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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에서 출발한 '해리포터연합'은 어떻게 사회운동을 하게 되었나

해리포터연합이 이뤄낸 대표적인 활동 사례는 워너 브라더스 사를 상대로 한 것입니다. 해리포터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 워너 브라더스 사는 작품에 등장하는 '개구리 초콜릿'을 본딴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문제는 초콜릿 생산에 사용되는 원료를 만들기 위해 제3세계의 노동자들 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이 가혹한 노동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고, 워너 브라더스 사가 만드는 개구리 초콜릿 역시 그러한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해리포터연합의 회원들은 무려 4년 동안 끈질기게 공정무역인증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이어갔습니다.

  • 와글(WAGL)
  • 입력 2016.09.21 12:58
  • 수정 2017.09.22 14:12

1997년 영국에서 출간된 책 '해리포터'는 전 세계 팬들을 환상적인 마법 세계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출간 이후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되었고, 해리포터 시리즈가 책, 영화, 완구 등 관련 매출만 2015년 기준 약 3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해리포터가 남긴 상업적 팬덤과 매출을 넘어서는 또 다른 성과가 있으니 바로 '덕질'에서 출발해 사회운동에까지 이른 해리포터연합(The Harry Potter Alliance)이라는 단체입니다.

슬리데린 기숙사생으로 분한 학생들 / John Stephen Dwyer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앤드류 슬랙은 문화 자체가 기술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문화가 사회집단을 단순히 반영할 뿐이라는 주장에서 머무르지 않았죠.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게끔 무장시키는 문화의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긴 것이 바로 해리포터연합입니다.

슬랙은 2005년도에 '해리포터연합'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슬랙은 해리포터 시리즈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올리기 시작했고, 해리포터의 열성적인 팬들이 이 내용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해리포터연합은 커뮤니티로 성장해나갑니다. 2016년 현재 해리포터연합은 팬 클럽인 동시에 비영리 단체로서 세계 6개대륙 30여개국에 300개가 넘는 지부를 거느리고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단체의 '배후'에 바로 창설자 앤드류 슬랙이 있었습니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요?

그저 그런 덕후가 아닙니다

앤드류 슬랙(Andrew Slack), 해리 포터 연합 창립자이자 아쇼카 펠로우 / Pictures of Pete Schrum

무대배우이자 사회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앤드류 슬랙의 성장기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예술적 화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한 연극놀이, 중학교 때 학생회 선거에서 자작 랩으로 벌인 연설, 고등학교 시절 운영한 '커피 토크'라는 동아리 등을 통해 공감과 연대를 확산시킬 다양한 방법의 스토리텔링에 골몰한 것이죠.

대학에 진학해서는 '한밤의 극회(The Late Night Players)'라는 이름의 코미디 그룹을 만들고 이들과 함께 '슬랙과 함께 하는 한밤의 스낵'이라는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졸업 후 전문 공연인으로 나서게 됩니다.

활동 이력만 보면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 같지만, 그는 굴곡진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의 다른 집들보다 불우했던 가정환경 때문에 슬랙은 자주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영향으로 슬랙은 학생회장이 된 뒤(독보적인 '랩연설'로 당선),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학교 분위기 조성에 힘썼습니다. 인권운동과 사회운동 분야에 학문적인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자신의 전공이었던 공연예술과 인문학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탐색해나갑니다.

그러던 와중에 슬랙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게 됩니다. 그는 작품으로서 해리포터의 매력에 빠져들었지만, 실제로 슬랙이 그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해리포터를 둘러싼 엄청난 팬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해리포터연합은 슬랙이 동명의 블로그를 개설해 해리포터에 관한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는 과정에 다른 팬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탄생한 것이죠.

조그만 블로그에서 시작한 해리포터연합은 2016년 현재 팬 클럽인 동시에 비영리 단체로서 세계 6개대륙 30여개국에 300개가 넘는 지부를 거느리고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리포터연합은 원작의 인기를 바탕으로 조직적 운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열성팬들이 자연스럽게 '퍼스트 타임 운동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이들이 해리포터연합에 소속되기 전에는 한 번도 사회운동이나 캠페인에 참여해본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해리포터에 열광했지만 그 에너지를 사회를 바꾸는 데 쓰게 된 것이죠.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켰을까요?

팬클럽에서 출발한 해리포터연합은 어떻게 '사회운동'을 하게 되었나?

해리포터연합은 슬랙이 동명의 블로그를 만들어 책에 관한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는 과정에 다른 팬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탄생했습니다. 슬랙은 이 가상 커뮤니티가 매우 능숙하게 새로운 문화적 코드를 만들어내는 팬덤의 힘에 놀라게 됩니다. 계획을 집행하고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이 기존의 사회운동단체나 정치인이 보여주었던 모습보다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리포터라는 작품을 통한 깊은 연결성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 커뮤니티는 그 자체로 협업이 진행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슬랙은 "물론 해리포터연합이란 건 웃기는 아이디어"라고 말하면서도, "바로 그 점이 해리포터연합을 아주 뛰어난 조직으로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해리포터 연합의 그레인저 리더십 아카데미 트레이닝 세션/ Granger Leadership Academy

해리포터연합이 이뤄낸 대표적인 활동 사례는 워너 브라더스 사를 상대로 한 것입니다. 해리포터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 워너 브라더스 사(Warner Bros. Entertainment Inc.)는 작품에 등장하는 '개구리 초콜릿'을 본딴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문제는 초콜릿 생산에 사용되는 원료를 만들기 위해 제3세계의 노동자들 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이 가혹한 노동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고, 워너 브라더스 사가 만드는 개구리 초콜릿 역시 그러한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해리포터연합은 워너 브라더스사가 생산하는 개구리 초콜릿이 공정무역인증을 받도록 권유했습니다. 공정무역인증은 초콜릿에 사용되는 원료가 아동노동이나 부당한 거래 없이 정당한 과정을 통해 생산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워너 브라더스 사는 이러한 요청을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해리포터연합의 회원들은 무려 4년 동안 끈질기게 공정무역인증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워너 브라더스 사는 2015년 말까지 생산중인 초콜릿 제품에 대해 공정무역인증을 완료하겠다는 공식 서한을 앤드류 슬랙 앞으로 보냈습니다.

"마법사들이 승리하다!" 아동 학대 반대 캠페인 성공을 해리 포터 속 <예언자 일보>를 차용하여 알린 이미지 / 해리포터연합 블로그

워너 브라더스 사로 하여금 공정무역 인증을 받게끔 설득하기 위해 해리포터연합 회원들이 들인 노력은 그 기간이나 참여인원만으로도 놀랍지만 방식 또한 참신했습니다. 플래시몹부터 손수 제작한 동영상 컨텐츠, 자체 보고서,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 청원까지, 놀이에 가까웠죠. 당연히 '죽음의 성도들', '머글의 실수' 등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이름이나 요소를 차용한 것들도 있었죠.

즐겁게 진행된 초콜릿 캠페인은 덕분에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해리포터 연합은 이를 넘어 초콜릿 생산업체 네슬레와 허쉬를 대상으로 동일한 캠페인을 진행 계획 중입니다.

그 외에도 해리포터연합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법 같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물건을 소환할 때 쓰는 주문인 '아씨오'에서 이름을 딴 '아씨오 책(Accio Book)' 캠페인은 책을 기부받아 도서관을 짓는 운동으로 약 25만 권에 달하는 책을 기부받아 실제 도서관 건립까지 이어졌습니다. 지진이 난 아이티 지역에 성금 12만 3천 달러를 모금해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쯤되면 어지간한 사회운동단체 저리가라 할 정도입니다.

해리포터연합(The Harry Potter Allaince)은 해리 포터 팬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을 제공하고 있다. / Sergey Galyonkin

해리포터연합의 활동은 대중문화 혹은 대중 참여 운동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원작자인 조앤 롤링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마법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에 필요한 모든 힘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 말입니다."

'문화 침술(Cultural Acupuncture)'

해리포터연합의 창립자 슬랙은 해리포터 연맹의 성과를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신 사회를 움직이는 잠재력에 이바지한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그는 '문화 침술cultural acupuncture'이라는 용어를 지어냈습니다. 슬랙은 문화 자체가 기술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게 촉발시키는 문화의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문화 침술에서의 '문화'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쓰는 심리적 힘의 원천지로, 스토리텔링은 변화를 촉발시키는 핵심적인 '침' 구실을 합니다. 이야기는 시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 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됩니다.

해리포터연합(The Harry Potter Allaince)은 해리 포터 팬들이 사회 변화의 영웅이 될 수 있는 참여의 방법론을 소개한다.

슬랙은 해리포터연합 활동을 통해, 흔히 저평가되곤 하는 대중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슬랙은 세계적인 사회혁신가 후원 그룹인 아쇼카 재단(Ashocka Foundation)과 네이선 커밍스 재단(Nathan Cummings Foundation)으로부터 수상받음으로써 해리포터연합을 창설한 공을 인정받았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는 슬랙의 활동을 의미있는 연구사례로 다루고 있습니다. 해리포터의 원작자인 조앤 롤링 또한 "창립자 슬랙과 같은 분들이야말로 세상이 진정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라며,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해리포터연합은 한마디로 '덕질'이 가진 잠재력을 드러낸 사례입니다. 흔히 좁게는 서브컬처, 넓게는 대중문화 가운데 자기가 열광하는 대상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사람들을 '덕후'라고 부르고, 그 활동을 '덕질'이라고 하는데요, 덕질은 그것이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활동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에너지 또한 깊고 큽니다. 그리고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이 공감과 연대를 통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용기를 낼 때, 그들의 에너지는 그 어떤 사회운동조직보다도 강력하고 끈질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앤드류 슬랙을 비롯한 해리포터연합의 회원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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