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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여험코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Q&A

자신이 '여성 혐오'와 관련이 없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 '내 여자만 아니면 괜찮다', ''내 여자는 그렇지 않다'라는 생각입니다. 자기 가족과 연인이 다른 남자로부터 차별을 겪거나 대상화되는 걸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고까지 여기면서도 불특정 여성에 대한 평가를 태연히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모르는 거죠. 만약 이야기했는데도 대수롭잖게 넘기거나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해요. '내 여자만 열외'라고 생각하는 그 좁은 관념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반드시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Gettyimage/이매진스

연인, 남사친, 직장 동료들이 던지는 '칭찬'이나 '호의'가 이상하게 꺼림칙한 적은 없었는지? 남사친의 악의 없는 말에 숨은 '여혐 코드'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주목하자. 코스모 독자들이 보내온 고민에 <혼자 있고 싶은 남자>의 저자이자 심리학자 선안남과 국제앰네스티가 명쾌한 해결책을 던져줬다.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된다니, '성'에 대한 차별적 기준

Q : 대학 동기들과 술을 마시는데 한 남사친이 20명의 여자와 사귀었다는 거예요. 모두가 그를 "능력 있다"며 치켜세웠죠. 그리고 조금 후에 저희 과에서 인기가 많았던 여자 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한 동기가 "걔 우리 학부에서만 4명이랑 사귀었대"라며 누구랑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얘길 들은 다른 친구가 "걔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지저분하네"라는 거예요. 순간 욱해서 "남자가 20명 사귀면 능력 있는 거고, 여자가 그러면 지저분한 거냐!"라고 화를 냈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네 이야기도 아닌데 왜 열폭하냐"며 웃더라고요. 다른 친구들이 말려 더 이상 싸우진 않았지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요. 이런 애들이랑 계속 친구를 해야 할까요? -송나래(31세, 프로그래머)

A : 한국의 지극히 평범한 남자는 잠재적인 연애·섹스·결혼 상대로서의 여자를 대상화하고 평가하는 문화에 숨 쉬는 공기처럼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한 성차별 문화는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들도 이러한 평가와 기준을 내면화하고 있지요. 그래서 '키 180 이하 남자는 루저'라든가 남성들의 행동에 대한 '미러링'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는 남자들이 있지만, 실은 여자들은 이미 일상에서 늘 겪어온 작은 폭력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례의 경우처럼 불편함을 느꼈다면 바로 표현하세요.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싫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상대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그건 존중과 예의의 문제입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나 연인이 '싫다'고 하는 것에 대해 납득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은 남자의 몫입니다. -국제앰네스티

여자에게 사회생활과 직업은 선택 사항일까?

Q :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면접을 보는데, 대화가 끝나갈 때쯤 회사 대표가 농담처럼 "이렇게 예쁜 꽃이 뭐 하러 일을 해. 그냥 왕자님 만나서 곱게 꽃처럼 살지"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꽃'이라는 말을 칭찬처럼, 여자는 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호의처럼 건네는 그 중년 남성의 말에 정말 황당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그 말이 왜 기분 나쁘냐고 되묻더군요.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이런 이야길 들어야 할까요? 이런 말을 하는 남자들의 저의와 심리가 궁금해요. 그리고 저 이런 회사 다녀도 되는 걸까요? -김혜인(27세, 취업 준비생)

A 겉보기엔 여성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는 '온정적 가부장성'의 대표적 사례네요. 꽤 많은 사람이 이런 경우에 대해선 문제의식을 못 느끼지요.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잘못된 성 평등 의식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들입니다. 남성에게 자신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어필하는 여성도 많은 게 사실이죠. 이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시간과 감정이 소중한 것도 있지만, 상대가 쉽게 변하고 바뀌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앞으로 계속 볼 사람,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표현해 상대가 문제의식 없이 반복하는 미묘한 그 차별을 멈추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사례의 경우엔 상대가 권력 위계에서 우위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섣부른 반응으로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발언을 회사에 대한 평가에 참고해 입사 여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안남

외모를 칭찬하면 여자가 기뻐할까?

Q : 평소에 운동화나 티셔츠, 청바지를 즐겨 입어요. 아주 가끔, 친구 결혼식이나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만 구두에 스커트나 원피스 차림을 하고요. 학교 동창 결혼식에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입고 갔더니 남자 선후배와 동기들이 흘끔거리더라고요. 그러려니 했는데 피로연에서 한잔씩 걸치면서 "야, 너 볼륨이 이렇게 어마어마했냐? 이제 좀 드러내고 다녀", "그렇게 입으니까 얼굴도 더 예뻐 보이네" 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옆에 있던 여자 동기들은 "인기 폭발해서 좋겠다"라는 말을 보태고요. 저는 중·고교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낸지라 이렇게 외모 평가를 면전에서 함부로 말하는 문화가 도통 적응이 안 돼요. 제가 유별난 걸까요? 남자들은 정말 '칭찬'이면 다 괜찮다고 생각하나요? -박수민 (29세, 디자이너)

A :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는 사소한 언어·비언어적 표현을 '성폭력', '성차별'로 인지하고 대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설사 상대의 말에 불편함을 느꼈더라도 그 말이 사소해서,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망칠까 봐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자 참고 넘어가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아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불쾌한 기분과 의심이 든다면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것 자체가 차별일 수 있습니다. 사소한 징후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큰 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고', '웃으면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차별의 끈을 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순응하는 여성이야말로 사회가 여성에게 씌운 굴레니까요.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이야기하세요. 호의와 칭찬을 가장한 오지랖, 단호히 대응하세요. -국제앰네스티

외모 비하의 대상이 지인이나 연인, 가족만 아니면 된다?

Q : 남자 친구와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분위기가 좋았는데 서빙하는 여직원이 주문을 헷갈렸는지 다른 음식을 가져왔죠. 컴플레인하려는 그를 말렸더니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하더군요. "살이 뇌에도 쪘나, 뚱뚱한데 멍청하기까지 하면 답 없는데." 너무 황당해 그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좋은 날 다투기 싫어 일단 참았습니다. 사실 남자 친구뿐 아니라 주변 남자들에게서도 여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남자들은 그런 발언이 자기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향한 말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박연지(32세, 회사원)

A : 자신이 '여성 혐오'와 관련이 없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 '내 여자만 아니면 괜찮다', ''내 여자는 그렇지 않다'라는 생각입니다. 자기 가족과 연인이 다른 남자로부터 차별을 겪거나 대상화되는 걸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고까지 여기면서도 불특정 여성에 대한 평가를 태연히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모르는 거죠. 사실 이런 남성들은 자신의 언행에 '문제의식'을 느낄 계기가 없거나, 그 말이 왜 잘못된 것인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별다른 의도 없이 발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내 남자 친구나 지인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싸움을 불사하더라도 할 말을 해야 합니다. 만약 이야기했는데도 대수롭잖게 넘기거나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해요. '내 여자만 열외'라고 생각하는 그 좁은 관념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반드시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선안남

여성의 능력, 지적 수준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Q : 남자 친구의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터프'한 그의 운전 스타일에 놀랄 때가 있어요. 성격이겠거니 넘어갔는데, 어느 날 앞차가 속도를 못 내고 좀 답답하게 운전하는 걸 보고 "아, 김 여사님 집에 계시지 또 차 끌고 나왔네"라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확인한 결과, 앞차 운전자는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가 중고차를 샀는데, 구매부터 보험까지 혼자 꼼꼼하게 비교했더니 직장 동료가 "여자가 차도 혼자 잘 사고, 보험도 야무지게 잘 들고 똑똑하네"라고 하더군요. 제가 차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그 사람이 '남자'여서가 아니라 '경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데. 도대체 남자는 왜, 자주, 대부분 여자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김아현(31세, 회사원)

A :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반하는 상황을 만나면 그 관념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를 '예외'로 판단합니다. 남자들이 가진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도 마찬가지예요. 강력한 위계질서에 순응하고, 여성을 열등시하는 데서 자신의 우월감을 찾으며 안도했던 역사가 길었던 남성이라면 여성의 열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죠. 따라서 이 사례처럼 '여자는 운전을 잘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수정하는 대신 '너는 열외', '여자치고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남자에겐 더 쉬운 것입니다. 이러한 편견 앞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그 편견을 넘어서려고 너무 애쓰는 것도 결국 편견에 가로막히는 대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해를 많이 받는 상황일수록 남성들의 고정관념과 상관없이 자신의 페이스로 자기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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