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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교실'을 만들던 KBS PD는 '교육개혁'을 위해 교육운동단체 상근자가 되었다

[짬] 교육운동단체 상근자 된 정찬필 피디

공영방송의 ‘잘나가는’ 피디가 지난주 사표를 냈다. 몸값을 높여 다른 방송으로 옮기거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서 프리랜서를 선택한 게 아니다. 정찬필(48) 피디는 22년째 근무해온 한국방송공사(KBS)를 그만두고, 교육운동 단체인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사무총장으로 옮긴다. 직업 안정성과 급여에서 두 일터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왜? 그가 2014년부터 3년째 제작해온 다큐 ‘거꾸로 교실 프로젝트’에 너무 깊이 빠진 결과다.

“활력 잃은 아이들 변화 보고 결심”

‘거꾸로 교실’은 교사가 수업시간에 강의를 하지 않고 수업 내용 관련 동영상을 만들어 학생들이 미리 보고 오게 하고 수업시간에는 학생 주도로 과제 수행, 질문, 토론을 하는 수업 방식이다. ‘거꾸로 교실’(플립 러닝)은 미국 콜로라도주의 화학 교사인 존 버그먼이 시작한 것으로, 정 피디가 2013년 2월 국외 교육 콘퍼런스에서 접한 뒤 방송에서 다뤄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4년 3월 3부작 <21세기 교육혁명-미래교실을 찾아서>, 2015년 <거꾸로 교실의 마법> 4부작, 2016년 <배움은 놀이다> 시리즈로 소개된 ‘거꾸로 교실’은 교육현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 교육법을 실험한 결과, 말문을 닫고 잠을 청하던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나면서 탐구심 넘치는 의욕적 학습자로 변신했다. 이런 변화의 모습이 전파를 탄 것을 계기로 ‘거꾸로 교실’을 실천하는 교사조직 미래교실네트워크가 들불처럼 확산됐다.

2014년 첫 방송 때 2개 학교 7명의 교사로 시작한 ‘거꾸로 교실’은 1년 뒤 교사가 1000명을 넘었고, 올해엔 1만5천여명에 이르렀다. 불씨를 던진 정 피디는 교실과 학생들의 극적인 변화를 지켜보다가 결국 온몸을 던지게 됐다. 주목할 만한 사회혁신가를 선정해 조건 없이 3년간 생활비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아쇼카한국은 정찬필 피디를 올해의 아쇼카펠로로 선정해 곧 발표할 예정이다. 그를 1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방송 제작도 영향이 큰데 왜 교육개혁에 직접 뛰어들었나?

“그동안 <다큐멘터리 3일> 등 환경과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오며 영향력을 경험했는데, 교육은 좀 달랐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들과 부대끼면서 거꾸로 교실의 교육개혁 방법을 전파하고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방송으로 학생들의 변화를 보여줘도 여전히 많은 교사들과 교육행정 관료들이 믿지 못한다. 이런 불신과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다. 방송보다 더 영향을 끼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공영방송 시사교양 피디는 부러움을 사는 직업인데.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했다.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외길뿐이라는 느낌이었다. 희망과 활력을 잃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실정일 텐데 내가 이걸 못 하고 죽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몰랐으면 모를까, 구명대를 던지면 저 아이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외면할 수 없었다. 피하면 범죄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 입시가 모든 교육개혁 시도를 왜곡시키는 현실인데.

“지금 대입 환경에서도 거꾸로 교실의 방법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선 현 평가제도에서도 학생들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또한 이미 정시와 수시의 비중이 역전되는 등 대학도 성적 위주에서 종합적 평가의 선발로 바뀌고 있다. 입시 때문에 교육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헛된 도그마다.

-교육개혁에 꽂히게 된 배경이 있나?

“학교 다니는 게 정말 힘들었던 나의 경험을 아이들에게서 다시 보았다. 난 고교 때 수학을 비롯해 많은 과목 낙제자였다. 수업을 못 알아들으니 엎드려 잠자는 수밖에 없었으나, 다행히 다시 따라갈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경험했다. (지금의 공교육에선) 낙오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수업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다리를 한번 놓치면 다시는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기 속도와 능력에 맞게 따라갈 수 있는 기회를 줬더니 변화가 시작되는 걸 봤다.”

-성과가 나타나는가?

“참여한 교사들이 변화를 경험하면서 열성적으로 홍보하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얼마 전 구글 임팩트 챌린지가 미래교실네트워크를 선정해 5억원을 지원받게 됐고, 경기도는 업무협약을 맺고 파주 영어마을을 미래교실네트워크의 연수시설로 제공했다. 2014년부터 대구교육청을 시작으로 각 교육청이 교사 연수 프로그램으로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과학교육에 거꾸로 교실을 도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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