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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운드화가 2분 만에 6%나 급락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

  • 허완
  • 입력 2016.10.07 14:02
  • 수정 2016.10.07 14:33
ⓒTwitter/FT

영국 파운드화가 7일 장중 한 때 6%나 폭락하며 전 세계 트레이더들을 패닉에 몰아 넣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파운드화는 이날 오전 아시아 금융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단 2분 만에 6.1%나 하락해 파운드당 1.1841 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1985년 5월 이후 역대 최저치이며, 장중 하락폭으로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인 6월24일 11.1%를 기록한 이래 가장 큰 수준이다. 이후 파운드화는 낙폭을 다소 회복해 오후 1시(홍콩시간) 기준 1.4% 하락한 1.243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다소 진정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전 세계 트레이더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큰 폭으로 떨어지는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그 원인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

싱가포르 ThinkMarkets의 애널리스트 맷 심슨은 "(이번 폭락을) 촉발한 요인(트리거)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건 눈사태를 일으킨 눈송이를 찾아 나서는 것과 같을 수 있다"고 CNN머니에 말했다. 그는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이 모든 사태에서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보도를 종합하면, 원인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추정된다. ① 컴퓨터 자동 트레이딩, ② '하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 ③ 자본 이탈, 그리고 ④ 실수 주문.

① 컴퓨터 자동 트레이딩

FT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브렉시트 협상에서 EU가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 담긴 FT의 보도가 이 같은 파운드화 폭락을 촉발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알고리즘 트레이더 시스템에는 뉴스 웹사이트를 추적하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며, "FT의 기사는 폭락세가 시작된 것과 똑같은 분(minute)에 발행됐다"는 것.

블룸버그는 "이 같은 폭락 규모와 속도는 거래 규모가 줄어들고 알고리즘 트레이더들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극도의 변덕을 나타내는 일시적 사태가 글로벌 환율 시장에서 점점 흔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WSJ은 트레이더들의 증언을 인용해 파운드 하락 정도가 자동매매 프로그램 알고리즘에 설정된 특정 수준을 넘어서는 바람에 추가 매도가 촉발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최근 몇 년간 금융시장에 자동매매 비중이 높아지면서 종종 작은 문제가 갑작스럽고 매우 빠른 폭락과 반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거래량이 많지 않았던 시점의 특성과 맞물리며 이 같은 폭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블룸버그가 별도로 정리한 일지에 따르면, 지난 1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란드화가 15분 만에 9%나 떨어졌으며, 지난 8월에는 뉴질랜드달러화 역시 이 같은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를 겪었다. 2010년에는 미국 주식시장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고, 2014년 미국 국채 폭등 사태도 플래시 크래시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② '하드 브렉시트' 우려

물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우려도 여전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 주말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일정을 발표하며 '하드 브렉시트'를 예고한 이래, 파운드화는 이날까지 4.6%나 폭락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6일 장 클로드융커 EU 집행위원장 등과의 회담에서 "영국은 브렉시트를, 심지어 하드 브렉시트를 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며 "그렇다면 우리(EU)는 유럽연합을 떠나겠다는 영국의 의지를 일관되게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영국과의 협상에서 EU가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회원국의 의무는 감당하지 않으면서 EU 회원국과 비슷한 혜택을 누리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것. 다른 회원국들도 비슷한 요구를 내세우며 탈퇴를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내년 3월 말까지 EU 탈퇴 협상을 개시하겠다고 밝히며 '하드 브렉시트' 가능성을 언급했다. 영국이 EU 단일시장보다는 이민자 통제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암시한 것.

기본적으로 영국 정부는 '경제적 혜택(단일시장)도 최대한 유지하고, 이민자도 통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EU는 '꿈 깨라'는 입장이다. 단일 노동시장(노동 이동 자유)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EU 단일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유지하도록 해줄 수는 없다는 것.

EU가 이렇게 완강하게 나올 경우, 영국으로서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메이 총리는 지난 주말 연설에서 이민자 유입 통제를 '약속'한 반면, EU 단일시장 접근에 대해서는 "가능한 최선의" 협상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만약 '하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영국 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선 영국의 수출기업들은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이 EU 회원국 자격으로 누렸던 무관세 혜택 등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 영국 수출의 절반은 EU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함께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꼽히는 영국 시티의 경쟁력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은 세계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GDP 대비 금융산업 비중이 높기로 유명한 국가다.

블룸버그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파운드화가 16% 하락했으며, 전 세계 주요 31개 통화 중 최악의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골드만삭스 등은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③ 자본 이탈

일각에서는 영국에서 자본 이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영국으로서는 매우, 매우 좋지 않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는 영국에서 자본 이탈(capital flight)이 본격화됐다는 전망도 제기됐다고 전했다.

단기 투자자의 파운드 매도뿐만 아니라 파운드로 수출입 업무를 하던 업체가 자금을 본격적으로 달러로 전환한 것이 급락의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신문은 "복수의 시장 관계자들이 오전 파운드화 급락에 대해 단기 투기세력이 아닌 기업의 대량 (파운드 매도) 주문이 원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연합인포맥스 10월7일)

다만 이런 가능성은 현재까지는 '전망'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④ 실수 주문

파운드화가 짧은 시간 동안 기록적인 수준의 낙폭을 기록한 배경으로 '실수 주문'을 꼽는 의견도 있다. '팻 핑거(fat finger)'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날 폭락을 유발한 유력한 원인으로 프로그램 자동매매와 함께 이 '팻 핑거'를 꼽았다. 이런 거대한 폭락을 유발할 만큼 큰 뉴스가 없었다는 것.

그러나 반론도 있다. Intermarket Strategy의 CEO 애쉬라프 라이디는 CNBC에 "일반적으로 팻 핑거 에러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지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의 폭락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무엇이든,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파운드화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약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라이디는 "우리는 아직 브렉시트 절차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공식 협상이 개시될) 3월에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인지 한 번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영국의 EU 탈퇴 협상은 공식적으로 2년 내에 마무리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이전 정부가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재정흑자' 목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메이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완화 정책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파운드화가 브렉시트 투표 이전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당분간 제로에 가깝다는 얘기다.

참고로 원화 대비 파운드화는 이날 장중 한 때 1378원대까지 떨어진 끝에 등락을 거듭하며 전날보다 26.43원 하락한 1385.87원에 마감됐다.

아래는 최근 10년 간의 원/파운드 환율 그래프다. 최고점을 찍었던 2008년의 2414.99원과 비교하면 무려 1000원 넘게 빠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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