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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 논의를 환영한다

일부 사람들은 모병제를 도입하게 되면 결국 경제적 빈곤층만 군대에 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균등한 병역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 한국의 징병제는 실제로 학력과 재산, 배경에 따라 차등적용 되고 있다. 결국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것은 주로 넉넉지 못한 가정의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징병제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권조차도 빼앗아가 버린다.

ⓒ한겨레

글 |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JPD 서울지부 지부장)

우리는 공화국의 국민이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국가를 지킬 권리가 있다. 그러나 또한 그 동시에, 우리는 우리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권리가 있다. 이 둘은 절대로 별개의 것이 아니며, 국가를 지키며 자신의 존엄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국가로부터 지켜져야 하며, 또한 국가라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중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미국인들은 미국 독립 전쟁을 "혁명 전쟁"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을 왕정을 혁파하고 민중의 손으로 만든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미국인 그들은 미국을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나라라고 칭한다.

또 한가지는 미국 독립 혁명 당시, 모두가 아름다운 정신으로 자발적으로 전선에 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 참전 용사는 당시 금액으로 80달러의 보상금과 100에이커의 토지를 지급받았다. 자유와 기회의 땅은 처음부터 이렇게 기브 앤 테이크의 논리로 건설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근대 국민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첫째로, 국민의 손에 의해 건설된 자주국가여야 할 것, 둘째로 국가는 국민에게 참여를 요구 할 때 일정한 보상을 지급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국가와 국민의 상호 보완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고전적인 사회계약론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국은 오랫동안 징병제 국가였다. 그러나 사회가 개방되고 외부의 정보가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국가는 징병 대상자들을 공짜로 착취하고 있었으며, 해외의 징병제는 어디에서도 이런 식으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나 버렸다.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은 이미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고, 대체로 1년 이하의 복무기간을 유지하고 있으며,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극소수의 국가에서만 열악한 수준의 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들 중에 한국과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는 하나도 없다. 게다가 한국은 40조에 달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비슷한 예산을 소모하는 나라들 중에서 이런 식으로 공짜 인력을 공급받는 나라 또한 없다.

일부 사람들은 모병제를 도입하게 되면 결국 경제적 빈곤층만 군대에 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균등한 병역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 한국의 징병제는 실제로 학력과 재산, 배경에 따라 차등적용 되고 있다. 결국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것은 주로 넉넉지 못한 가정의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징병제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권조차도 빼앗아가 버린다.

또 어떤 이들은 현재의 징병제를 개선하여 적절한 보상과 대안을 제시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때까지 국방부가 걸어온 궤적을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병사 월급 현실화는 현재까지의 월급 인상 추이를 보면, 그리고 국방비에서 지출하는 병사 월급의 퍼센티지를 보면, 앞으로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대체복무제는 순식간에 백지화 되었다. 이미 UN의 권고를 수차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군 내 부조리와 구타 및 가혹행위로 인한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이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국의 징병제 군대는 절대로 개인을 당당한 요원으로 대우하고 보호해 주지 않는다. 한 해에 평균 130여명의 장병들이 사망한다. 이들 중 다수는 자살로 숨진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 이 모든 문제는 개인의 나약함이나 우연한 사고로 분류된다. 만약 이 사람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어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식을 잃은 수많은 부모님의 비통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언제나 원인을 병사 개인에게서 찾는다. 이쯤 되면 징병제 관련 정책은 거의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이고 건설적이며, 우리 모두의 미래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징병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치권에서 터져나온 모병제에 관한 논의를 환영한다(심지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닌 쪽에 소속된 의원의 이야기라 할 지라도!). 징병제가 폐지된다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한국에 만연한 부조리한 군사문화도 그 생명력을 잃을 것이며 이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견인할 것이다. 모병제 하에서는 병사 개개인을 요원으로 대우하고 더 나은 복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국방부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평화를 위한 시각에서도 징병제 폐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군의 규모가 비효율적이고 비대하면 통제가 어렵게 된다. 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어야 한다. 평화를 위해 전국민을 무장시키는 방법은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아니다. 평화는 단순히 무장함으로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군비의 증강은 전운을 감돌게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평화를 위한 노력은 언제나 군축협상과 함께 전개되었다.

수 년 내로 지금 중학생, 고등학생인 젊은이들이 더 이상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찾아오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마음 졸이는 부모도 더 없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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