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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살다 보면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 중에 "운도 실력이다"라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짜 따지고 보면 "실력도 운이다"라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실력이 좋아서 우연으로서의 운이 좋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연히 운이 좋아서 실력이 좋아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능력이란 별 볼 일이 없는 것"이다.

  • 유종일
  • 입력 2016.10.06 13:49
  • 수정 2017.10.07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5. 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이제까지는 순전한 우연으로서의 운과 실제로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실력이라는 두 가지 성공의 요소가 어떤 비율로 작용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운과 실력이 반드시 완벽하게 독립적인 요인들은 아닐 수 있다. 살다 보면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 중에 "운도 실력이다"라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짜 따지고 보면 "실력도 운이다"라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실력이 좋아서 우연으로서의 운이 좋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연히 운이 좋아서 실력이 좋아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는 빌 게이츠나 비틀즈와 같이 각자의 분야에서 특출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일반적인 성공담과는 매우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1) 글래드웰은 탁월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어떻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그들의 특별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는지 얘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의 비밀을 알아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공은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숨겨진 이점과 기막힌 기회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실력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키우는 과정에 알게 모르게 운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 종목인 아이스하키의 경우 엘리트 선수들의 생일을 살펴보면 40% 정도가 1월에서 3월 사이에 태어났고, 30% 정도가 4월에서 6월 사이에, 20% 정도가 7월에서 9월 사이에, 그리고 10% 정도만이 10월에서 12월 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주니어 리그 선수들이나 프로 리그 (NHL) 선수들이나 막론하고 항상 생일의 분포가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선수들의 생일이 연초 쪽으로 쏠려있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는 없다. 사실 그 이유를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캐나다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연령별 팀에 들어가 플레이를 하는데, 어린 나이에는 생일이 몇 개월만 빨라도 신체발달이 앞서기 때문에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연령별 팀에서 우수 선수가 되면 도시대표로 선발되고, 여기서 또 지역대표로 선발되고 하면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조직적이고 많은 양의 훈련 기회를 갖게 된다. 결국 이런 아이들 중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나온다.

이렇게 스포츠에서 생일에 따라 발전의 기회가 달라지는 현상을 '상대연령효과'라고 하는데, 이는 캐나다의 아이스하키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다. 체코의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서도 확인되었고, 미국의 프로 야구선수들이나 유럽의 프로 축구선수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다.2) '상대연령효과'는 우연히 발생한 작은 차이가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마태효과'의 일종으로서, 이렇게 특별한 기회가 실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현상은 스포츠만의 일은 아니다. 글래드웰은 비틀즈와 빌 게이츠 등의 사례를 통해 우연한 기회가 실력과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비틀즈는 우연히 하루 8시간씩 매일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는 함부르크의 클럽에 고용되었던 까닭에 리버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들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만개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접하고 충분히 가지고 놀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누린 덕에 소프트웨어의 대가가 되었는데,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이런 기회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심리학자 에릭슨(K. anders Ericsson)은 피아노 연주나 체스 등 특정 분야에서 이른바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3) 1만 시간이라면 대략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간 노력했다는 것인데, 이는 실로 엄청난 시간 투자다. 이 이론은 선천적 재능과 노력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정작 글래드웰이 이 법칙을 소개하면서 강조한 것은 기회다. 비틀즈나 빌 게이츠처럼 아무리 천부적 재능이 있어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 최고의 실력을 갖출 수 있는데, 1만 시간이라는 엄청난 투자는 그럴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주어져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생일이 빨라서 연령별 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캐나다의 하키 선수처럼 말이다.

물론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능력이란 별 볼 일이 없는 것"이다.

희대의 명배우 알 파치노도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면 별 볼 일 없는 무명배우로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의 제작사 파라마운트는 당대의 최고 스타들인 로버트 레드포드나 워렌 비티에게 이 역을 맡기기를 원했으나,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마이클 역은 시실리 사람처럼 생긴 배우에게 맡겨야 한다고 우기면서, 알 파치노가 아니면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버텼다. 코폴라는 33살의 젊은 감독으로서 <대부>가 그의 데뷔작이었다. 코폴라가 알 파치노를 찾아낸 것도 기적이었지만, 이런 초보 감독이 제작사의 요구를 꺾은 것도 기적이었다. 게다가 코폴라는 말론 브란도가 맡은 돈 콜레오네가 중심이었던 원작을 각색하여 마이클 콜레오네를 중심인물로 만들었다. 알 파치노의 빛나는 커리어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알 파치노 같은 대 스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우연히 기회를 잡아 굉장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재주와 역량이 뛰어나지만 기회를 잡지 못해서 악전고투하며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할 수 있다.

기회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린 기회의 특별함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1)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노정태 옮김, 김영사, 2009.

2) Jochen Musch and Simon Grondin, "Unequal competition as an Impediment to Personal Development: A Review of the Relative Age Effect in Sport," Developmental Review 21, no. 2, 2001.

3) K. Anders Ericsson, Ralf Th. Krampe, and Clemens Tesch-Rmer,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in the Acquisition of Expert Performance," Psychological Review 100, no. 3, 1993.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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