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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60년대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세상이 쉬웠다. 물론 개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노력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 말은, 하나의 코호트로 봤을 때 그들은 다른 코호트들보다 쉬운 세상을 살았다는 거고, 어려운 환경조건이라 그렇지 다른 세대 역시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다. 한국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를 열심히 살면서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세대 =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혹은 똑똑하지 않은) 세대'라는 논리적 오류가 그 코호트에 존재한다.

  • 박상현
  • 입력 2016.10.10 07:32
  • 수정 2017.10.11 14:12

1.

얼마 전에 386세대(혹은 586세대)에 속한 어떤 사람의 고백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대학도 쉽게 가고, 취직을 한 후에 "IMF 사태"가 터졌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살아남았고, 오히려 직장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쓸어내는 바람에 승진도 쉽게 했고, 회사를 나가서 스타트업을 한 사람들은 닷컴붐을 타고 굴지의 인터넷 기업들을 세울 수 있었다는 얘기.

한마디로 쉽게 잘 풀렸던 자기네 세대가 다음 세대들에게 열심히 안 한다는 꼰대소리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2.

세대전쟁을 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그 잘난 한국의 80년대 학번들이 모르는 것 하나가 있다면, 그건 아래 세대들이 그들을 우습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성급한 일반화 전문가로서 또 한번 성급한 일반화를 해보면, 내가 보는 세대는 이렇다. 60년대생, 70년대생, 80년대생, 그리고 90년대생들을 비교했을 때, 거지 같은 한국의 SKY 대학에 가기 위해 해야 했던 (체감하는) 공부의 양은 뒷세대로 갈수록 약 2배씩 증가한 느낌이다. 70년대생은 TV화면을 보며 공부한 첫 세대이지만, 요즘의 인강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하는 걸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미친 시간낭비다. 하지만 거지 같은 대학에 가기 위해 얼빠진 짓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대학을 쉽게 간 60년대생들이 가지지 못한) 태도 하나를 배우게 되는데, 바로 배움에 대한, 지식에 대한 외경이다.

3.

그건 위의 네 세대를 비교해도 금방 드러난다. 순전히 내 경험이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즉 책을 읽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면 60년대생들이 가장 무식하다. Period. (그리고 70년대생들보다 80년대생들이 훨씬 더 "book smart"하다).

이 대목이 60년대생들이 아래 세대에 꼰대짓을 하는 지점인데, 아래 세대들은 book smart할 뿐 현실적인 감각도 없고 노력도 안 한다는 비판이 그거다. 자신들은 1) 몸으로 뛰면서 배웠기 때문에 street smart하고 2) 그렇게 되기 위해 정말 노오오력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열심히 뛰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4.

내가 비판하는 건, 그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마치 인류역사에서 60년대생들과 함께 끝났다는 듯한 태도이고, 다음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지 못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이제 60년대생들이 나와는 연락을 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이지 마시라. 내 생각에는 다들 같은 걱정 때문에 이 말을 안 했을 텐데, 그래도 누군가는 이야기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쓰는 것일 뿐, 내가 아는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60년대생들이 street smart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부를 지금처럼 하지 않고도 꽤 괜찮을 대학을 갈 수 있었던 탓만이 아니라 대학에서 낭만을 찾고 C학점으로 깔고도 "꼭 가야 하냐" 싶었던 대기업에서 모셔갔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것도 인재라고, 귀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여기에서 60년대생들에게 충고 하나만 하자.

당신들이 즐겨하는 "학사경고 받으면서 신림동 골목에서 술 처먹고 놀기만 하다가, 갈 데가 없어서 OO(대기업)들어갔거든"이라는, 겸손을 가장한 무용담은 제발제발 당신들 모였을 때만 하시라.

전셋값 걱정하는 당신 옆에서 누가 "내가 유학하고 돌아와서 살 곳이 없었는데, 엄마가 촌스런 타워팰리스에 아파트 사주길래 거기에라도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하면 정말 재수 없지 않은가? 당신들보다 어린 사람들이 당신들의 그런"무용담"을 들을 때 똑같은 생각하는 거 아시는가?

5.

60년대생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면 몸으로 뛰어봐야 아는데, 그들에게는 몸으로 뛰어볼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회사에 몸 바쳐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지금은 세상이 멍청하다는 말을 하면서 차를 홀짝홀짝 마실 수 있는 위치에 왔다.

코호트(cohort)라는 것이 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동일한 시대와 사건들을 같은 나이에 함께 경험한 (이건 아주 powerful한 경험이다) 세대다. 60년대생들을 하나의 코호트로 봤을 때 그들의 공통된 경험 중 하나가 책이 많지 않았던 시절을 살았다는 거다.

오해하지 말 것은, 그들이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거나 지식을 우습게 본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책 숭배가 다른 세대보다 더 클 수도 있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그들이 자라는 시점에서는 그 다음 세대보다 책이 적었고, 몇 권의 중요한 책 읽으면 사회전체에서 돌아가는 이야기에 끼어들 수 있는 세대였다는 거다.

모두 다 같은 책 몇 권을 읽는 세상에서 뛰어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똑똑하면" 된다. 다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얘기를 할 때 남들과 다르게 보고 재기발랄한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인재 취급을 받던 시절이다. 60년대생들은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고, 대학도 그렇게 "머리로" 갔다.

그게 60년대생들이 보는 세상이다.

"세상에는 똑똑한 애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이 있다."

6.

하지만 그 후 한국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80년대 종로서적과 90년대 교보문고는 차원이 달랐다. 지식의 분야도 다원화되고 깊어져서 generalist라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입도 뻥끗 못할 만큼 별의별 책들이 다 나온다. 이런 세상에서는 똑똑한 것만으로는 승부가 안된다. 일단 많이 알아야 하고, 깊이 알아야 한다.

"나는 좀 삐딱하게 보는 편이지."

이게 우리가 자주 듣는 60년대생들의 자랑이다. 다들 똑같은 각도에서만 보는 세상에서 자라서 삐딱하게 보는 것만으로 차별화를 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별의별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자란 세대의 자랑일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사상적 포스트모더니즘은 70년대생들이 대학에 들어온 9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70년대생들부터는 삐딱한 걸로는 어림도 없다. (각도가 제각각인 세상에서 삐딱하다는 게 무슨 말인가?) 70년대생들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넓게 열린 평원에서 누가 더 빨리 말을 달리느냐로 승부가 나던 60년대생들과 달리 70년대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맞닥뜨린 세상은 거대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었다.

60년대생들은 교수가 될 사람들만 유학을 갔지만, 70년대생들은 누구나 일단 유학을 default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첫째, IMF구제금융 이후 그들이 접한 세상에서는 조직에서 성장할 기회가 닫혔고, 둘째, 그런 세상에서 차별화를 하기 위해서는 똑똑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깊이 알아야 한다는 (다소 착각에 가까운) 판단 때문이다.

7.

어쨌든 70년대생들 부터는 외국을 다녀왔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안전한 담을 쌓고 사는 한국과 달리 "지식의 자유경쟁"이라는 게 어떤 건지 직접 목격을 했다.

하지만 70년대생들은 그들만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유학을 다녀오느라 한국을 떠나 있었던 것도 그렇지만, 60년대생들 만큼 넓게 열린 평원을 달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경험치가 작은 것이다. 쉽게 말해 "회사가 쑥쑥 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게 60년대생들이 70년대생들을 우습게 보는 이유다.

60년대생들이 70년대생들에게 흔히 하는 말은 이거다.

"공부를 그렇게 하고도 그걸 몰라?"

이게 왜 꼰대스러운 말인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8.

그러니 60년대생들이 입을 열면 다들 입을 닫는다. 하지만 아래 세대들이 듣기는 들어도 뒤에서 웃는다. 모르시는 것 같아 알려드리는 말이다.

정말로, literally, 뒤에서 웃는다. "그 분 정말 책을 안 읽으시는구나"하고 우리끼리 웃는다. 앞에서 웃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힘이 있는 자리에 올라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분들이 비판을 받는 법을 모르는 꼰대라서 그렇다.

"무슨 소리야.. 나는 항상 비판에 열려있어." Open to criticism my ass. 지도교수 앞에서 다리 꼬고 앉아서 "No, you're wrong"하고 반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한 70, 80년대생들에게는 당신이 아무리 열려 있다고 해도 퇴계 이황 정도로밖에는 안 보인다.

당신들이 달려본 벌판은 끽해야 호남평야지만, 70, 80년대생들은 (비록 마음껏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대평원을 보고 왔다. 말을 달려본 당신들의 경험치는 인정하지만, 당신들이 "내가 평원을 달려봐서 아는데 말이지..."하면 웃음부터 나온다.

말 다루는 법 얘기를 하시는 것은 들어드리겠지만, 제발 "내가 평원을 좀 아는데" 따위의 소리는 하지 마시라.

9.

60년대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세상이 쉬웠다. 물론 개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노력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 말은, 하나의 코호트로 봤을 때 그들은 다른 코호트들보다 쉬운 세상을 살았다는 거고, 어려운 환경조건이라 그렇지 다른 세대 역시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다.

한국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를 열심히 살면서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세대 =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혹은 똑똑하지 않은) 세대'라는 논리적 오류가 그 코호트에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boomers"라고 줄여 부르는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와 행동, 사고방식이 꽤 비슷한데, 미국에서는 그 부머들이 제일 재수 없는 세대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이제 본론에 들어간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세대전쟁을 하려는 게 아니다.

10.

"유학생, 교포 꼰대"를 아는가? 내가 만들어낸 말이니 물론 들어본 적은 없겠지만 아마 본 적은 있을 거다.

이들은 일단 입고 다니는 것도 한국사람들과는 다르다. 대개 한국사람들 보다 훨씬 촌스럽게 입고 다니는데도 거꾸로 "한국사람들은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말한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매너 없다고 툴툴거리고, 한국의 방송은 이해할 수 없으며, 한국의 시스템은 비합리적이어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거기에 한국에서 잘못 사용하는 영어표현까지 고쳐주고 다니면 꼰대로서의 완성형에 이른다.

그렇다. 내 얘기다.

물론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맞는 얘기를 한 것 뿐이고, 상대방은 전부 "맞아, 한국 시스템이 촌스러운 데가 많아"하는 식으로 내 '지적'에 수긍했으니까.

11.

내가 꼰대짓을 하고 다녔다는 걸 눈치챈 것은 내가 한국에 일 년에 한 달 정도 방문하던 패턴을 바꿔서 반 년 이상 머무르게 되면서부터였다. 오래 머무르다 보니 언제까지나 불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불평만 하고 있으면 자꾸 저항감이 생겨서 시스템을 익히지 못하게 된다) 그냥 한국식을 수용하고 거기에 맞추게 되면서부터다.

그 과정에서 "다른" 문법이 "틀린" 문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거다.

물론 그걸 발견한 후에 나의 꼰대짓을 바로 깨닫게 된 것도 아니다. (내 글을 읽은 아무개가 내 글이 가진 논리의 문제를 방어하는 내게, "그렇게 옳다고 자신하는 게 꼰대의 첫걸음"이라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 언제 깨닫게 되었느냐.

다시 미국에 돌아가서 거기에 사는 한국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부터다.

12.

유학생/교포 꼰대는 빠른 경우에는 5년 차 정도에도 만들어지지만, 대개는 10년 이상 외국에서 학업이나 일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혹은 나는)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진 외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익숙한 모든 문법을 깬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재채기를 한다고 "Bless you"라는 말이 바로 툭 튀어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답: 아주 많은 게 바뀌어야 가능하다). '미신인 걸 알면서 재채기 하는 사람에게 왜 그 말을 해줘야 해?'에서 시작해서 '그 말을 해주지 않으면 매너가 없다'는 게 몸으로 느껴지기 까지는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그게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그게 '맞는 문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새로운 문법이 내 문법이 된 사람들이다.

13.

게다가 모든 문화의 원산지가 그렇듯, 한국문화의 원산지인 한국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한국문화의 변방인 교포사회는 자신이 건너온 시점에서 한국문화의 시계가 멈춰있다. 그리고 그 격차는 인터넷 좀 들여다본다고 좁혀지는 게 절대 아니다.

그렇다 보니 교포들은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 오면 "한국은 참 희한해, 하하하"하고 교포들끼리 웃는다. 뭐, 그럴 수 있다. 자기네끼리 이야기하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내가 한국문법을 재학습하는 과정에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런 익숙한 얘기를 듣고 있으니 '흠, 저렇게 생각하는 건 오해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자 살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는 "한국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환경과 역사에 맞는 시스템이 발전한 것"이라고 변호를 하고 있었다.

14.

그러다 문득, '저 사람들은 저런 말을 '우리'끼리만 하는데, 나는 한국에서 내 주위 사람들(죄송)에게 마구 하고 다녔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내가 '왜 한국에서는 휴대전화 번호가 없으면 인터넷 상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한지,' '한국사람들은 왜 길거리에서 뛰는지' 따위의 불평을 버릇처럼 늘어놓을 때 친구들이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맞아. 좀 이상하지..."하고 수긍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 586 꼰대들이 설교를 늘어놓을 때 아래 세대가 억지로 수긍하고 듣고 있는 거랑 내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어주고 있던 게 전혀 다르지 않았구나...'

15.

그리하여 '꼰대/꼰대이즘이란 무엇인가?'하는 주제를 다소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비록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겠지만), '꼰대이즘'은 결국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이고, 꼰대는 자문화중심주의에 빠져 타문화에 대해 마음대로 judge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세대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지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익숙한 문화와 룰이 옳고 남들이 가진 문화가 틀렸다고 생각되면 꼰대로 변할 씨앗이 심긴 것이고, 그 기준으로 상대방에게 "충고"를 하고 다니기 시작하면 꼰대가 된 것이다.

16.

그런데 왜 하필 60년대 생이고, 왜 하필 미국교포인가? (또 일반화해서 죄송... 전부 나 같은 사람들은 아니다).

자문화중심주의의 대표적인 형태인 서구중심주의(Eurocentrism)가 그렇듯, 특정문화가 그 시대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사실이 주는 착시 때문이다. 유럽이 전세계를 제패하고 있으니 유럽사회의 룰은 '맞는' 룰이고, 다른 나라의 룰은 '틀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미국이 잘 사는 나라이고 근현대 한국이 미국 시스템을 배우며 성장했기 때문에 미국이 답처럼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현재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60년대생들이 가장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보니 그들의 잔소리는 들어야 할 충고이고, 밀레니얼 세대들은 취직도 못하고 찌질하게 살고 있으니 그 원인은 그들의 사고와 행동에 있을 것이라는 원인내재론이다.

17.

꼰대가 꼰대인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주도권이나 우월감의 근거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데도 그걸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애들은 문맥에 안 맞는 희한한 배낭(자전거용 배낭이었다)을 메고 다녀. 정말 촌스러워."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몇 년 뒤 내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디자인은 캘리포니아에 상륙했고, 뉴욕으로 넘어가더니 이제는 길거리에서 흔히 보게 되었다. 패션에 관한 한 유럽과 일본은 미국보다 앞서 있고, 한국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으니 항상 미국보다 한걸음 앞서 있다.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 촌스러운 옷을 입고 오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심하다. (물론 L.A.교포는 교포 사회에서도 예외로 친다. 한국과 문화적 거리가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그게 편해졌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미국식이라고 생각하며 만족한다, which is okay, as long as they don't preach about it as I did.

18.

꼰대들은 자신이 딛고 선 곳이 바위가 아니라 모래인 것을 모른다. 자신의 원칙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진리라고 믿지만, 사실은 모래는 천천히 흐르고 있고, 열심히 살피지 않으면 어느 순간 멀리 떨어진 강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꼰대 중에서도 "개꼰대"라는 어버이연합이나 해병전우회 노인들은 자신이 한국사회에 valuable lesson을 전달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외치지만 이미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본인들만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19.

그럼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꼰대로서 고민해본 결과는 이렇다.

앞서 말했듯,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별개임을 깨달아야 한다. 누군가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보이면 '저 사람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문법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봐야 한다. 자신과 문화적인 거리(지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세대 차이도 포함된다)가 먼 사람들일수록 더욱 의심해봐야 한다.

많은 경우 그들은 나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그 결과, 다른 문법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들의 문법에서는 전혀 틀린 사고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의 문법이 세상을 지배할 날이 오면 내가 사용하는 말이 문법에 어긋났다는 지적을 받게 될 거다.

나는 내 문법을 지키며 장렬하게 사라질 것이니 간섭하지 말라면 그건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너는 틀렸다"고 지적질하는 건, 특히 상대방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반박하기 힘든 문맥에서 충고랍시고 지적질하는 건 그냥 소음공해일 뿐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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