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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재판소에서 15년 일한 재판관은 '이것'이 부족해 로스쿨 임용이 거부됐다

  • 김수빈
  • 입력 2016.10.02 12:56
  • 수정 2016.10.02 12:57
ⓒ연합뉴스

"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으로 일한 소중한 경험을 미래 법조인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권오곤(63·사법연수원 9기) 김앤장법률사무소 초대 국제법연구소장은 1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예비 법조인 양성에 힘을 보탤 기회를 잃은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권 소장은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부터 올 2학기 '초빙 석좌교수' 자격으로 국제형사법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사법시험 수석 합격, 사법연수원 수석 수료 등 법조계에서 '수석 3관왕' 진기록으로 유명하다.

1979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쳐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2001년 한국인 최초로 유엔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에 선출됐다.

올 3월까지 15년간 재직하며 직접 쓴 판결문만 2천600페이지에 달한다. 탁월한 실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ICTY 부소장까지 맡았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 등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사건의 재판장을 맡는 등 전 세계와 각국 언론이 주목한 수많은 재판을 처리했다.

국제형사법에 관한 한 그만한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게 학교 측 판단이었다.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선뜻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40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며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강의시간표가 마련되고 학생들의 수강신청도 진행됐다. 그런데 난데없이 학교 측으로부터 '강의 불가'를 통보받았다. 교원 임용 평가를 전담하는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가 '논문점수 미달'을 이유로 '강의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로스쿨 강의를 맡으려면 최근 5년간 쓴 논문평가 총점이 150점 이상이어야 하는데 권 소장은 80점으로 기준에 미달한다는 게 위원회 입.장이었다.

권 소장이 올 3월께 ICTY 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고 주로 국내외 학술지에 '영어 논문'을 발표해온 점은 참작되지 않았다.

권 소장은 특히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은 ICTY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논문점수라는 정량적 잣대로만 임용 평가를 진행한 데 대해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학교 측도 '평가 기준이 불합리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법학교수, 판·검사, 변호사, 교육부 공무원 등 11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의 임용 평가 결과는 권고적 효력만 지니지만 평가 결과가 대내외에 공개되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학교 측 입장이다.

권 소장은 "일반 교수님들처럼 깊은 학문적 연구를 하진 못했지만 15년간의 국제무대 경험을 토대로 ICTY와 국제형사법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경직된 제도와 천편일률적인 로스쿨 교원 평가 기준을 고쳐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갖춘 법조인이 강단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법학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실무를 경험한 법조인들을 대거 교원으로 충원한다는 로스쿨 운영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로스쿨 제도 개선 활동을 해온 대한변협도 로스쿨 교원 임용 평가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개선 방향을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초빙·석좌교수제는 특정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은 인사의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후학 양성에 활용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라며 "좀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제도를 운용해 사회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지식자본이 사장되거나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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