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내가 있는 곳을 학교로 만들고 싶다

어느 신부님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들겠다.' 라는 굳은 다짐이 담긴 문구였다. 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되돌아 본 나는 그저 그런 사축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하던 교육실습생은 동료교사들의 주당시수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버렸고 연간계획을 수십 차례 세우고 다시 고치고 하던 어린 초임교사는 방학날짜와 공휴일 숫자를 줄줄 외우고 있는 날짜 계산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 안승준
  • 입력 2016.10.07 11:17
  • 수정 2017.10.08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어느 신부님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들겠다.' 라는 굳은 다짐이 담긴 문구였다.

동료신부님을 통해서야 들을 수 있었던 그 짧은 문장이 신부님의 삶의 모양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끊임없이 무언가 일을 만들어내고 조금이라도 물질이 생기면 아이들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셨던 것은 분명한 목표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모든 삶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의 가난한 주머니도 늘 피곤해 보이던 얼굴도 그의 분명한 목표점을 알고난 뒤에는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늘 활기가 넘치는 것도 언제나 웃을 수 있는 것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도 다른 지점에서 받고 있는 에너지 덕분이셨던 듯하다.

그는 스스로가 존재하는 의미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그가 느끼고 추구해야 할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직업을 가지고 또 나름의 행복추구권을 행사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 경제력의 향상을 위해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를 외치지만 안타깝게도 직장 안에서의 일들과 궁극의 가치가 일치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노동과 행복이 같은 방향에 서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이상주의자의 현실감 떨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일 년에 열두 번 정도의 월급날을 위해 350여일을 꾹 참고 견디듯 일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저녁이 있는 삶을 바라는 것도 주말만이라도 단란한 시간을 달라고 외치는 노조들의 외침도 의미 없이 기계적 노동을 강요받은 수십시간들에서 출발한 억울함은 아닐까?

나는 교사이다. 다른 이들은 내 직업의 최고의 가치를 방학이나 빠른 퇴근시간에 둘지 몰라도 나름 교육자라는 자부심과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제자들의 거울이 되겠다는 포부도 다졌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의 현재를 불사르겠다는 그럴듯한 다짐도 세우곤 했다.

그런데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변하게 하는 법! 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되돌아 본 나는 그저 그런 사축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하던 교육실습생은 동료교사들의 주당시수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버렸고 연간계획을 수십 차례 세우고 다시 고치고 하던 어린 초임교사는 방학날짜와 공휴일 숫자를 줄줄 외우고 있는 날짜 계산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주말이나 방학에만 겨우 마음과 몸의 평안함을 느끼게 된 것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고만 생각되는 나의 시수와 업무량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나의 목적이 되어버린 방학과 주말! 그렇기에 난 그때만 즐거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난 천국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제는 아니지만 늘 제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학교는 될 수 있다.

내 목표가 온전히 교육이고 삶의 방향이 아이들을 향하는 순간 잃어버렸던 낮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쳐도 웃을 수 있고 또 다른 하루를 기다릴 수 있는 아침을 찾는 것 그것은 내 목표의 방향에 달려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부터 내가 있는 곳을 학교로 만들기로 했다.

뉴스를 보다 보니 나처럼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또 있는 것 같다.

난 공공기관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배웠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건강보험도 철도도 수도도 전기도 우리가 그나마 큰 부담없이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목표가 이윤추구가 아닌 국민들의 공익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공공기관들의 목표가 흑자이고 이윤이 되었다는 말인가?

존재의 의미를 모르면 그만큼 행복할 수 없다.

개인의 무지는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겠지만 국가나 국가지도자의 무지는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알고 그 안에서 높은 가치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사제가 있는 곳은 천국이 되고 교사가 있는 곳은 학교가 되고 기자가 있는 곳은 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가 있는 곳에 바른 세상이 되고 지도자와 정책이 잇는 곳에 국민의 웃음이 있기를 바라본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안승준 #학교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