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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평가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부른다

ⓒShutterstock / altanaka

증권회사에 다녔던 ㄱ씨는 회사를 떠나기 전 ‘성과관리 프로그램 대상자'였다. 그는 겨울 산을 홀로 오르거나 사회봉사한 뒤 셀카를 찍어 회사에 보내야 했다. 외형상 저성과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지만, “실상은 직원을 들들 볶아 제 발로 나가게 하는 ‘퇴출 프로그램'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프로그램의 1단계는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어 수치감에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도 버티면 각종 수당을 깎는 2단계로 접어든다. 기본급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이들이 회사를 떠난다. 그래도 남으면 산행이나 사회봉사처럼 성과를 낼 수 없는 곳으로 보내 다시 저성과자로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ㄱ씨가 무너진 것은 동료들 때문이었다. “악독한 상사의 ‘내리 갈굼'은 견디겠는데 동료들이 내 탓이라며 눈치를 주며 ‘왕따’를 시키는 데 절망했다.”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중에서)

성과평가가 일터 괴롭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월간리뷰 10월호'에 수록된 송민수 전문위원의 보고서 ‘직장 내 괴롭힘 영향요인: 피해자, 사업체, 근로환경 특성을 중심으로'를 보면, 성과평가 등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근무환경이 언어폭력, 성적 관심, 위협·굴욕적 행동,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14년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토대로 일터 괴롭힘의 영향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이 보고서는 일터 괴롭힘 영향요인을 피해자와 근로환경으로 나눠 파악했다. 피해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았다. 또 연령과 학력이 낮을수록 일터 괴롭힘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근로환경은 열악할수록 괴롭힘이 증가했다. 저녁근무(저녁 6시 이후 2시간 이상)를 많이 하는 직장일수록, 마감시간이 엄격한 근무환경일수록, 공식적 성과평가가 존재하는 직장일수록 언어폭력 등 일터 괴롭힘을 노동자가 경험할 가능성이 커졌다. 조사 대상자의 한 달 평균 저녁근무 횟수는 4.78일로 나타났고, 마감 시간이 있는 노동자의 비중은 26.2%였다. 또 근무성과를 공식적으로 평가받는 경우는 25.9%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저녁근무는 스트레스의 원천으로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협업을 통해 마감 시간 내 업무를 마쳐야 하는 상황에선 미숙련 노동자가 괴롭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성과평가가 강화되면 구성원들이 극심한 경쟁구도에 놓여 다른 근로자를 동료가 아닌, 경쟁해서 이겨내야 할 상대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인식이 퍼지면 가해자들이 조직 내 생존을 위한 방어 수단으로서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보통 성과급체계는 성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가장 효율적이고 객관적인 임금체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조직 내 위화감을 조성하고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해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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