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맥라렌은 부인했지만 애플의 맥라렌 인수가 완벽하게 말이 되는 이유

  • 허완
  • 입력 2016.09.22 15:20
  • 수정 2016.09.22 19:38

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애플이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건 전혀 비밀이 아니다. 그게 자동차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일지 아니면 정말 '애플 자동차'일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애플이 자동차에 대한 무엇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맥라렌과 인수·투자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언론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애플의 맥라렌 인수가 말이 되는 이유' 같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물론 맥라렌은 보도가 나온 직후 "애플과 어떤 투자 협상도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정말 그게 사실인지도 모른다. (FT는 '그러나 맥라렌은 애플로부터 협상 제의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친절하게 주석을 달았다.)

애플은? 역시나 아무런 말이 없다. 애플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자동차 사업 진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2015년 초부터 애플이 어떤 식으로든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는 꽤 분명한 증거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잊을 만 하면 나왔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와이어드더버지, 블룸버그, 가디언, BBC,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정말 많은 언론들에 따르면, 애플의 맥라렌 인수는 완벽하게 말이 된다. 아니, 어쩌면 애플은 맥라렌을 반드시 인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심각하게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라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동차는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다

우리가 종종 잊는 사실이지만, 자동차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몇 가지만 떠올려 보자.

자동차 한 대에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개발 기간은 평균 4~5년, 개발 비용은 한 모델 당 수천억원에 이른다. 어떤 자동차도 주행중 갑자기 시동이 꺼지거나 불이 붙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들은 항상 정확하게 작동해야 한다. 아주 작은 오류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히 움직이고 정확히 멈춰야 하며, 사고가 났을 경우에는 탑승자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애플 자동차'에 대한 소문이 한창 떠돌던 지난해 9월, 와이어드는 '애플은 혹독한 자동차 규제의 세계에 대비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한 적이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가이드라인(미국 연방자동차 안전기준; FMVSS)은 대시보드 방향지시등의 크기와 색깔부터 연료 게이지 아이콘, 각각의 탑승자석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물리적 힘까지 견딜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까지 모든 것들을 망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차대번호(VIN)는 반드시 17자로 되어 있으면서도 I나 O, Q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글씨체는 대문자로 된 산셰리프체여야만 한다.

(...)

심지어 사이드뷰의 정확한 각도도 규제 대상이다. "사이드뷰미러는 차량의 운전자쪽 외면에서 가장 튀어나온 부분의 세로 접면과 직교하는 선, 운전석을 가장 뒤로 했을 때의 운전자 눈 뒤 10.7m의 접면에서 바깥으로 2.4m 선을 지평선 방향으로 연장한 곳의 평평한 도로 표면을 운전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와이어드 2015년 9월21일)

아이폰을 만드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자동차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게다가 20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자동차 산업에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쟁쟁한 업체들이 가득하다.

애플은 자동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본 경험도 없다. 그렇다면 주어진 옵션은 두 가지다.

1.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고 완성될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지만, 연구와 실패를 거듭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 독자 개발한 자동차를 출시한다.

2. 쟁쟁한 업체들 중 하나를 인수한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까? 답은 이미 나와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만드는 건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때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경험과 기업적 지식도 필요하다. 테슬라 CEO이자 맥라렌 고객이었던 일론 머스크가 지난 10년 간 고생해가며 배운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자동차 산업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애플로서는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맥라렌의 자동차 생산 노하우를 분명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맥라렌을 인수하면 애플은 자동차 생산 경험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중 하나인 회사를 갖게 된다. (비즈니스인사이더 9월22일)

2. 맥라렌은 애플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

다음 질문은 자명하다. 왜 하필 맥라렌인가? 지난해에 고작 1654대의 자동차를 생산했을 뿐인 이 작디 작은 회사에 애플은 왜 관심을 보인다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맥라렌을 '슈퍼카'나 'F1'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하고 있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가디언은 이렇게 설명한다.

적자를 내고 있는 이 영국 자동차 회사는 단순한 포뮬러1 레이싱팀이나 슈퍼카 제조사 그 이상이다. 맥라렌은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혁신의 전통을 품고 있다. 최초의 탄소섬유 F1 레이싱카와 탄소섬유로 제작된 최초의 로드카 '맥라렌 F1'이 거기에 포함된다.

(중략)

그러나 (인수를 통해) 애플이 얻을 수 있는 최대 이점은 맥라렌의 시스템 통합 및 생산 부분 전문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 번 뿐인 프로토타입 자동차를 양산차로 만들어 내는 건 힘든 작업이다. (가디언 9월21일)

와이어드의 설명도 비슷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기술, 듀얼 클러치, 패들 시프프 기어, 탄소섬유, 액티브 서스펜션, 디스크 브레이크, 심지어 리어뷰미러 까지도 모두 레이싱 분야에서 소개됐으며, 맥라렌은 1963년부터 레이싱에 참여해왔다. 요즘 시상대 위에 서는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맥라렌은 F1에서 가장 성공적인 팀 중 하나다.

(중략)

그러나 애플이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건 맥라렌이 F1의 노하우를 다른 산업에 적용하기 위해 2004년 분사시킨 맥라렌어플라이드테크놀로지(MAT)일 것이다. 이 회사는 영국 히드로 공항의 항공편 지연을 감소시켰고, 뇌졸증 환자에 대한 헬스 모니터링을 개선시켰으며, 심지어 치약 공장을 더 효율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맥라렌이 보유한 모든 전문적 지식을 전수하면 애플이 겪고 있는 문제도 풀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자동차에 소프트웨어를 심는 것 말이다. (와이어드 9월21일)

3. 둘은 (느낌적으로) 잘 어울린다

조금 감상적으로 접근해보자면, 애플과 맥라렌은 꽤 잘 어울린다.

2011년 완성된 맥라렌 프로덕션 센터는 맥라렌의 차량이 조립되는 곳이다. 이 건물은 직사각형에 모서리가 둥근 '라운드렉트' 모양으로 생겼다. 오리지널 맥킨토시 윈도우와 비슷한 모양이다.

사실 맥라렌의 전체적인 디자인 에토스는 섬뜩할 정도로 애플의 상징과도 비슷해보인다. 본사 건물의 둥근 모습부터 공장의 눈부신 하얀색 바닥까지, 애플이 맨 처음부터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다면 아마도 맥라렌처럼 했을 것이다.

애플이 맥라렌을 인수할지는 모르겠지만, 애플이 인수할 만한 자동차 회사를 찾는다면 맥라렌보다 더 딱 맞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는 건 알 수 있다. (더버지 9월21일)

애플이 전 세계 탑 포토그래퍼들 손에 아이폰을 쥐어주고 비욘세부터 칼 라거펠트에 이르는 셀럽들의 손목에 애플워치를 채워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애플이 세계에서 가장 명망있는 트랙에 자신들의 미래 자동차 플랫폼을 얹고 싶어하는 것도 말이 된다. (블룸버그 9월22일)

영국 워킹(Woking)에 위치한 맥라렌 공장. ⓒGettyimage/이매진스

가디언의 마크 해리스는 두 회사의 '케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맥라렌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에 구애를 보냄으로써 애플은 닛산의 실험적인 자율주행차 리프나 향후 출시될 테슬라의 준(semi) 자율주행차 모델3 같은 차량들과의 가격 경쟁을 위해 자동차 분야에 진출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테슬라의 초기 공동 창업자 중 하나인 마틴 에버하드는 맥라렌에 대한 애플의 관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흥미로운 조합이다. 대중에게 맥(Mac; 애플 컴퓨터)을 판매하는 회사가 1%를 위한 맥(Mc ; 맥라렌)을 인수한다니." (가디언 9월21일)

그런가 하면 파이낸셜타임스는 다음과 같은 시각을 소개했다.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터지의 애널리스트 벤 바자린은 애플 고위 임원이 자동차에 갖는 친밀감은 자동차 엔지니어링을 넘어 미학과 소재 분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애플은 분야를 넘어 혁신을 적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자동차 (연구 개발) 성과는 다른 분야의 새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맥라렌이 투자하는 것들은 모두 애플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이다. 애플이 보여준 많은 행보의 의미를 살펴보면, 새로운 소재, 새로운 생산 공정, 전반에 걸친 새로운 기술이야 말로 애플의 전략에서 매우 큰 부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9월21일)

아, 참고로 맥라렌 인수 비용(20억 달러 미만, 약 2조2300억원) 쯤은 애플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애플이 얼마나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구글에 한 번 물어보라.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경제 #자동차 #애플 #맥라렌 #IT #테크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