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故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와 부검 논란에 대한 의학적 정리

병사라면 외인사 사항에 더 표시하거나 기재할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외인사라면 사고의 종류와 사고에 의도성 여부, 그리고 사고 발생 일시와 사고 발생 장소에 대해 기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교통사고인지, 중독, 추락, 익사, 화재, 또는 기타에 해당되는지를 확인하여 선택하고 그 다음에 의도성 여부에 의도가 없는 비의도적 사고인지, 자살이나 타살인지 여부를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고인지 자살이나 타살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면 미상을 선택합니다.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에 사망의 종류가 병사로 기재되는 바람에 사고의 종류, 의도성에 대한 판단, 사고발생 일시와 사고발생 장소에 대한 기록이 모두 빠져 있습니다.

  • 노환규
  • 입력 2016.10.03 09:17
  • 수정 2017.10.04 14:12

백남기씨(1947년생, 사고당시 만 68세)가 2016.9.25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여하여 밧줄로 경찰 버스를 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고 구급차로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이후 뇌출혈에 대해 장시간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가 사고 317일 만인 2016년 9월 25일 오후 2시 15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이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진단서가 발부되었는데 이것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서울대의과대학생 102명이 사망진단서에 오류가 있다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동문 365명이 또 다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기독청년의료인회라는 단체에서도 사망진단서의 문제점을 제기했는데 부검에는 반대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발부한 사망진단서에 대해 의과대학생들과 동문 의사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부검의 필요성과 관련해서도 제각기 견해가 달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논란은 혼란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오직 의학적 입장에서...

I. 사망진단서 관련 논란

1. 무엇이 논란인가?

백남기씨 사망 후 사망진단서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사망진단서 관련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망원인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망의 종류에 대한 것입니다. 서울대병원은 사망원인 중 직접사인에 대해 심폐정지라고 썼고, 사망의 종류에 대해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썼다는 점이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먼저 사망진단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망진단서는 아래와 같은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위 사망진단서 중 빨간 네모박스 안의 부분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1) 사망원인 논란

사망의 원인에는 (가), (나), (다), (라) 네 가지를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는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직접사인), (나)는 (가)의 원인이고 (다)는 (나)의 원인, 그리고 (라)는 (다)의 원인을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망원인은 말 그대로 사망의 원인이 된 질환명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에서는 직접사인을 심폐정지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심폐정지는 사망의 원인(COD : Cause of Death)이 아니라 사망의 양식(MOD : Mode of Death)입니다. 직접사인란에 심폐정지라고 쓰는 것은 초보의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오류가 흔했지만 지금은 교육이 잘 되어 있어서 의사가 이런 실수를 하는 일이 드뭅니다.)

대한의사협회가 2015년 3월에 펴낸 진단서 등 작성 교부 지침서에는 이렇게 써있습니다. "사망진단서에서 가장 흔한 오류 가운데 하나가 직접사인으로 죽음의 현상을 기재한 것이다.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은 사망의 증세라고 할 수 있고,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 대개는 사망원인의 개념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긴 오류이며, 자칫 진실한 사망원인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이번 서울대병원의 진단서에서 발견된 오류입니다.

(2) 사망의 종류와 외인사 사항 논란

사망의 원인을 적은 후에는 사망의 종류를 기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망의 종류는 크게 ⑴ 병사 ⑵ 외인사로 나누고, 병사인지 외인사인지 알 수 없을 때에는 ⑶ 기타 및 불상에 표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 백남기씨가 기존에 갖고 있던 질병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 외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사망의 종류는 병사가 아닌 외인사가 되어야 하는데 서울대병원에서는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분류함으로써 의혹을 자초했습니다.

병사라면 외인사 사항에 더 표시하거나 기재할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외인사라면 사고의 종류와 사고에 의도성 여부, 그리고 사고 발생 일시와 사고 발생 장소에 대해 기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교통사고인지, 중독, 추락, 익사, 화재, 또는 기타에 해당되는지를 확인하여 선택하고 그 다음에 의도성 여부에 의도가 없는 비의도적 사고인지, 자살이나 타살인지 여부를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고인지 자살이나 타살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면 미상을 선택합니다.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에 사망의 종류가 병사로 기재되는 바람에 사고의 종류, 의도성에 대한 판단, 사고발생 일시와 사고발생 장소에 대한 기록이 모두 빠져 있습니다.

2. 어떻게 씌여졌어야 했나?

그렇다면 사망진단서는 어떻게 써있어야 했을까요?

고 백남기씨의 정확한 직접사인에 대해서는 주치의사가 가장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사망진단서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를테면'이라는 가정 아래 예를 들 수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의도성 여부를 묻는 난에서 말하는 의도는 환자의 의도가 아니라 타인의 의도를 묻는 것입니다. 임상의사가 고의성에 대해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즉 살수진압 과정에서 외상을 당해 사망한 고 백남기씨의 경우 물대포로 고인을 넘어뜨려 다치게 할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의사가 알기 어렵습니다. 시체검안서와 마찬가지로 사망진단서를 참조하여 법률적 판단에 도움을 받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므로, 즉 의사가 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고 백남기씨의 경우 고의로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비의도적 사고 혹은 미상에 체크를 하는 것이 마땅하며 무리가 없습니다.

3. 왜 이렇게 씌여졌을까?

고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를 쓴 의사는 서울대병원 소속의 의사입니다. 평범한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쓸 때에도 실수가 없어야 하는데, 더욱이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고 법률적 다툼이 있는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함에 있어 서울대학교병원이 왜 이처럼 허술하게 작성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사망의 직접 사인에 '심폐정지'라고 기재하는 것은 비교적 흔히 일어나는 실수라고 할 있어도 사망의 종류를 병사라고 기재한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혹시 서울대병원이 외압을 받아 어떻게든 외상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논란을 자초한 책임은 서울대병원 측에 있습니다.

II. 부검의 필요성 관련 논란

부검의 필요성 부분은 의학적 요소 외에 법률적 판단이 중요하기에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 백남기씨의 부검을 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1) 첫째 이유 : 피고발인들에 대한 유무죄와 죄의 유형을 정확히 가리기 위해 (법률적인 이유)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백남기씨의 유가족은 다수의 경찰관들(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제4기동단 소속 단장, 경비계장, 중대장과 성명 불상 경찰관 2명)을 살인미수죄로 고발한 상태입니다. 백남기씨가 사망했으므로 살인미수죄의 죄목이 살인죄로 바뀔 수 있겠으나 피고발인들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법률전문가에 따르면 법률적으로 물대포에 의해 직접 안면부골절과 뇌경막하출혈이 왔고 이로 인해 사망하였다면 살인죄나 상해치사죄에 해당될 수 있고,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다가 바닥에 부딪쳐 안면부골절과 뇌경막하출혈이 왔다면 폭행치사죄나 무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된 정확한 원인을 가리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2) 두 번째 이유 :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법률적인 이유와 의학적인 이유)

고인이 살수 진압에 의해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현재 인터넷에는 고인이 쓰러진 직후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중에는 '빨간 우비'를 입은 신원불상자가 고인이 쓰러진 후 고인을 가격하는 듯 보이는 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경찰의 물대포에 밀려 고인 위로 쓰러진 것인지, 아니면 고의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고인을 가격한 것인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고인이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직후 검사 결과, 외상성 경막하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탈출증(대뇌낫밑탈출 subfalcial herniation, 갈고리이랑탈출 uncal herniation), 그리고 두개골과 안와 및 광대 부위의 다발성 골절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이중 안와 및 광대 부위 등 안면부 골절은 성형외과 의사의 전문적인 치료 영역입니다. 그런데 안면부 골절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다수의 의견을 들어보면 비교적 넓은 면적에 압력이 가해지는 물대포에 의해 안와 및 광대부위의 다발성 골절이 발생하기 어렵고 이는 좁은 면적에 높은 압력이 가해지는 타격 등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확한 선행사인을 가려내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검을 하지 않는다면 가능성 높은 사실의 추정을 가능하게 할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2. 외인사일수록 부검이 필요

환자가 병사로 사망한 경우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검이 필요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러나 외인사이면서 자살이 아닌 타인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경우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혹자는 서울대병원의 임상의료진이 1년 가까이 환자를 진료해 오면서 상세한 의료정보를 취득하였으므로 부검이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임상의사가 알고 있는 것은 환자에게 외성성 뇌출혈과 안와 및 광대의 골절 등이 발생했다는 결과적 사실이지 원인적 사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즉 고인이 입은 중대한 손상이 물대포로 인한 살수진압의 직접적인 결과에 의한 것인지, 살수진압이 간접 요인으로 작용한 것인지, 또 다른 외부적 요인이 작용한 것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임상의사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법의학자, 법의관, 부검의만이 밝혀낼 수 있는 일입니다.

III. 결론

1.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작성된 사망진단서는 명백한 오류를 갖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오류를 조속히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정정 발표해야 할 것입니다.

2. 고 백남기씨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 또한 명백합니다.

사망의 세부적인 원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상의사의 영역과 부검의사의 영역은 다릅니다.

"의료에는 좌와 우가 없다"

제가 얼마 전 펴낸 책에 쓴 문구입니다.

의료인이라면, 의학적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체의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오직 의료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습니다.

[ 부록 ]

1.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진단서 양식만큼은 세계공통양식을 따를 것을 권고하며 표준안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도 이 표준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 102명이 발표한 성명서 중에 '사망진단서는 환자와 유족을 위한 의사의 마지막 배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2014년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발간한 사망진단서 작성안내 리플렛시리즈의 표지 문구를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대한의사협회가 공동발간한 것이지만 이 표지 문구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환자를 배려한다는 것에도 의사의 주관이 개입될 여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진단서는 오직 의학적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뿐, 그 어떠한 그 누구를 위한 일체의 배려도 배제되어야 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백남기 #노환규 #사회 #서울대병원 #부검 #사망진단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