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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산울림, 서태지가 한국 대중문화에 가져온 변화의 이야기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 중 가장 폭발적인 사랑을 끌어내는 것은 음악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 만 명의 사람을 한 군데 모아놓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면은 다른 분야에서는 여러 제약 사항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다. 또한 짧은 시간 내에 그 에너지가 퍼지는 것으로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이 따라잡을 수 없는 특징이다. 우리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조용필

두 말 할 필요 없는 가왕이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참신한 사운드의 곡 ‘바운스’, ‘헬로’ 등으로 2013년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오빠 부대를 이끈 원조 가수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인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음악을 두고 장르의 위대한 통합이자 한국 대중음악의 용광로라고 찬사한다. 언젠가 방송작가 구자형은 “한국에는 조용필이라는 장르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모든 음악을 포괄하여 자신의 독자적 스타일로 확립한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질문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던졌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한번도 당대에 사랑받는 음악을 놓친 적이 없다. 젊은이들의 감각과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대의 음악, 앞서가는 음악을 알기 위해 오래도록 AFKN을 청취해 왔으며 지금도 젊은 밴드와 가수의 음반을 듣는다!” (책 ‘가수를 말하다’, 임진모 저)

2. 산울림

곡과 가사를 통해 신선함을 끊임없이 주었던 그룹이다. 특이하게도 삼 형제(김창완, 김창훈, 김창익)가 모여 결성하였는데, 이들이 집에서 연습을 할 때 동네사람들이 이들의 어머니에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이들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곡들을 발표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때 사람들이 팝송을 들었던 것도 실은 팝송이 대단한 음악이어서 라기보다 우리 가요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울림이 성공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산울림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팝송을 듣다가 오랫동안 무시해 오던 가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산울림이 음악역사에 우뚝 서 있는 것은 팝송에 가요가 도전의 깃발을 올렸다는 데 있다. 이것은 우리 대중음악의 주권 확립과도 같은 것이었다. 1980년대 조용필과 이문세에 와서 마침내 팝과 가요가 역전되는 상황에 길을 열어준 것이다.”(책 ‘가수를 말하다’, 임진모 저)

3. 서태지

가요가 한 사람으로 인해 변곡점을 맞이하기도 한다. 서태지가 그 예인데, 이전과 이후의 가요 양상이 많이 바뀐다. (그 이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댄스 곡들이 있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선보인 여러 곡들을 통해 댄스의 파괴력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서태지는 대중의 어느 곳을 공략했을까?

“나중 TV로 비친 그의 다이내믹한 회오리춤은 그의 비장의 무기였다. 서태지는 그것이 아이들을 들뜨게 한다는 것을 믿은 것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것, 흥분된 것을 좋아한다. 강한 댄스와 묶이면 그들을 더 흥분시킨다!”는 영국 무용교육학자 로이스턴 맬둠의 말 그대로였다. 당시 MBC의 쇼프로그램 PD 김종진은 ‘난 알아요’ 때의 회오리춤을 이렇게 기억한다. “많은 가수들과 작업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카메라를 꽉 채운 가수는 처음이었다. 빈 곳이 보이지 않았다!” …. 기성세대는 당황했다. 서태지의 음악은 전혀 들어본 경험이 없는 느닷없는 것이었다. 변화에의 적응 속도가 더딘 어른들은 정도의 차가 있었을 뿐 대체로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공유했다. “서태지가 나오고부터 가요를 안 들었어!”” (책 ‘가수를 말하다’, 임진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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