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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셰퍼드 살인 사건이 지금도 의미있는 이유

  • 김도훈
  • 입력 2016.10.13 10:00
  • 수정 2017.10.13 12:27

1998년 10월 6일, 와이오밍 대학교의 게이 학생 매튜 셰퍼드가 잔혹하게 공격당한 동성애 증오 범죄 사건이 있었다. 셰퍼드는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와이오밍 주 라라미 외곽 울타리에 묶인 채 버려졌다. 셰퍼드는 22번째 생일을 50일 앞둔 1998년 10월 12일에 사망했다.

1993년에 태어난 나는 매튜 셰퍼드에게 일어난 일을 알거나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나는 2007년에 매튜의 죽음에 대한 다큐멘터리 연극 ‘라라미 프로젝트’를 보고서야 그가 누구였는지, 증오 범죄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라라미 프로젝트’에 출연하고 나서야 진정으로 그의 죽음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매튜 생각을 많이 한다. 23세 게이 남성으로서 그러지 않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여러 모로 비슷하다. 체구가 작고, 여성적이고, 어떤 면으로 봐도 절대 몸이 탄탄하지 않다. 나는 그를 생각할 때 그의 입장에 처하면 어떨지를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성적 지향 때문에 죽도록 내버려지는 게 어떨지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지난 18년 동안 LGBTQ+ 운동으로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사실 상황이 많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랜스들은 기본적 인권을 부정 당하고 있고, 유색 퀴어들은 소외되고 살해당한다. 게이인 십대들은 이성애자 또래들에 비해 자살율이 8.4배 더 높다.

매튜를 생각하고, 내가 매튜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매튜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동성 결혼 합법화, 노스 캐롤라이나 같은 주의 화장실 차별법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우리가 사는 나라를 자랑스러워할까, 1998년 이후 진전이 너무 없었다고 실망할까?

매튜 셰퍼드는 바로 여기 묶인 채 죽었다.

매튜의 18주기를 맞아, 나는 2016년 6월 12일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나는 게이 클럽에 갈 때마다, 동성애 혐오주의자나 트랜스 혐오주의자를 볼 때마다, 나는 오마르 마틴과 그가 펄스에서 학살한 49명을 생각한다. LGBTQ+ 평등을 위한 싸움은 끝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발언이 얼마나 지독하게도 부정확한지를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1998년에 싸웠던 것과 똑같은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2034년에도 지금과 같은 장애물을 극복하려 하고 있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변화는 느리고 고통스럽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우리가 인지해야만 상황이 나아진다. 동성 결혼은 합법이지만, 우리가 싸워야 할 추함은 정말 많다. 우리는 이러한 추함을 지속시키는 문화가 우리와 타인들의 책임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싸울 수 있다.

우리는 매튜 셰퍼드 같은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펄스와 같은 비극에서 거리를 두려고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추함을 우리의 것으로 인정해야 하며, 세상을 더 낫게 만들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 혐오를 인지하고 분석해야 한다. 우리의 편견에 의문을 던지고 검토해야 한다.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어진다 해도 나설 때는 나서야 한다. 매튜, 무의미하게 학살 당한 크리스털 에드몬즈 같은 모든 트랜스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제이미 로드마이어와 릴라 알콘 같은 모든 LGBTQ+ 청소년들, 펄스에서 우리를 떠나야 했던 49명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 그게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해야 할 일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Matthew Shepard’s Murder Is Still Relevant 18 Years Late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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