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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졸자가 어이 없는 채용공고를 낸 회사들마다 입사거부서를 보냈다. 그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 박수진
  • 입력 2016.10.11 06:32
  • 수정 2017.08.09 12:18
ⓒshutterstock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프랑스 청년 쥘리앵 프레비외는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갔다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

"길을 가는데 죽어있는 고양이를 봤습니다. 슬픔을 느낍니까?"

지원자의 심리를 통해 업무 적합성을 판단하겠다는, 어쩌면 흔한 심리테스트지만 프레비외는 비인격적 대우라고 느낀다. '죽은 고양이가 인턴 업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프레비외는 이후 지적하고 싶은 채용공고를 내는 회사에 '입사거부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자기소개서' 격인 '지원동기서'의 편지 형식을 빌어 채용공고를 낸 업체를 조롱한 것이다.

취업시장에서 좌절한 청년의 짓궂은 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는 무려 7년 동안 1천 통 넘는 입사거부서를 썼다. 일부 회사로부터는 답장도 받았다. 그리고 채용공고 35건과 자신의 입사거부서 35통, 회사의 답장 25통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입사거부서에서 '최저임금의 65%를 보장한다'는 회사를 향해 "성공적인 삶과 박한 임금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비꼰다.

회사 이름을 앞세워 '부이그 텔레콤 세대'라고 거창한 슬로건을 내건 통신업체에는 "전화기를 파는 기업이 한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겠다는 이야기에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라고 일갈한다.

극소수의 회사가 답장을 보냈다. 답장들은 입사하기만 하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식의 화려한 채용공고와 마찬가지로 천편일률적이다. "애석하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희망하는 일자리를 찾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입사거부서를 읽기는 했는지, 이력서가 빠졌으니 다시 보내달라거나 자사 상품 안내서를 동봉한 업체도 있었다.

프레비외가 재기 넘치는 풍자와 냉소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취업시장에 직면한 청년들의 속내다. 다소곳한 자세로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면접에 나서지만 '갑'의 거만하고 위선적인 태도에 속이 뒤집히는 게 구직자의 심리다.

2007년에 책으로 나온 '입사거부서'는 프랑스 사회에서 뜨거운 관심을 일으켰고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됐다. 프랑스의 정치외교 양성소인 그랑제콜 시앙스포 학생들로부터 '시앙스포 현대예술상 관객상'을, 프랑스 현대미술 국제화 추진위원회에서는 '마르셀 뒤샹 예술가상'을 받았다. 입사거부서가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프레비외가 쓴 입사거부서와 그에 따라 받은 답장들의 프랑스어 버전은 여기(링크)서, 영어 버전은 여기(링크)서 볼 수 있다.

클. 정흥섭 옮김. 144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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