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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간 당한 경험에 대해 글을 썼고, '이용당한' 기분이 들었다

  • Unwritten
  • 입력 2016.09.22 08:27
  • 수정 2016.09.22 08:29

내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는 건 결코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곧 그게 사람들이 내게 듣고 싶어하는 유일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문자 그대로 유일한 것이었다. 강해지는 것이 아닌, 내가 어떻게 상처 받았는지에 대해서만 듣고 싶어했다.

웹사이트에 글을 쓸 때는 내가 성폭행 당한 것에 대해 용감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난 처음에는 그게 용감한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거나 논의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슬프게도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글을 쓰자마자 다른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난 그걸 찬사로 받아들였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을 쓰고, 나는 강한 피해자로서 남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적인 것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내게 그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했다. 심지어 내 상사조차 “음, 이제 당신이 우리의 전속 강간 작가야.”라는 표현을 썼다. 이런 주제의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났다. 어떻게 전문직 종사자와 에디터가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불평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 글이 실리는 것이니까. 정말로 불평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더럽고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 재능이 낭비되는 것 같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유일한 것은 내가 고통스러운 것, 한때 나를 파괴했던 것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뿐인 것 같았다.

문제는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상처를 받은 다음에도 수치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그런 일을 겪은 뒤인데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나는 ‘강간’ 기사 하나를 쓸 때마다 다시 피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언가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 삶의 모든 자잘한 것들을 규정해야 한다. 우리는 젠더와 관계를 규정하고, 또 사람도 규정한다. 나는 현실의 인간이라기보다는 규정에 가까웠고,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

여기서 슬펐던 부분은 결국 나는 강했다는 것이다. 내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는 나는 강했지만, 그런 느낌이 들질 않았다. 나는 내가 이용당하는 기분이었고,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계속해서 다시 들춰지는 것 같았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피해자가 강해지게 해주면서도 그들의 목소리를 남용하지 않는 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우리가 강간 문화의 핵심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어떻게 공격을 받았든 간에 대상으로 취급 받는다.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지 말았어야지.”, “취하지 말았어야지.”와 같은 핑계들은 강간의 여성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영속화시킬 뿐이다. 강간은 절대 괜찮지 않다. ‘강간 작가’를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다.

피해자들은 절대 피해자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그들이 자신이 받았던 공격에 대해 말할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를 착취하고 그들을 다시 피해자로 만들어선 안 된다. 그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여성으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글은 Missy AmatoUnwritten에 먼저 기고한 글입니다.

* 위의 글은 The Huffington Post US에서 소개한 블로그를 한국어로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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