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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시장경제에서 운이 크게 작용하는 까닭은 최초 몇몇 소비자들의 반응이 이후의 소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최초의 소비자들이 마음에 들어 하고 입소문을 좋게 내주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 입소문이 누적되면서 다른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작은 차이였던 것이 점점 커져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마태효과(Matthew Effect)라고 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마태복음 25장의 구절을 빗댄 것이다.

  • 유종일
  • 입력 2016.09.21 14:26
  • 수정 2017.09.22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는 중국 괴이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여기에 한 선비와 옥황상제가 등장하는 신기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1) 이 선비는 자신보다 변변치 못한 자들은 버젓이 과거에 급제하는데, 자신은 늙도록 급제하지 못하고 패가망신하자 옥황상제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에게 술내기를 시키고, 만약 정의의 신이 술을 많이 마시면 선비가 옳은 것이고, 운명의 신이 많이 마시면 세상사가 그런 것이니 선비가 체념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내기 결과 정의의 신은 석 잔밖에 마시지 못하고,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이나 마셨다. 옥황상제는 세상사는 정의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에 따라 행해지되, 3할의 이치도 행해지는 법이니 운수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선비를 꾸짖고 돌려보냈다.

인생사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데는 운과 실력의 역할이 7 대 3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아마도 '운칠기삼'은 수많은 직간접 경험 속에서 얻어낸 통계학적 추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옛날 중국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적용이 될까? 추석을 맞아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스톱을 칠 때야 흔히 '운칠기삼'을 말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는 시장경제에서도 과연 이 말이 적용될까?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강조하는 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실력과 노력을 보상하는 시스템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만들어 팔든지, 많은 기업들이 원하는 역량을 획득하여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고부가가치 노동을 파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성공하는 길 아니던가?

이미 CEO들의 '행운의 보수' 현상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업의 성패는 운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 된다. 사업가들이 점을 보러 가는 경우가 흔한데,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고 운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점을 본다고 운을 미리 알거나 운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서 일군의 사회학자들이 흥미로운 연구를 통하여 고도로 발달된 시장경제에서도 사업의 성패가 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밝혀냈다.2) 사전에 전문가들의 평가를 통하여 상품의 질을 판단한 다음에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실험을 했다. 최고의 상품이 전혀 뜨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경우도 있고, 최악의 상품이 우연히 떠서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으며, 보통 품질의 대다수 상품은 거의 운에 의해서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과였다. 가히 '운칠기삼'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시장경제에서 운이 크게 작용하는 까닭은 최초 몇몇 소비자들의 반응이 이후의 소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최초의 소비자들이 마음에 들어 하고 입소문을 좋게 내주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 입소문이 누적되면서 다른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영화의 흥행은 전문가들도 예측하기가 어려워서 큰돈을 투자했다가 낭패하는 경우도 많고, 투자를 받지 못하여 쩔쩔매다가 저예산으로 만들었는데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도 있다. 입소문을 예측하기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작은 차이였던 것이 점점 커져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마태효과(Matthew Effect)라고 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마태복음 25장의 구절을 빗댄 것이다.

수많은 상품을 취급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대기업의 경우에는 좋은 운과 나쁜 운이 수없이 교차할 터이고, 따라서 펀드 매니저의 수익률처럼 대기업의 성과도 일정하게 평균회귀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Good To Great"나 "Built To Last"같은 경영학 베스트셀러들이 찬양한 회사들의 실적을 추적한 연구가 있다. 이에 따르면 대단한 경영전략이나 기법 덕분에 성공한 것으로 거론된 회사들의 무려 88%가 나중에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회사들의 성공 요인은 특별한 경영기법이라기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었고,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평균회귀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 회사들의 강점이 마침 큰 힘을 발휘하는 환경을 만났던 것뿐인데, 경영학 서적들은 성공의 비결을 기어코 찾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모든 사건들에 대하여 무언가 그럴듯한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합리화의 욕구는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이다. 사후적 설명은 언제나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대부분 엉터리로 지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에서는 매일매일 주식시장의 변동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조금만 추적해보면 똑같은 이유로 주가가 올랐다고도 하고 내렸다고도 하고 말장난 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왜 그렇게 유명해졌을까? 미술평론가들이 모나리자의 위대성을 이러쿵저러쿵 설명하지만 사실 모나리자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혀 유명하지 않았다. 모나리자가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1911년 루브르에서 일하던 한 이탈리아인 인부가 이 그림을 훔쳐서 이탈리아로 도망간 사건이었다. 범인은 이년 후 플로렌스의 화랑에 그림을 팔려다가 검거되었는데,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은 범인이 모나리자를 고국으로 되찾아오려고 한 애국자라며 칭송했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에 분노했다. 이 사건이 그림의 사진과 함께 전 세계의 신문에 실리면서 모나리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그림이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루브르를 찾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나리자 앞에 모여들었다. 모나리자는 유명해졌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다.

우리는 운의 역할을 인정하기보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사후합리화하기를 좋아하지만, 옥황상제의 말처럼 세상일에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 시장에서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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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산백과

2) Duncan J. Watts, Everything is Obvious: Once You Know the Answer, Crown Business, 2011. Watts는 이 책에서 Matthew Sagalnik, Peter Dodds와 함께 수행한 실험의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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