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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상상한 '핵 폭발' 이후의 세상에 나타날 3가지 현상

'핵'으로 뜨거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9일에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더니, 9월 12일에 일어난 경주 지진을 계기로 원전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들이 들려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응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기도 한다. 전부 '핵'이 가지는 위험성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 '핵'은 실제로 얼마나 치명적일까? 진짜 '핵전쟁'이 벌어진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미•소(러)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이 주제는 한동안 많은 작가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이 상상했던 '핵 폭발' 이후의 세상을 소개해본다. 우리에겐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상상들인지도 모른다.

1. 전자기기들은 먹통이 된다.

""잠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뭔가 문제가 있어. 내가......"

전화가 끊겼다.

그와 동시에 천장의 선풍기가 느려지고, 제니퍼의 방에서 나던 오디오 소리가 뚝 끊어졌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니 벽감 반침에 놓인 컴퓨터의 화면보호기가 사라졌고, 19인치 모니터 작동 버튼의 초록색 불빛도 꺼져 있었다. 삐삐거리는 신호음이 들렸다. 주택보안 및 화재경보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그 소리가 멈추자 주위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책 '1초 후', 윌리엄 R.포르스첸 저)

'1초 후'는 핵 폭발로 전자 기기들이 먹통이 된 이후의 세상을 그려낸다. 핵폭탄이 고고도 대기 중에서 폭발해 '펄스 파'가 방출되고, 이것이 지표면에 닿아 전자기기에 합선을 일으켜 미국 전 지역에서 전기 사용이 아예 불가능해졌을 때를 가정한 소설이다. 그 결과는 끔찍하다. 모든 통신, 수송, 의료 수단을 사용할 수 없어진 이후, 식량이 제대로 수송되지 않아 기아가 발생하고, 첨단 의료장비에 의지하던 중환자들이 죽어나가며, 마을 간에 식량과 의약품을 빼앗기 위한 심각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가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설정이다. 소설은 그렇게 실제 핵 무기가 가지는 위력이 직접적인 '폭파'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소설대로라면, 어쩌면 진짜 우리의 걱정은 '살아남은 이후'에 시작될지도 모른다.

2. 대기근이 닥친다.

"...그러나 겨울을 날 식량을 마련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핵 폭탄이 떨어진 다음 해엔 거의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들은 대부분 경작되지 않았다. 감자 몇 개라도 심고, 몇 줌의 곡식 씨앗이라도 파종한 사람들조차 거두어들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땅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던 것이다. 봄에 싹이 튼 것도 보잘것 없이 연명해 갔다. 경치는 싱싱한 초록 물결로 덮이는 대신 병색이 완연한 유황색으로 서서히 덮여 갔다. 침엽수와 활엽수에선 모두 잎사귀가 나오지 않았다. 가장 억센 잡초만이 견뎌 냈다."(책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저)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은 1983년 독일에서 출간된 소설이다. 아직 독일의 분단 국가 시절, 작가는 동•서독 접경지역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후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 그 속에서 벌어진 세상은 지옥이 따로 없다. 방사능 오염으로 원자병을 앓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티푸스 등의 전염병이 퍼지지만 의료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생겨난 대기근이다. 이 소설은 대부분의 땅이 황무지가 되어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풀뿌리를 캐고 쥐를 잡아 먹으며 연명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소설처럼 핵전쟁이 일어나면 우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조선시대 흉년을 강제로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3. 기형아가 급증한다.

""각하는 용감한 분이시죠." 의사가 말했다. 마스크를 벗은 그이 얼굴은 엄격하고 단호했다. "이제 그 용기가 필요한 땝니다."

"설마 집사람이......" 로빈슨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짐승이 꺽꺽대는 소리 같았다.

"사모님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간호사가 포대기에 싸여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는 형체를 안고 왔다. 사내아이였다. 그러나 아기의 팔다리는 문어다리처럼 흐늘흐늘했고, 팔 끝에 달린 손에는 뼈가 아예 없었다.

로빈슨이 물끄러미 아기를 내려다봤다. 뭔가가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의 것이었다."(책 '최후의 날, 그 후: 내일의 아이들', 폴 앤더슨 저)

폴 앤더슨의 '내일의 아이들'은 핵전쟁 이후 이전과 같은 생식 활동이 불가능해진 세상에 대해 상상한다. 방사능 낙진이 전세계를 뒤덮어 어디서도 제대로 된 생산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다. 가축들은 도저히 기를 수 없는 기형적인 새끼들만을 낳는다. 낙농업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돌연변이 외의 인간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지구에서 미국 대통령은 '온전한' 인간들만을 따로 격리해 살게 만드는 방안을 궁리하지만, 본인의 자식조차 기형으로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그렇게 '그들'을 인류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방안을 궁리해야 한다는 부하의 경고를 들려주며 끝맺는다. 1947년에 나온 소설이지만, 방사능에 대해 가지는 공포는 아직 우리 안에 여전하다

4. 세상은 치안 부재 상태가 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동네는 도시 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나빴다. 메트로폴 극장을 장악하고 이 구역을 세력권으로 삼은 아워갱파는 동네 환경을 개선할 의도는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들은 그저 영화관에서 필름만 돌리면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 다른 로버팩 패거리들과는 상당히 다른 양태였다."(책 '최후의 날 그 후: 소년과 개', 할란 엘리슨 저)

만화 '북두의 권'이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잘 나타내고 있듯이, 완전히 망해버린 세상에서 일부 폭력집단이 정부 대신 사람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세계관은 핵 전쟁 이후를 설명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중에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할란 엘리슨의 '소년과 개'이다. 여기서 세상은 살인과 방화, 강간쯤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며, 화폐 대신 식량의 물물교환이 이뤄진다. 그리고 '로버팩'이란 패거리들이 몇 개의 도시를 지배하며 영화를 보여주거나, 우물물을 관리하는 대가로 식량을 받아 조직을 운영한다. 핵 전쟁 이후 '국가'라는 게 사라진 세상은 이처럼 오랜 상상의 소재였지만, 전쟁을 일으킨 인간에 대한 통찰이 그렇듯 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이처럼 당시 소설들은 적극적으로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며 현실 속에서 평화가 오기를 원했다. 지금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닿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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