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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북한학자 찰스 암스트롱이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 김수빈
  • 입력 2016.10.07 14:08
  • 수정 2016.10.07 15:42
찰스 암스트롱이 2013년 9월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의 행사에서 자신의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찰스 암스트롱이 2013년 9월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의 행사에서 자신의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The Korea Society

찰스 K. 암스트롱은 미국 콜럼비아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로 20년째 재직 중인 미국의 대표적인 한국학/북한사학자다. "국내 정부 관료들이 미국을 방문할 때면 꼭 만나고 싶어하는 한반도 전문가(한겨레)"이기도 하다.

암스트롱은 2013년 '약자의 폭정(Tyranny of the Weak: North Korea and the World, 1950-1990)'이라는 저서를 냈다. 1950년대부터 1992년까지 북한의 외교사에 대한 연구서로 러시아어, 독일어, 중국어, 한국어로 써진 문서들까지 참고문헌으로 활용하여 극찬을 받았다. 이 책은 2014년 미국역사학협회(AHA)로부터 동아시아 역사에 관한 우수도서에 수여하는 존 페어뱅크 상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 책이 표절 시비에 휩싸였다. 발단은 동서대학교의 북한학자인 B. R. 마이어스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 마이어스는 암스트롱이 이 책에서 독일어나 한국어로 된 문헌을 인용할 때 해당 언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엉뚱한 내용의 문서를 인용표기에 달았다고 주장했다.

더욱 중대한 문제는 암스트롱이 다른 학자의 저서에서 인용한 내용을 써놓고는 엉뚱한 문서를 인용표기했다는 것.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서른 번 이상이었다. 흥미롭게도 암스트롱이 이렇게 '부적절'하게 인용한 부분들은 주로 하나의 저작에 집중되어 있다.

헝가리 출신의 북한학자로 현재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에 재직 중인 발라즈 샬론타이 교수의 2005년작 '흐루쇼프 시대의 김일성(Kim Il Sung in the Khrushchev Era: Soviet-DPRK Relations and the Roots of North Korean Despotism, 1953-1964)'이 바로 그 주인공.

샬론타이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 국가의 외교문서 등을 바탕으로 북한사를 연구한 학자이며 이 책 또한 소련과 헝가리 등의 외교문서를 연구하여 쓴 것이다.

마이어스는 암스트롱의 중대한 오류(또는 표절)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그중 하나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동유럽에서 온 고문관들에게 새로운 산업 시설에 대한 요구사항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북한 측 관계자들은 평양에 있는 동유럽 고문관들에게 새로운 산업 시설을 내륙의 산간 지대에 만들길 원한다고 말했다. 광산과도 가까울 것이고 적의 해상 공격에도 덜 취약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한국전쟁에서 해상 공격으로 산업 시설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약자의 폭정', 63페이지)

이 문단에 대해 암스트롱은 그 출처로 북한의 동독 대사관에서 작성된 헝가리 대사와 대화에 대한 보고서를 표기했다. 그러나 마이어스는 해당 보고서가 실제로는 헝가리 대사가 자국(헝가리)의 농업 상황에 대해 말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서인 것.

한편 헝가리의 외교문서를 인용한 샬론타이의 책은 이렇게 서술한다:

일제가 한반도에 조성한 산업 시설들은... 너무 바다에 가까웠고 광산으로부터는 너무 멀었다. 한국전쟁 당시 공군과 해군의 공격으로 이 산업 시설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것이 바로 조선노동당 지도부가 새로운 공장들을 산악 지대에 건설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기계들을 터널에 숨기기 쉬웠기 때문이다. ('흐루쇼프 시대의 김일성', 50페이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책에서 다루다 보면 실수로 인용표기를 빠뜨리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자신의 저서에서 저지르는 오류는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다.

게다가 바로 위의 사례처럼 샬론타이의 책에서 인용한 것이 거의 분명한 구절을 전혀 엉뚱한 독일 외교문서를 출처로 표기하는 경우가 그 밖에도 몇 가지 더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닐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북한학의 대가 중 하나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도 북한전문언론 NK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또다른 의심사례들을 제시했다.

암스트롱이 표절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점들은 남는다. 란코프 교수는 자신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정말로 표절이더라도 이는 완전히 불필요한 것이었다. 암스트롱은 이미 자신의 입지를 다진 학자인데다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의 교원이다. 과거에 훌륭한 연구를 해냈고 학계에서도 명망가이다. (중략) 문제의 저서 또한 방대한 소재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의 성격을 띤 책이라 샬론타이를 비롯한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했다고 제대로 밝히더라도 문제가 될 일이 거의 없었다. (안드레이 란코프, NK뉴스 기고문, 10월 5일)

암스트롱은 이 문제에 대해 NK뉴스가 질의를 던졌을 때,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다만 편집자와 출판사와 함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표절 의혹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셈인 샬론타이 교수는 암스트롱이 자신의 책을 인용한 것이 뚜렷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용표기를 하지 않은 사례를 현재까지 45개 찾아냈다.

샬론타이는 허프포스트에 "암스트롱 교수가 아직까지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그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 어떠한 확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암스트롱이 이 문제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샬론타이 본인을 포함한)을 제외하고 단지 출판사와 논의하는 것은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암스트롱의 표절 의혹이 앞으로 어떻게 풀려나갈지는 더 두고볼 일이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을 것이 암스트롱 개인의 명성 뿐만은 아닐 듯하다. 란코프 교수의 말마따나 한국학 및 북한학계가 큰 타격을 입음은 물론이고 암스트롱의 제자들 또한 큰 실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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