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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국어 경찰 아버지

아버지의 국어 경찰 활동은 집안뿐 아니라 대외 순찰로도 이어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에서 '반듯이'와 '닥아 내어'에 줄을 긋고 '반드시' '닦아 내어'라고 고쳐놓은 사람은 보나마나 우리 아버지였다.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갔던 날, 잘 가던 횟집 문 앞에 버티고 선 아버지는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대신 사장님더러 밖으로 좀 나와보라고 불러냈다. 새로 바꾼 발 매트에 적힌 말이 문제였다. "어서 오십시'요'가 아이고요, 어서 오십시'오'가 맞습니더, '오'." 아버지는 피카소가 손전등으로 소를 그리듯 허공에 커다랗게 '오'라고 적어 보였다.

  • 이옥선
  • 입력 2016.10.09 06:06
  • 수정 2017.10.10 14:12
ⓒ연합뉴스

아버지는 평생 국어선생님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글을 썼고, 가정교사 노릇으로 학비를 벌어 대학에선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을 하다 같은 학교 역사 선생님과 눈이 맞아 결혼을 했으니 그분이 바로 내 어머니다. 아버지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었고 나중에는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오랜 세월 강의하다 은퇴했다.

아버지의 국어 사랑은 유난한 데가 있었다. 부산에 살던 어린 시절 온 식구가 함께 TV를 보다가 출연자가 "깨끄치"라고 발음하기라도 하면 어머니와 오빠와 나는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속으로 탄식을 내뱉았다. 곧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불호령이 떨어진다. "저런 #&*%#할 놈이!" 그리고 일장연설이 이어진다. "'깨끄시'지, '깨끄치'가 뭐꼬! '깨끗하다'의 부사형은 '이'를 붙여서 '깨끗이'란 말이다! 저런 무식한 놈들이 마이크를 잡고서는..." 어쩌고저쩌고.

아버지가 참지 못하는 건 또 있었다. 옷에 붙은 영어였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상표에도 영어가 적혀 있으면 다 뜯어내야 직성이 풀렸다. 한번은 가슴팍에 영어 단어가 실로 수놓인 옷이 생겼는데 어머니가 그걸 한 땀 한 땀 다 뜯어서 없애야 했던 기억이 난다. 훗날 중학생이 된 나는 반항심에서였는지, 앞면이 온통 알아먹지도 못할 영어로 뒤덮인 티셔츠를 사서 입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 그걸 보일 용기는 없어서 집 근처에서 옷을 갈아입고나서 집에 들어가곤 했다.

식탁에서도 걸핏하면 국어 강의가 벌어졌다. 하루는 진주 사투리를 쓰는 어머니가 "그쪽 가게가 물건은 싸는데 질이 별로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뜨던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소리를 꽥 질렀다. "형용사 '싸다'에 '-는데'라는 어미가 우째 붙노?!! '싼데'라 캐야지!!" 아버지한테는 이게 엄청난 비상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시끄러운 사이렌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걸핏하면 사이렌을 울리며 문법과 맞춤법 오류를 정정하는 국어 경찰 아버지를 둔 덕분에 국어 범법자가 될 위험이 덜했다 하겠다. 훗날 카피라이터가 된 나는 회사에서 맞춤법을 잘 아는 사람으로 통해 다른 카피라이터들이 항상 내게 맞춤법을 물어보곤 했으니 그 수혜가 적지 않다.

아버지의 국어 경찰 활동은 집안뿐 아니라 대외 순찰로도 이어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에서 '반듯이'와 '닥아 내어'에 줄을 긋고 '반드시' '닦아 내어'라고 고쳐놓은 사람은 보나마나 우리 아버지였다.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갔던 날, 잘 가던 횟집 문 앞에 버티고 선 아버지는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대신 사장님더러 밖으로 좀 나와보라고 불러냈다. 새로 바꾼 발 매트에 적힌 말이 문제였다. "어서 오십시'요'가 아이고요, 어서 오십시'오'가 맞습니더, '오'." 아버지는 피카소가 손전등으로 소를 그리듯 허공에 커다랗게 '오'라고 적어 보였다. 나머지 식구들이 민망해서 조용히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아버지가 덧붙이는 말이 들렸다. "내 다음에 올 때까지 바꿔 놓으세요." 다음에 그 횟집에 갔을 때 범법 발매트는 '어서 오십시오'로 바로잡혀 있었다.

아버지는 다독가이자 독설가였고 존재의의가 없는 책에는 가차 없었다. 내가 첫 책을 썼을 때, 부산 본가에 책을 보내놓고는 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할지가 두려웠다. 통화를 할 때도 책 얘기는 일부러 피했다. 두어 달쯤 뒤 본가에 가서 아버지와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그 식탁은 아버지가 평생 국어강의를 들려준 교탁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금성판 국어사전에 따르면," 나는 밥을 꿀꺽 삼켰다. "'아닌게아니라'는 붙여 쓰는 것이다. 틀리기 쉬운 부분이지." 잠시 침묵. "책 쓰느라 애썼다. 문장이 좋다. 그런데 술재이 아빠 딸이라서 그런지 책이 온통 술판이데. 그래도 술맛 나게 썼더라." 그리고 아버지와 딸은 시원소주를 부딪치며 딸의 책에 나오는 무하마드 알리와 셰리주와 강건한 국밥에 대해 떠들었다.

그런데 반전은, 내가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아닌 게 아니라'는 띄어 쓰는 게 맞다는 것. 맞춤법이 아버지 시대와 달리 바뀐 모양이었다. 나는 일흔 넘은 은퇴한 국어 선생에게 이것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 이 글은 <월간에세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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