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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 한 해 20만건, 현실 외면하는 법

자격정지 '1년'이면 (임신중절을 시행한)병원은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

  • 남궁인
  • 입력 2016.10.14 06:45
  • 수정 2017.10.15 14:12
ⓒ연합뉴스

사람은 처음부터 어떠한 행위를 하든 제약받지 않도록 태어났다. 그래서 세상에 혼자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사람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시작하자,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방해하고 무질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윤리였다. 또, 이 윤리 중에서 사회에 일정 이상 해가 될 수 있는 행위를 문서화한 것을 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은 법을 어긴 사람을 일정한 기준을 두고 처벌하기 시작했다.

태초에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만이 법으로 처벌되었다. 살인, 강도, 강간, 이런 것들은 만국 공통의 나쁜 행위이므로 지금도 변치 않고 모든 나라의 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통념이나 윤리상으로 그릇되며, 남에게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히지 않는 것까지 법으로 명시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들이 성매매, 마약, 동성 결혼, 안락사, 임신중절 등이다(남에게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히지 않는다는 해석에는 논란이 분분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살인, 강도, 강간 등과 대비되는 뜻으로 칭한다). 이 첨예한 화두들의 법적 허용 여부는 윤리적 해석에 따라 각 사회마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 이 사항을 어디까지 법으로 허용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나라의 윤리적인 해석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진보적인 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네덜란드는 기본적인 제약은 존재하지만, 위 다섯 가지 사항이 전부 합법이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네덜란드는 선진국이며, 아주 잘 돌아가는 나라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짐작하다시피,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수적 노선의 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매춘은 무조건 불법이다. 의학적 용도를 제외한 마약은 불법이다. 동성결혼은 무조건 불법이다. 장기 기증을 제외한 안락사는 무조건 불법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절은 모조리 불법이다.

첨예한 쟁점을 두고 법에서 무조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입법자나 법을 실제로 집행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편한 방식이다.

이 노선이 굳이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에서 통제해줄 부분은 통제해야 하고, 합법으로 풀리는 순간 법을 악용한 부작용들이 자꾸 비집고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법과 실제 사회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정말로 우리나라에 매춘은 단 한 건도 없는가? 정말로 우리나라에선 단호하고 엄격하게 한 건의 안락사도 일어나지 않는가? 정말로 특수한 상황을 빼고 임신중절은 단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성을 사고팔고, 적극적인 연명치료에 동의하지 않으며, 산부인과에 가서 현찰을 내고 임신중절을 한다.

실제로 매춘, 안락사, 임신중절이 살인이나 강간 같은 범죄였다면 절대로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경찰은 모든 매춘이 의심되는 업소를 매일같이 뒤집고 모든 중환자실이나 요양병원 기록부를 압수 수색하고 전국 산부인과를 감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사회적 용인이 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사회는 이런 모습이다. A와 B가 상호 동의하에 금전적 거래를 하고 성관계를 했다. 여기선 경찰이 모르니 대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A가 화대를 받고 성관계를 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러면 불법이므로 A와 B가 관련 규정으로 처벌된다. 또, C가 D 산부인과에서 50만 원을 주고 임신중절 시술을 받았다. 여기선 사회적으로 늘 벌어지는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C가 D 산부인과에서 임신중절을 받았다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면 불법이므로 C와 D가 관련 규정으로 처벌된다.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안락사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E는 연명치료만이 남은 사망을 앞둔 환자다. E의 가족들은 비용이 드는 신장 투석이나, 기타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기로 병원에 동의서를 쓴다. 그리고 E는 곧 사망한다. 여기서 E의 장례가 조용히 치러지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E의 사망 후 돌변해서 왜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냐고 법정에 소송을 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선 간접적인 안락사까지 무조건 불법이므로, 소는 성립한다. 그리고 기나긴 법정 투쟁이 시작된다. (물론 E의 가족들이 승소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러한 첨예한 쟁점을 두고 법에서 무조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입법자나 법을 실제로 집행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편한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문제에 있어 아주 깔끔하고 단호합니다' 라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견지할 수 있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무조건 관련 법규를 들이밀고 처벌하기가 쉬우며, 법을 완화시켰을 때 악용될 수 있는 부작용을 사전에 처단할 수 있다. 많은 나라들이 실제 이렇게 하고 있고, 이는 완전히 그릇된 방식은 아니다. 왜냐면, 반대로 이러한 문제를 합법화 했을 때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법에 적용받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가능성은 존재한다. 연명 치료를 맡은 의사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받아놓고도 언제 유가족이 돌변할까 노심초사하고, 산부인과 의사도 이미 사회적인 함의가 존재하고 환자도 동의한 임신중절임에도 언제 고발당할까 노심초사 해야 하며, 여성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임신중절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법이라는 짐까지 덮어써야 한다. 그래서 이 법과 실제 사회의 괴리에서, 충분한 각계각층의 사회적 논의를 거쳐, 현대 사회의 윤리적 측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대다수의 의견이다.

불법으로 엄연히 규정되어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임신중절이 필요한 20만 명은 시술 후 몸조리를 하면서도, 범법자라는 불안감을 견뎌야 하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각 산부인과에서 임의로 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서 오늘 글의 논지는, 최근 임신중절을 둘러싼 법 개정에 있다. 일단 현재 임신중절에 관한 형법(제269조, 제270조)은 이렇게 되어 있다.

(모자보건법 14조에 의거해 강간, 근친, 산모의 건강 위협 등으로 합법적이지 않을 경우)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임신중절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임신중절하게 한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불법이므로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임신중절은 정식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해에 행해지는 임신중절은 자그마치 20만 건(의료계 추산, 보건복지부 추산은 35만건)으로 추정된다. 현행법은 이 20만 명을 수배해서 전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지 않고, 온 나라의 산부인과 의사를 잡아다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지 않는다.

이렇듯 실상과는 따로 노는 법 사이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불법으로 엄연히 규정되어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임신중절이 필요한 20만 명은 시술 후 몸조리를 하면서도, 범법자라는 불안감을 견뎌야 하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각 산부인과에서 임의로 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 2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위협에도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이를 매일 시행해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첨예한 화두에 대한 정당하고 올바른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의료계는 계속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 입법 예고된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정말 최악이며, 법과 윤리와 사회적인 합의를 둘러싼 우리나라 입법자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현행법상 임신중절은 앞서 기술한 형법으로 처벌받는 것 이외에도 '의료인에 대한 비도덕적인 행위'로 자격정지 '1개월'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를 자격정지 '1년'으로 늘리는 것이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이 법의 골자다. 당연히 대한 산부인과학회는 반발에 나선다. 이미 의사들은 사회적 함의 아래에서, 불법임을 감안하고도 여성들의 선택권을 위해 임신중절을 해 왔다.

자격정지 '1년'이면 (임신중절을 시행한)병원은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

임신중절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환자들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산부인과에서 자기 결정권에 의해 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자기 병원에서 보편적인 의료 기술을 행했을 뿐이고, 불법임을 무릅써야 했을 망정 득이 될 것이 없었다. 여기서 득을 본 것은 고결한 척했던 입법자일 뿐이다.

하지만 자격정지 '1년'이면 (임신중절을 시행한)병원은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 이 괴상한 사회적 세태에 대해서 충분한 대중적 논의를 거쳐 의사들을 범법자 신세에서 풀어주지는 못할 망정, 더욱 콧대를 높이 세워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고, 처벌하겠다는 소리다. 비현실적이며, 현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처사다. 내 입장에서도 저 입법예고는 그렇게 들린다.

그래서 대한 산부인과학회 회장은 이렇게 발언한다. "이 법이 진짜 입법되면, 정말로 우리는 임신중절 수술을 안 하겠다." 그리고 네티즌의 질타가 쏟아진다. '직업윤리가 없는 의사가 저렇게 무섭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하고 임신중절 금지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의료인 처벌에만 반발한다는 증거다.'

회장의 말은 조금 어폐가 있기는 했지만, 절대로 현장에서 생명이 위급한 임신중절 수술을 산부인과 의사가 거부해 환자가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의사가 두고 볼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의사는 정부가 규정한 불법 행위를 함으로써 이미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저 말은, 실제로 임신중절이 우리가 1년 동안 자격정지를 받을 수 있고,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불법 행위라면, 진짜로 너희들 말대로 임신중절을 거부하고, 법을 수호해 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에 반발하는 네티즌들은 그들이 말하는 '불법'에 동조하는 꼴이고, 결국 원인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입법자의 장난에 놀아나는 꼴이다.

입법자는 팔짱을 끼고 있고, 의사 집단이 결국 환자의 생명을 가지고 노는 것마냥 매도당하고 있는 것이 현 세태다.

이번 개정안 발의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와중에 여성의 인권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는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이다. 작금은 임신중절을 금지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와 산모 배 안에 있는 태아의 생명윤리를 어떻게 절충해서 어디까지 법으로 강제할 것이고, 실제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을 얼마나 양성화시킬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건강을 보장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격렬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던 때다.

하지만 입법기관은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는 듯이 일방적으로 의사에게 중형을 때리는 갑질에 가까운 법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자 입법자는 팔짱을 끼고 있고, 의사 집단이 결국 환자의 생명을 가지고 노는 것마냥 매도당하고 있는 것이 현 세태다. 생명윤리와 첨예한 사회 문제에 대한 고려는 여기서 무섭도록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 해 20만 명이 불법으로 임신중절을 받는다. 그리고, 입법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당장 완전히 합법화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고, 사회와 윤리는 시시각각으로 바뀌며, 그를 법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 사회적 요구다.

이 문제에 관한 통찰도,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여성의 인권 문제도, 또, 누가 범법자여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나 발상이라곤 전혀 없는 입법자의 고결한 척하는 행태가, 그리고 쟁점은 잊은 채 현장에서 서로를 돌보아야 할 의사와 환자가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 현실이 나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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