온 사람도 노씨다. 그는 부동산 업자를 만날 때 정씨를 돕는 독일 현지 직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나기도 했다. 노씨는 정씨가 숙소로 활용했던 예거호프 승마장 울타리 안쪽에서 나와 이곳으로 찾아온 부동산 중개인을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정씨와 같이 살거나 지근거리에서 돕고 있다는 뜻이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지난 9월까지 승마훈련을 했던 호프구트 승마장의 지난 15일 모습. 정씨는 10월 들어 훈련을 중단한 상태다. 이 승마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외곽 리더바흐시에 있다. 프랑크푸르트/송호진 기자

최씨는 지난 1월 이런 노씨를 내세워 호텔 구매를 시도했으나 당시엔 성사되지 않았다. 최씨는 부동산 업체가 소개한 프랑크푸르트 외곽 도시의 20억원가량의 3층짜리 호텔(약 300평 규모)을 직접 봤으나 매매 가격 이견으로 구매를 접었다. 1층에 상가가 있는 호텔이었다. 현지 부동산 업체 사이에선 “구매 가격 문제라기보다 외부로부터 더 차단된 거처를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는 얘기도 나왔다.

새로 얻은 곳이 바로 그런 곳이라고 이곳 사정을 아는 이가 전했다. 도심이 아닌 숲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새 거처는 5월 전후로 구한 듯 보인다. 딸 정씨가 예거호프 승마장 숙소에서 “호텔을 샀다”며 이사한 게 그즈음이다. 하지만 숙박업을 해오던 호텔을 산 것인지, 호텔 전체를 임대한 것인지, 호텔처럼 방이 많은 큰 집을 구한 것인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상한 건 최씨 모녀의 거처에 대한 정보가 한인 사회에 거의 떠돌지 않는 점이다. 한인이 독일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집을 구하면 적어도 한인 부동산 업자들에겐 소문이 날 법한데 그러지도 않았다. 딸 정씨를 돕는 독일 현지 지원단 가운데 독일어에 능통한 직원이나 한인 변호사가 나서 매매 당사자와 비밀리에 계약을 진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기자는 최씨 모녀의 새 거처가 프랑크푸르트 인근 도시란 얘기를 접하고 우선 쾨니히슈타인 시내의 호텔을 모두 찾아갔으나 이들 모녀는 없었다. 그러던 중 한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길과 가깝다는 얘기가 추가로 들려왔다. 그 버스 뒤를 따라 호텔을 모두 확인하던 기자의 눈에 문득 이 버스가 정차하는 어떤 곳에서 한참 더 올라가면 있는 고급 집들이 들어왔다.

숲을 끼고 있는 곳. 말을 탈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공간이 있는 곳. 외부의 시선이 차단된 높은 울타리가 있는 집들. 그곳엔 딸 정씨가 지난 5월까지 살았던 예거호프 승마장에서 사용한 차와 색상과 크기가 비슷한 차도 주차돼 있었다. 하지만 그 동네 주변을 둘러보고 확인하는 사이 어느새 그 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최씨 모녀는 이 울타리 너머에서 비밀의 성을 쌓고 있는 것일까. 아님 다른 곳일까.

한 교민은 프랑크푸르트 북쪽 외곽의 어느 특정 지역이 새 거처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 자격으로 독일을 방문했을 때 지근거리에서 도왔던 독일의 주요 한인 인사가 그곳에 거주하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 때 도왔던 일부 한인들이 비선 실세인 최씨와 그의 딸의 독일 생활도 은밀히 돕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정이다. 이런 추측도 최씨 행방이 한인 사회에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나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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