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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를 실천한 소설 속 주인공 4명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아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컨셉트의 예능이 상당한 호응을 끌어 내는 이유는 그들의 일상에 공감하는 1인 가구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기준으로 1인 가구는 한국 전체 인구의 34.01%를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살고 있겠지만 이제 1인 가구는 사회적인 큰 흐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나 혼자 산다'를 실천한 캐릭터를 등장시킨 소설이 있었다. 더구나 이들의 '나 혼자 산다'는 때로 방송보다 훨씬 스펙터클 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멋진 싱글 라이프인지 소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1. 로빈슨 크루소

"이렇게 나는 이 섬을 떠났다. 배에 있는 달력에 따르면 1686년 12월 19일, 그러니까 이 섬에 온 지 28년 2개월 19일 만이다...1687년 6월 11일 영국에 도착했다. 35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책 '로빈슨 크루소', 대니얼 디포 저)

'나 혼자 산다'의 형님 격 작품부터 살펴보자. 아버지 말을 안 듣고 바다로 모험을 떠났다가 풍랑을 만나고 해적에게 2년간 노예로 잡히고 브라질까지 가서 농장을 운영하는 등 온갖 일을 다 겪은 로빈슨 크루소. 결국 마지막으로 탄 기니로 가는 무역선에서 (또) 풍랑을 만나 한 무인도에 표류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려 24년간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나머지 4년은 '프라이데이'와 함께)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내용이 '나 혼자 산다'보단 '나는 자연인이다'에 더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사회 속에서 돈을 벌며 싱글로 살아가는 지금의 1인 가구와 달리 로빈슨 크루소는 모든 사회적 편의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필요한 전부를 자급자족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혼자서도 염소를 잘만 죽여 가죽 옷을 만들고, 배에서 가져온 곡식 부스러기를 뿌려 농사를 짓고, 심지어 포도를 따 건포도까지 만들어 보존식품을 즐기며, 애완동물까지 기르는 로빈슨 크루소의 생활상을 지켜보다 보면 "송로 버섯이랑 샥스핀은 안 드시나요?"라고 묻고 싶어진다. 어찌 보면 모든 '자연인'들의 롤모델인 셈.

2. 마션

"...이제 나는 400화성일이 아니라 490화성일에 걸쳐 굶어 죽는 여정을 시작하는 셈이다. 좀 나아지긴 했지만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어보려면 아레스 4가 착륙하는 1,412화성일째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약 1,000일분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내겐 없다.

젠장." (책 ‘마션', 앤디 위어 저)

'로빈슨 크루소'가 출간된 후 이를 원형으로 삼는 '1인 표류 소설'들이 수 백 년 간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 중 이만큼 극한의 '나 혼자 산다.'를 구현해낸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 화성 표류 소설 '마션'이다.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로 화성 탐사를 떠난 주인공 '와트니'는 모래 폭풍 때문에 안테나에 몸이 찔리는 불의의 사고로 당해 동료들로부터 낙오되어 화성에 혼자 남겨진다. 다음 우주선이 올 때까지 걸리리라 예상되는 1412일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주인공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그야말로 '별의별' 짓거리를 다하게 된다. 어떻게든 식량을 재배하기 위해 자기 똥을 모아 곱게 펴 바르고, 물을 만들기 위해 대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는 등 일련의 엽기적인 행동들이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진행되는 걸 지켜보는 일은 재미와 함께 지금 시대의 로빈슨 크루소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약 300년 전 로빈슨 크루소에게 필요한 자질이 ‘기술자로서의 재주’와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그려낸 로빈슨 크루소에겐 '과학자의 실험정신'과 '대범한 응용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렇듯, 싱글로 사는 것도 '계산된 또라이 짓'을 할 줄 모르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3. 독학자

"...나는 직업활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반복 노동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근본적인 나 자신의 상실을 안게 되리라는 막연한 예감을 느꼈다...만일 미래에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면, 최소한의 시간만을 투자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것이며,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서 책상 앞에서 인용문을 찾으며 고심하는 것보다는 오직 단지 즐겨 읽을 것이며,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에 짓눌리지 않도록 결혼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더욱 많은 시간을 오직 순수하게 읽고 공부하고 정신을 진보시키는 일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책 '독학자', 배수아 저)

소설 '독학자'는 로빈슨 크루소보다는 좀 더 우리와 결이 같은 '나 혼자 산다'의 유형을 그려낸다.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조금 더 자기에게 맞는 '생활'을 위해서 사회 속 '나 혼자 산다'를 선택한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80년대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짜리 새내기이지만, 지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을 불편해하는 학교의 분위기에 질려 자퇴를 결정한다. 그러고 난 후엔 '최소한의 시간만을 투자할 수 있는' 직업활동만을 하며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읽고 공부하고 정신을 진보시키는 일'에 쓸 거라 다짐하는 것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마션'이나 '로빈슨 크루소'와 소설의 내용과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혼자서 살아내기 위해 '계산된 또라이 짓'을 해야만 하는 상황의 본질 자체는 같을지도 모른다. 모든 인생이 마찬가지겠지만, 혼자서 '잘' 산다는 것 또한 그 나름의 실험이자 모험인 것이다.

4. 고슴도치의 우아함

"난 진심이었다. 난 오래 전부터 혼자 살겠다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못생겼고 거기다 영리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차라리 일찌감치 익숙해지는 것이 나은, 어둡고 환상 따위는 결코 없는 길로 들어서도록 선고 받는 것이다. 아름다움에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저속함조차도 그렇다. 지능은 더 이상 자연이 가장 혜택을 덜 받은 자식들에게 주는 재조정 같은, 어떤 정당한 보상은 아니고, 그저 보석의 가격을 좀 올리는 별 볼일 없는 장난감이다. 그런데 추함은 언제나 이미 유죄고, 내가 바보 천치가 아니었기에 더 큰 고통을 포함한 비극적인 운명이 내게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책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저)

혼자서 '잘' 살아가는 것을 매우 훌륭히 해내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프랑스 소설이 있다. 바로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르네'는 한 고급 아파트의 수위로 일하는 노년의 여성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고, 17살에 결혼했지만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나이 많은 여자. 사회에서 그런 여성에 대해 가지는 고정관념은 그 곳이나 이 곳이나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시선에 상관없이 그녀는 후설과 칸트의 현상학에 관심을 갖고, 말러의 음악에 감동받으며, 누군가가 마르크스에 관심을 가졌을 때 먼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매우 잘 살아나간다. 지적 생활이 주는 즐거움이 그녀를 누군가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준 것이다. 독서는 꼭 무언가를 얻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그렇게 우리들에게 힘을 주는 행위가 된다. '나 혼자서도' '잘'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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