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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시촌 야경이 예쁜 이유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다 소리 좀 듣던 애들이야. 그러다가 고시 준비를 해. 엄마도 기대를 해. 근데 잘 안되지. 매년매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다가 이제 기대도 실망도 안 하는 순간이 오지. 그럼 어릴 때부터 항상 주목받고 살던 사람들이 견디겠냐고. 때려치우자고 결심을 해. 그러다 때려치우고 싶지? 근데 이미 자기는 7수고 8수야. 그럼 어떻게 엄마한테 관두겠다고 하냐? 그러니까 꾸역꾸역 또 해. 이제는 정말 합격이, 간절한 수준이 아니라 인생이 그거 하나로밖에 구원이 안되는 수준이지.

  • 황운중
  • 입력 2016.10.11 07:52
  • 수정 2017.10.12 14:12

같이 맥주집 알바를 하는 형 중 하나는 대전의 모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행시 5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같이 마감을 하고 나면 새벽 네 시인데, 이 형이 내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종종 음료수도 사 주고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얘기도 나누고 그런다. 얘기를 하다가 각자의 자취방으로 가는데, 방향이 얼추 같아서 얘기 나누기를 오래 한다.

한번은 내 자취방의 그 야경이 궁금하다면서 구경을 시켜달라기에, 얘기를 나누면서 언덕을 올랐다. 올라가는데 형은 계속 가슴이 저릿저릿하다고 하셨다. 왜냐고 물으니까, 너 지금 너가 사는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고시촌 아니냐고 답하니 이런다.

"아니, 누가 고시촌인 거 모를까봐. 너가 사는 이 쪽은 기본이 5수생이야. 같은 고시생이라도 고시생이 아니야. 고시촌에서 자살 제일 많이 하는 동네가 이 라인이야. 아마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 칠팔십 프로는 여기서 죽을 걸. 나도 까딱 잘못해서 시험 오래 못 붙고, 시간 어영부영 보내다가 보면 여기로 오게 될지도 몰라. 이 고시촌에 사는 사람들이 다 똑같아 보이지? 여기도 격차가 있고, 밀려나는 게 있고, 우월의식이 있고, X같은 경쟁이 다 있어. 밀린 사람들은 산으로 오는 거야.

초반에는 엄마아빠가 지원도 해 주고, 방도 잡아 주고, 그러면 이왕이면 학원이랑 가까운데 잡아야 하니까 밑에다 방을 구하는 거야. 왜냐면 밑에는 방이 비싸거든. 근데 엄마 아빠가 지원을 해 주니까 선뜻 밑에 방을 잡아. 그러다가 못 붙지? 그러면 눈치도 보이고 식충이 소리를 들어. 지원금도 얼마 안 줘. 까짓 공부하는데 책값만 있으면 되지 뭘 돈이 더 필요하냐고 핀잔 듣고 그러면, 이제 방을 빼서 싼 방을 구해야 돼. 싼 방을 구하고 싶으면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아랫동네에 엄청 후진 방을 구하거나, 아니면 윗동네로 올라오거나."

담뱃불을 붙이고 이렇게 이었다.

"라인이 두 개가 있어. 여기 밑에 도림천 알지. 거기를 기점으로 두 개로 나뉘잖아. 2동하고 9동. 거기에서 각각 안쪽으로 파고들어간 사람들 있잖아. 너는 9동 꼭대기인 거고, 저쪽 2동에 또 이런 데가 있어.

그 두 개 라인 사람들 보면, 다 사연 똑같아. 이름하고 학교만 다르고 인생 사연이 거의 공장에서 찍어낸 수준이야. 대부분 상위 5프로. 그렇지 않겠냐? 행시 준비한다고 하면 그래도 서울 10개 내 대학에 들던 애들이야.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다 소리 좀 듣던 애들이야. 그러다가 고시 준비를 해. 엄마도 기대를 해. 근데 잘 안되지. 매년매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다가 이제 기대도 실망도 안 하는 순간이 오지. 그럼 어릴 때부터 항상 주목받고 살던 사람들이 견디겠냐고. 때려치우자고 결심을 해.

그러다 때려치우고 싶지? 근데 이미 자기는 7수고 8수야. 그럼 어떻게 엄마한테 관두겠다고 하냐? 나라도 절대 못해. 그러니까 꾸역꾸역 또 해. 이제는 정말 합격이, 간절한 수준이 아니라 인생이 그거 하나로밖에 구원이 안되는 수준이지. 근데 합격권이랑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정신 차려 보니 엄마는 늙어 있네. 여기 라인 사람들, 엄마 나이 대부분 환갑 넘었을 걸. 근데 자식은 아직도 취업을 못했으니까 맘대로 늙지도 못해 엄마는. 그렇게 있다가 명절에 용기 내서 부모님 한번 뵈러 내려갔다가 집안 애물단지 소리 한번 듣고 나면, 그냥 방에 와서 가스관 터뜨리든 목매달고 죽든 하는 거야."

얘기 하다 보니 형은 담배를 하나 더 피우고 있었다.

"내가 왜 가슴이 저릿하냐면, 나도 여기까지 밀려올까봐 그래.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들 누구나 그런 생각하고 있을 거야. 가끔 산책을 오는데, 여기까지는 못 와. 여긴 너무 조용해서, 금방 사람이 하나 죽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흐를 것 같거든. 보니까 야경은 예쁘네. 인정. 근데 이 야경이 왜 예쁜 줄 아냐. 여기에 지금 새벽 5시인데 불 켜진 곳들이 왜 보이겠냐. 여기 다 인생 꾸역꾸역 살면서 밤새는 인간들이 불 켜 놓은 건데, 그게 모인 게 야경인 거야. 그냥 으 XX 인생. 내 인생. 하면서 오늘은 차마 못 죽고 겨우 남아서 꾸역꾸역 사는 사람들 때문에 야경이 예쁜겨. 그게 모이니까 예쁜 게 X같지 않냐 이거여."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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