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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백남기 씨는 국가가 '원격'으로 살해한 최초의 한국 시민이다

고 백남기 씨의 경우는 한국 공권력의 집회 탄압 전술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음을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백남기씨는 '원격'으로 투사된 공권력 폭력으로 숨진 최초의 한국 시민이다. '원격'이라는 표현은 폭력을 투사하는 데 '사람'의 개입이 희미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쓴 표현이다. 무시무시하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백골단도 자칫하면 시위대의 공격에 다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단벽 뒤의 물대포는 아무런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폭증한 미국의 '드론(무인기) 전쟁'과 비견할 만하다.

  • 김수빈
  • 입력 2016.09.27 14:10
  • 수정 2017.09.28 14:12
ⓒ연합뉴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던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의식을 잃은지 317일 만에 결국 숨을 거두자, 언론은 주로 사망 사건 발생 이후 각 정권의 대처를 비교하며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집회 현장에 맨몸으로 서 있던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 놓고 거의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힐난은 얼마를 덧붙이더라도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만 가리키면 이번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다른 흐름을 놓칠 수 있다.

한국의 경찰은 정권의 변천과는 별개로 시민의 집회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통제하는 전술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고 백남기 씨의 경우는 한국 공권력의 집회 탄압 전술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음을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고 백남기 씨를 의식불명의 상태로 만들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물대포(살수차)였다. 그런데 한국 경찰의 살수차는 다른 나라의 살수차와 몹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먼저 다른 나라의 살수차들을 보자:

2016년 8월 브라질에서 탄핵당한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벌인 시위에 투입된 살수차

2016년 5월 케냐의 야당 지지자들의 집회를 진압하는 살수차

2016년 4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집회에 배치된 살수차

그리고 아래가 바로 한국 경찰이 사용하는 살수차다.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자 서울지방경찰청은 2015년 11월 17일 기자들을 불러 살수차 시연을 했다

물대포가 운전석 지붕 위에 달려 있는 해외의 살수차들과는 달리, 한국 경찰의 살수차는 여기에 붐(크레인)에 장착된 물대포를 추가로 더 갖고 있다. 한국의 '전문 시위꾼'들은 배트맨처럼 날아드는 능력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

근래에 한국 경찰이 시민의 집회를 진압하는 풍경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2015년 5월 노동절 집회 당시의 모습

해외에서 살수차는 집회를 통제하는 경찰 병력을 '보조'한다. 반면 한국에서 살수차는 시위 진압의 최일선에 선다.

차벽과 차단벽으로 집회 참가자들의 진로를 완벽하게 차단한다. 그 뒤에 배치된 살수차는 기다란 붐에 장착된 물대포로 접근하는 참가자들을 제압한다. 시민과 물대포 사이에 '사람'은 없다. 차벽 위에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경찰의 채증조만 있을 뿐이다.

노태우 시절, 강경대 씨는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고 목숨을 잃었다. 노수석 씨(김영삼 정부)도, 전용철 씨, 홍덕표 씨(노무현 정부)도 경찰의 방패나 몽둥이에 맞아 사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누구도 백남기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 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단지 살수차의 레버만 돌아갔을 뿐.

백남기씨는 '원격'으로 투사된 공권력 폭력으로 숨진 최초의 한국 시민이다. '원격'이라는 표현은 폭력을 투사하는 데 '사람'의 개입이 희미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쓴 표현이다. 무시무시하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백골단도 자칫하면 시위대의 공격에 다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단벽 뒤의 물대포는 아무런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폭증한 미국의 '드론(무인기) 전쟁'과 비견할 만하다. 전쟁을 결심한 정치인은 항상 아군의 인명 피해에 대한 정치적 부담에 시달린다. 드론은 이러한 부담을 크게 줄였다. CIA는 작전 지역에서 1만2000km 떨어진 버지니아주 랭글리 공군기지에서 '원격'으로 테러리스트 사냥을 벌였다. 부담이 없으니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상하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과민한 연상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백남기 씨가 쓰러졌던 당시의 집회 현장에서 미국의 드론 전쟁을 떠올렸다. 보다 '비인간화'되고 '원격화'된 집회 통제 장비는 보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집회 탄압을 용이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차단벽+물대포'의 경찰 전술은 박근혜 정권의 집권과 더불어 반짝하고 나타난 게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전에는 소위 '명박산성'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컨테이너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명박산성'도 실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사용되던 전술이었다.

한국 경찰은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꾸준히 집회의 자유를 탄압하는 집회 대응 전술을 개발해왔고 백남기 씨는 그 최신 전술의 희생자였다. 이는 여전히 공권력의 집행에 시민의 통제가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군과 경찰의 문민통제는 여전히 요원한 대한민국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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