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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타 패션은 그런 게 아니다

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로리타 아가씨'로 살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서 말하자면 로리타 패션에 가장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건 남성들입니다. 남성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대체 왜 저런 해괴망측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심지어는 자신이 '대상화'하기도 어려운 옷을 입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는 거죠. 로리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녀들의 전투복"이라는 경구가 있죠. 왜 이 옷을 "전투복"이라고 지칭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로리타 패션이 성애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말 그대로 시대와 불화하는 패션이기 때문입니다.

  • 이서영
  • 입력 2016.09.25 08:54
  • 수정 2017.09.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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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처음 로리타가 나타나기 시작한 맥락은 '아동성애'랑은 1도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1도...... 아동들에게 로리타가 피해를 입힌다고 확신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몹시 놀라운 사실이겠지만 그렇습니다...... 심지어 이걸 입는 사람들이 '어린애처럼 보이고 싶어서' 입는 것도 아니에요. 정말로 1도 상관이 없습니다.

로리타의 시작은 오히려 일본 비주얼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70년대에 고딕 패션이나, 고스록 등이 등장을 했죠. 그런 패션은 한때 서양을 한 번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에 일본에서는 이걸 일본식으로 컨버젼한 말리스 미제르의 마나, 라렌느의 에미루 같은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서양에서처럼 '데스'를 강조한 것보다는 좀 더 오밀조밀한 느낌이었긴 한데, 이건 일본이 흔히 '와풍'으로 자기화 할 때 디테일을 섬세하게 첨부하는 경향을 좀 더 고려해야 할 것이구요. 더불어 그런 '비주얼락'의 가장 큰 소비계층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오밀조밀한 중세유럽풍의 비주얼을 택하게 된 것도 가장 큰 소비계층이 여성들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의 서브컬쳐는 언제나 중세유럽을 사랑했죠. 하지만 로젠메이든 같은 만화에서 남성들이 이런 것들을 재현하기 시작한 건 그렇게 오래 된 일이 아닙니다. 중세유럽을 서사로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코드화 한 건 <베르사유의 장미>나 <올훼스의 창> 같은 소위 '소녀만화'들이었습니다. 이런 만화들에서는 성역할 구분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그걸 미적 코드화했죠. 90년대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결합하면 <천사금렵구>나 <백작 카인> 시리즈 같은 게 나온 거고요.

잠깐만 생각해도 아시겠지만, 이게 남성들의 '성애화' 문화는 절대 아닙니다. 이거 다 여성 독자 대상으로 나온 컨텐츠고. 장식적인 중세 유럽을 재현하는 게 '세기말'의 '데카당'을 소화하는 많은 방식 중에 하나였던 거죠. 그 맥락에서 로리타 패션이 튀어나옵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서 말하자면 로리타 패션에 가장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건 남성들입니다.

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로리타 아가씨'로 살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서 말하자면 로리타 패션에 가장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건 남성들입니다. 남성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대체 왜 저런 해괴망측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심지어는 자신이 '대상화'하기도 어려운 옷을 입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는 거죠.

로리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1일이라도 있어보면 알 수 있을 일입니다만, 이 패션 커뮤니티는 철저하게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성들 안에서 발생한 문화고, 여성들의 규율 안에서 존재합니다. 여성들끼리 만들어 놓은 견고하고 단단한 세계입니다. 약간의 '롤플레잉' 같은 느낌도 없지는 않죠. 그건 이 패션이 그만큼 자폐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폐적인 세계라는 게 특히 중요합니다. 로리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녀들의 전투복"이라는 경구가 있죠. 왜 이 옷을 "전투복"이라고 지칭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로리타 패션이 성애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말 그대로 시대와 불화하는 패션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생활반경과 그 옷의 형태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시대와 불화하는 옷을 입겠다는 자의식의 투영입니다. 나는 이 시대의 미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죠. 남성들에게 성애화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옷들, 태도들, 말투와 행동들.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자폐적인 나의 "완전한 여성적 세계"로 잠입하기 위한 옷입니다. 그러니까 이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것부터가 전투가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성애화하는 시선으로 보지 않아요. "질겁"하는 시선으로 보죠.

여동생은 집 앞에서 절 만났는데 모른 척 하고 도망치고, 지하철에 타면 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입은 파니에 때문에 자리에 앉지를 못합니다. 학교에서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남자들한테도 인기는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입는 게 "어려 보이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어린아이들은 이런 옷을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이런 옷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떼를 썼던 기억도 생생하고, 공주 옷 안 입으면 유치원 안 가겠다고 지랄을 했던 기억도 있네요.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이런 옷을 좋아하는 것은, 그녀들이 '동화 속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그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세계와 하나가 되길 원하는 거죠.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라는 책을 보면, 동화 속의 세계와 동일시한 딸들을 보고 딸들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은 '페미니스트' 엄마들의 멘붕이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가만히 그 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딸들은 왕자가 자길 구하러 오길 바란다기보다 그 '동화'에 사로잡힌 거죠. 이건 로리타 패션을 입는 사람들과는 결이 약간 다릅니다. 로리타 패션은 그 동화가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데카당'이라고 표현했듯이요.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의 여성이 세상과 불화하는 데카당의 세계를 구성하고 자신의 세계로 몰입하는 그 어느 부분이 '수동적'이고, '무저항의 표정'이며, '힘없고', '애정을 갈구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히려 로리타 패션과 더 자주 결합하는 것들은 깃발, 싸늘함, 피, 죽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로리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취향이 다양하고 '살아야 하니까', 더 다양해 진 것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 패션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패션입니다. 세상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패션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 패션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패션입니다. 세상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패션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이렇게_입으면_기분이_조크든요 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패션이죠. '아동복'이라고 얘기하자면, 요즘엔 애들한테 펑크룩도 입히더라구요.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옷을 입지 맙시다' 라고 말하면, 아동들한테는 대체 뭘 입힐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뭘 입을 수 있을까요. 로리타 패션을 입는 사람들은 상품이 아닙니다. 거대 미디어도 아니고요. 그들이 자신이 입은 옷차림에 대해서 '품평' 들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문화맹'적인 시선에 멋대로 서사조작까지 당해가면서는 더더욱이요.

엄마들에게는 아주 많은 폭력이 행해지죠. '엄마가 그래서 되겠니', '넌 엄마가 되어서 그것밖에 못하니', '그렇게 애를 키우면 어떡하니'. 그 모든 말들은 '약자'인 '아이'를 보호한다는 이유에서 발화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수많은 기준들이 있죠. 그런 말을 하는 건 적어도 페미니즘적이라고 불리진 않을 겁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가 아닙니다.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망상적 피해를 만들어내지 마세요.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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