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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는 31살 해녀는 '정말 해녀만은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 박수진
  • 입력 2016.10.13 08:24
  • 수정 2016.10.13 08:25

[esc/커버스토리] 제주 최연소 해녀 정소영 씨

제주 최연소 해녀 정소영씨는 지난 6일 추포도에 들어가 물질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태풍 때문에 배가 결항됐다. 사진을 찍은 9일 날씨는 맑았지만 파도는 여전히 높아 바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씨는 기자의 손을 붙잡고 그의 식당 ’모드랑’ 근처 애월읍 바다로 데려갔다. 그리고 포즈를 잡았다.

도톰한 손가락은 연신 주민등록증만 한 플라스틱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눈빛에는 자부심이 그득했고, 목소리는 의기양양했다. “따는 데 오래 걸렸어요. 기술 배우는 데만 3~4년 걸렸는데요!”

제주의 최연소 해녀 정소영(31)씨가 자랑스럽게 내민 것은 ‘해녀증’이었다. 정식 명칭은 ‘잠수어업인증’. 이게 있어야 진짜 해녀다. 어촌계 가입은 기본이고 조업일수가 60일 이상이거나 1년 채취 규모가 최소 120만원어치는 돼야 나온다. 어촌계 문턱은 높고,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해녀들의 심사는 까다롭다. 물숨(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속에서 쉬는 숨)이 닥치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이는 동료 해녀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물질하는 바다는 추포도 인근 해역이다.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 제주에서 배로 1시간20분을 달려 도착하는 추자도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동북쪽으로 15분을 더 가야 하는 면적 0.1㎢의 자그마한 섬이 추포도다. 그는 여기서 태어났다. 지금도 발전기를 돌려 불을 밝히고 빗물과 샘물을 저장해 쓰는 이 섬엔 정씨 가족뿐이다. 부모님과 4남매 중 오빠 한 명, 이렇게 3명이 터 잡고 산다. 어머니 지기심(71)씨는 추포도 해녀다.

“해녀가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힘들어 보여서 싫었거든요.” 운명이란 참 불가사의하다. 초등학교 때 수영을 시작한 그는 고등학교 땐 전국대회에서 상을 탈 정도로 잘나갔다. 하지만 고3 때 수영단체 관계자와 큰 갈등을 겪게 됐고, 선수 생활도 그만뒀다. 이리저리 방황하길 7년.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해녀의 길을 권했다. 40년 경력의 대상군(기량이 최고로 좋은 해녀)인 어머니는 자신이 평생 바친 일을 이어갈 사람이 딸이길 바랐다. “추포도의 계단 한 개까지 직접 만든 어머니는 섬에 애정이 많아요. 딸이라면 섬을 진심으로 아껴줄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지금도 어머니가 제일 무섭다”는 그가 여장부 같은 어머니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죽이네, 살리네, 가만 안 둔다 하시는데 도리가 없었어요.” 억지로 시작한 훈련은 가혹했다. 첫 물질에서 소라 7개를 따자 어머니는 욕부터 했다. “‘눈까리를 어디다 쓸라고 달아놨냐!’ 하시는 거예요.” 서러워서 울었다. 수압 때문에 바닷속에서 코피가 터져 수경이 온통 붉게 물들었는데도 어머니는 본 척도 안 했다.

아찔한 경험도 그가 감내해야 하는 훈련 과정이었다. 한번은 눈앞의 소라를 줍다가 정신이 혼미해진 적도 있었다. 자신의 숨 길이를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까스로 눈을 떠보니 다행히 물 위였다. 안도감에 소변이 주르륵 흘렀다.

잡은 소라의 양이 10㎏, 20㎏으로 늘어나자 물질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처음 전복 딴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신기해서 전복 주변을 6~7번이나 빙빙 돌면서 확인하고 땄어요.” 뭍에 올라와 희열에 가득 찬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가 처음 칭찬한 날이기도 했다. 그날 정씨는 처음으로, 해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2014년, 스물아홉에 마침내 추자도 예초어촌계의 승인을 받아 최연소 해녀가 됐다. 타고나는 숨이지만, 상군(기량이 대상군 다음으로 좋은 해녀)인 그를 어머니는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젊은 해녀는 계획이 많다. 먹고사는 데 바빴던 어머니 세대와는 다른 해녀가 되고 싶다. 그는 제주의 30~40대 해녀 9명의 모임인 ‘해수다’ 회원이다. 젊은 해녀들이 모여 수다를 떨자는 뜻이지만, 하는 일은 수다 이상이다. “해녀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요. 우리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인데 취미나 레저, 신기한 눈요깃감으로 보거나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해 안타까워요.” 요즘 ‘해수다’는 제주시 도두동의 하수종말처리장 악취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처리장이 오래됐는데 제대로 수리를 안 해 각종 폐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바다가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게 정씨와 다른 회원들의 생각이다.

정씨와 같은 젊은 해녀들이 잇고 있는 ‘제주 해녀문화’는 오는 11월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호 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긍정적이다. 제주 해녀박물관의 강권용 학예사는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수평적인 해녀 공동체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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