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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국가, 신뢰 낮은 사회

'저복지'도 큰 문제지만, '저(低)재정' 즉 국민총생산액 중에서 국가(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이 재산, 소비, 근로소득 중에서 세금으로 내는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즉 한국은 부자나라이기는 하지만 기업과 개인이 부자이고, 국가(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이 너무 적어서 재분배 정책 , 즉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이다.

  • 김동춘
  • 입력 2016.09.21 13:26
  • 수정 2017.09.22 14:12
ⓒshutterstock

정부가 제출한 2017년 예산 규모를 보면 정부 예산이 400조를 넘었고 복지비도 130조를 넘었다. 한국은 최근 20년 사이에 국가 예산 중 복지비 지출액수는 물론 GDP 중 조세부률이 가파르게 높아진 나라 중 하나다. 그런데도 한국은 아직 GDP 중 복지비 지출이 10% 정도인 저(低)복지 국가에 속한다. 1인당 소득 기준으로 봐도 스웨덴이나 독일은 1만 불을 넘었을 때 복지비 지출은 20%를 넘어섰으나 3만 불에 육박한 한국은 아직 5%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 심각한 사실은 한국의 GDP 대비 국가재정과 조세부담률(사회보장비 포함)도 OECD 평균에 10% 정도나 뒤떨어져 있고, 여전히 OECD 최하위 군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뭘 의미할까? '저복지'도 큰 문제지만, '저(低)재정' 즉 국민총생산액 중에서 국가(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이 재산, 소비, 근로소득 중에서 세금으로 내는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즉 한국은 부자나라이기는 하지만 기업과 개인이 부자이고, 국가(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이 너무 적어서 재분배 정책 , 즉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이다.

곳간 비고 빚 느는 '약한 국가'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민간 경제활동에 깊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란 국가는 매우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재정규모로 보면 실제 한국은 '약한 국가'에 속한다. 실제로 개발독재 시절인 6,70년대에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매우 낮았다. 87년 민주화, 두 민주정부도 획기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작은 정부', 탈규제, 민영화론이 득세하였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증세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다는 논리가 세를 얻어서 급기야 종부세도 폐지되고 법인세도 줄어들었다. 국가의 곳간은 비었으나 부자들은 웃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말기 300조 원 정도였던 국가부채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내년도 국가채무는 680조가 될 것이라 한다. 4대강 개발로 인한 수자원 공사의 부채 8조 중 2초 4천억을 정부 재정에서 메울 것이라는 소식까지 들려 더 답답한 심정이다. 조세부담률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국가의 재정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도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서 크게 늘어날 연금, 복지, 의료비를 충당하기 어려울 것이 뻔한데, 지난 10여 년 동안 재정규모를 뒷걸음치게 만들고 그나마 국가부채만 잔뜩 늘였으니,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분통 터지는 일이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한 세대 이상 지속될지도 모르는 엄청난 짐을 남겼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가가 기업 지원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저성장 고령화가 돌이킬 수 없게 된,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선 한국으로서는 재정 규모 자체, 그리고 그 중 복지 교육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여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고 사회적 통합에 더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조세부담률 즉 재정규모를 늘리려면 국가(정부) 신뢰의 확보, 즉 조세 징수의 공정성과 지출에서의 투명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권의 민주성과 공공성이 보장될 때만 국민이 납세 의사를 가질 것이다.

세금 거두려면 신뢰 있어야

OECD 국가 중에서 GDP 대비 재정규모가 작고, 복지비 지출이 미미한 미국, 멕시코, 그리스 등은 하나같이 정치 불신이 높고, 기득권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이 매우 취약한 나라들이다. 물론 성장이 지속되어야 세금도 걷힐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득과 재산이 극도로 불평등해진 나라의 국민들이 소득세를 더 낼 여력이 있을까? 그리고 한국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들, 썩어가는 4대강, 연일 터지는 국방비리, 그리고 한진해운 경우처럼 경영 실패로 인한 기업부채를 밑 빠진 독 물 붓기 식으로 지원한 일, 정권홍보를 위해 혈세를 사용하는 것을 목격하는 국민이 세금낼 마음이 생길까?

'저(低)신뢰', 관료 부패야말로 국가의 곳간을 비게 만들어 국가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국가의 적'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는 과연 어떠했나? 재정 확대의 비전이 없었나, 아니면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무너졌나? 정권이 교체되면 달라질까?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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