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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수출 계약 해지'를 14시간 늦게 공시한 미스터리를 밝혔다

  • 박세회
  • 입력 2016.10.04 13:59
  • 수정 2016.10.04 14:02

한미약품이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된 걸 알고도 14시간이 지난 다음 날에야 늑장 공시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장 마감 후인 오후 4시33분 미국의 제네텍 사와 항암제에 대한 1조원 규모의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는 호재를 공시했다.

그리고 이튿날 장 개시 후인 오전 9시29분에 8천500억원 규모의 다른 기술 수출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성 공시를 띄웠다.

문제는 기술 수출이 해지됐다는 통보를 한미 약품이 받은 시간이다. YTN에 따르면 한미약품이 베링거잉겔하임으로부터 개발 중단 통지를 받은 것은 29일 오후 7시 6분.

한미는 29일 오후 7시 9분부터 거래소가 개장한 이후인 9시 29분까지 약 14시간 동안 왜 공시를 안 했을까?

일단 장이 개장한 9시부터 약 30분 동안 투자자들은 전날 '제네텍'과의 기술 이전 호재를 믿고 이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가 9시 29분 베링거잉겔하임과의 기술 수출 계약 해지가 공시된 후 사들인 주식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미약품 주가는 지난달 30일 18.6%, 연휴 후인 4일 7.28% 급락해 2거래일간 24%(14만9천원) 빠졌다.

그러나 한미약품은 '지연 공시'가 아니었다고 해명에 나섰다.

한미약품 이관순 대표이사가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에서 열린 한미약품 신약 '올무티닙'에 대한 임상연구 부작용 사망 사례 등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관련 규정을 지켜 절차를 밟다 보니 공시가 늦어질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대체 무슨 규정과 절차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난 것일까.

한미약품과 한국거래소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제약회사의 기술수출 계약 공시와 관련된 제도상의 미비점이 있기는 하다.

4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제약회사는 기술 판매 계약을 체결하면 '상용화까지 가정한 전체 계약금액'을 모두 수주한 것으로 공시한다.

그런데 제약회사의 기술수출은 완성품을 판매하는 제조업은 물론 토목공사나 선박 건조 등 장기간 계약이 진행되는 수주산업과도 확연히 다른 형태를 띠는 것이 문제다.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신약 기술을 수출하면 계약금으로 10%가량만 받고 나머지는 임상실험 단계별로 진척이 있을 때마다 더 받는 식으로 수익을 챙기는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계약을 한다.

언제든지 해지될 수 있는 이런 계약이 실제로 철회되기라도 하면 전체 공시 공액의 상당 부분은 가공의 숫자로 전락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거래소는 아직 바이오·제약업종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기준을 정하지 않고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전체 계약금액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절차에 따라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베링거인겔하임에 항암제 기술을 수출할 때 전체 계약금 8천500억원을 공시했다.

한미약품은 당시 공시 기준이 모호하다고 판단하고 거래소에 찾아가 전체 금액을 공시할지, 계약금만 공시할지 문의했으나 거래소는 전체 금액을 공시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전체 금액을 공시하면서 각주 등을 통해 총 계약기간이나 현금 유입구조를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는 바이오업종뿐만 아니라 사실상 조선, 건설 등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한미약품이 몸을 사리다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해석도 있다.

현행상 계약이 중도 파기돼 정정공시를 낼 때 계약금이 원래 액수와 50% 이상 차이가 나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수 있다.

실제로 한미약품이 지난달 30일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 해지 내용을 장 개시 30분쯤 지난 오전 9시29분께 공시한 데는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우려를 해소하느라 지체된 탓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계약 중도 해지로 당초 공시액의 10분의 1 수준인 718억원을 받게 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 때문에 회사 공시 담당자가 거래소를 직접 찾아가 설명하고 진행 상황을 회사 상부에 보고하느라 적절한 공시 시간을 놓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공시 담당자는 30일 오전 8시 30분에 여의도 거래소에 도착해 8시 40분부터 공시를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거래소 공시 담당자는 이때 사안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장 개시 전에 공시하고 추후 필요할 경우 정정공시를 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여부를 놓고 혼선을 겪으면서 한미약품 담당자는 회사 내부 보고를 하느라 지체해 결과적으로 장이 시작된 후에 공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장 개시 전에 공시하지 못해 일부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점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거래소 측은 "기존의 공시 계약금액에서 50% 이상 변경되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수 있지만 귀책사유가 없으면 예외가 될 수 있다"며 "이번 건은 베링거인겔하임 측이 계약을 취소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에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대상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한미약품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을 지나치게 우려해 몸을 사리다가 보니 일처리가 늦어지게 됐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업종 특성을 반영한 공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며 "상장 기업들은 중요 사안이 있을 경우 즉각 시장에 알린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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