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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자 이웃들 다 깨우고 숨진 고 안치범씨, '의사자' 지정 추진된다(사진, 영상)

ⓒ연합뉴스

"처음엔 아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어요. 불이 난 데를 왜 다시 들어갔냐고…. 그런데 임종 때 아들에게 내가 그랬어요. 아들아 잘했다,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9호실에 차려진 '서교동 화재 의인' 안치범(28)씨의 빈소는 다소 썰렁했다.

간간이 찾아오는 조문객을 맞이하던 안광명(62)·정혜경(57)씨 부부가 영정 사진을 바라보면서 기자의 손을 꼭 잡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충혈된 이들의 눈은 아들 이야기를 하니 금세 촉촉해졌다. 성우를 꿈꾸던 영정 사진 속 아들 안씨는 보조개를 드러낸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안씨는 9일 자신이 살던 마포구 서교동의 한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나자 먼저 대피해 신고를 한 뒤 다시 건물에 들어가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를 질러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2일 화재 현장에서 이웃들을 구하고 숨진 '서교동 화재 의인' 고(故) 안치범 씨를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의사자는 직무 외의 영역에서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숨진 사람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의사상자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경찰이 확보한 건물 앞 CCTV 영상을 보면 안씨는 오전 4시 20분께 밖으로 나와 3층에 불이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그의 방에는 이 건물에서 가장 큰 발코니가 있다고 한다. 만약 안씨가 중요한 물건을 챙기려고 자신의 방으로 향한 것이었다면 지금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안씨가 향한 곳은 3층의 불이 난 방이었다. 그는 이 방 문을 두드리며 "나오세요! 나오세요!" 하고 외친 것으로 보인다. 5층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소방대원에게 발견된 안씨는 손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소지품은 없었다.

주민들은 안씨가 외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 대피할 수 있었다. 한 주민은 안씨가 초인종을 눌러준 덕분에 방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4층에 사는 주민 오정환(37)씨는 "대피한 다른 주민 중에 내 방 초인종을 눌렀다는 사람이 없다"면서 "안씨가 초인종을 눌렀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웃들을 화마에서 구해낸 안씨 자신은 정작 연기에 질식, 병원으로 옮겨져 사경을 헤매다 10여 일만인 20일 새벽 끝내 숨을 거뒀다.

MBN

안씨는 평소 집에서 과묵하고 말이 없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안씨는 성우 시험 준비에 매진하기 위해 화재 발생 불과 두 달 전 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마포구에 원룸을 구해 따로 지내왔다.

그는 집안에서는 말수가 적었지만, 바깥에 나가서는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는 등 활발히 선행을 해왔다고 한다.

정씨는 "아들이 워낙 말이 없어 잘 몰랐는데 병원에 찾아온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같이 봉사활동을 했다고 말해줘서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정씨는 불이 나기 며칠 전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들에게 "위급한 상황엔 너도 빨리 대피하라"고 말하자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정색하던 안씨가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는 "많은 시민분이 함께 슬퍼해 줘 힘이 난다. 아들이 이웃들을 살리고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서 아들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을 꼭 쥐고는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안씨 가족은 이웃들을 살리고 떠난 고인을 기려 당초 장기기증을 하려고 했지만, 안씨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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