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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경찰의 진압으로 죽은 아들의 부검에 동의한 아버지는 이를 후회한다

  • 김수빈
  • 입력 2016.10.02 11:06
  • 수정 2016.10.02 11:07
1일 오후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투병하다 사망한 농민 고 백남기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치고 종로1가를 행진하고 있다.
1일 오후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투병하다 사망한 농민 고 백남기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치고 종로1가를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져 있다가 지난달 25일 세상을 떠난 백남기 씨의 시신 부검에 대한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끝에 결국 9월 28일 발부됐다.

유가족 측은 "사인이 명확한 만큼 필요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다"며 극력 반대하는 입장.

이쯤되면 '사인이 분명하다면, 영장까지 나왔는데 그냥 부검에 동의하면 안되나?'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상황에서의 부검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도 백남기 씨와 유사하게 경찰의 집회 진압 과정에서 참가자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1996년 3월 29일, 서울 종묘에서 열린 '등록금 인상 반대와 김영삼 대통령 대선자금 공개 촉구 결의대회'에 참가했다가 최루탄과 곤봉으로 진압하던 경찰에 의해 사망한 연세대 학생 노수석 씨.

당시 사법당국은 노씨에 대한 부검을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심장마비'가 사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몸의 일곱 군데에서 피하출혈 등의 외상이 발견되었지만 사인은 심장마비였다는 것. 때문에 노수석 씨에 관련된 기사는 지금도 사인을 '심장마비'로 적고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노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이 아닌 평소 갖고 있던 심장의 지병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노수석 씨의 아버지는 부검에 동의한 것을 후회한다고 지난 1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29일 오후 뉴스1과의 통화에서 노수석씨의 아버지 노봉구씨(74)는 "백남기 농민 사태를 보면서 '왜 수석이 때 부검을 반대하지 못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씨는 "당시에는 사인을 정확히 밝히려면 꼭 부검이 필요하다고 믿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된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노씨는 "당시에는 백골단이 시위진압을 하면서 곤봉으로 시위대를 두들겨 패고 최루탄을 쏟아부었다"며 "그런 부분은 부검결과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심장이 멈춰 죽었다고 사인이 나왔다. 얼마나 모순이냐"라고 말했다. (뉴스1 10월 1일)

당시 노씨의 유족과 시민사회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등을 추진했으나 부검결과가 주요 증거로 채택되면서 소송에서 졌다고 뉴스1은 전한다. 노씨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것은 7년이 지난 후인 2003년.

그건 벌써 20년 전의 일이 아니냐고, 한국 정부도, 사법당국도, 병원도 이젠 달라지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을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 백남기 씨가 누워있던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에 백씨의 사망을 '외인사(외상으로 인한 사망)'가 아닌 '병사'로 분류했다. 그것도 사인은 '심폐정지'로.

문제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서울대병원의 레지던트는 백씨의 딸인 백도라지 씨에게 "본인의 이름으로 나가기는 하지만 사망원인, 병명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권한이 없다... 신찬수 부원장과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 두 분의 협의한 내용대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겨레21은 보도했다. 서울대 병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 출신이다.

서울대 의대 학생 102명은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에 대해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놓았다. 서울대 의대 동문 365명도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내용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말 대한민국에서 그 20년이 흐르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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