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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으로 써야 하나 '미슐랭'으로 써야 하나?

  • 박세회
  • 입력 2016.09.20 12:49
  • 수정 2016.09.21 07:55

'미슐랭 가이드'가 맞는 표기일까 '미쉐린 가이드'가 맞는 표기일까?

이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식 가이드 북을 놓고 벌이는 흥미진진하고 매우 오래된 논란이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먼저 알려진 건 '미슐랭'이다. 'Michelin'은 이미 1980년대에 ‘미슐랭’이라는 책 이름으로 처음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그러나 1988년 이 책의 모체인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 'Michelin'은 한국에 진출하며 한국어 상호를 '미쉐린'으로 결정했다. 영어식으로 읽으면 '미셸린'에 더 가깝겠지만 아마도 스펠링에 기초한 기계적인 음차 발음이 대중에게 접근하기 쉽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대중에게 그리 유명한 것도 아니었고 미쉐린이 미슐랭의 모태라는 걸 아는 사람도 극소수였던 시절이라 '미쉐린이 아니라 미슐랭이다'라고 화를 내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다만 그 기원을 설명하자니 재밌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시절 이 회사의 사주는 'François Michelin'이었는데, 1999년에 언론은 이분의 경영철학을 소개하며 이렇게 표기해야 했다.

'프랑수아 미슐랭은 미쉐린 타이어의 창업자 에두아르 미슐랭의 손자다'

그렇다고 언론이 마음대로 '미쉐린이 아니라 미슐랭 타이어다'라고 천명할 순 없었다. 공식 상호로 등록했으니 그대로 불러주는 게 당연하다. 'Volkswagen'의 발음은 엄밀하게 말하면 '폴크스바겐'에 더 가깝지만, '폭스바겐'으로 더 많이 표기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이 회사가 '폭스바겐코리아'로 상호를 등록하고 '폭스바겐'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으니 폭스바겐이라고 불러주는 게 맞다.

2016년 미쉐린 타이어가 그 유명한 저 빨간 책의 한국판을 내겠다고 얘기했을 때, 이 논란이 다시 벌어졌다. 그동안 모체인 타이어 회사보다 더 자주 '미슐랭 가이드'라는 표기로 여기저기 오르내린 후였기 때문이다.

미쉐린 코리아는 '미슐랭 가이드'라는 표기를 버리고 '미쉐린 가이드'를 택했다. 가이드 북의 명성을 통해 모회사의 타이어 사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째서인지 프랑스인 창업자의 성마저 미슐랭에서 '미쉐린'으로 바꿔 버렸다. 마이클 조던을 '미카엘 요르단'이라고 부은 격이랄까?

다만 이번에는 쉽사리 '미쉐린'이라는 표기로 통일되지 않는 양상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미슐랭 가이드'보다 인기가 낮아 좀처럼 검색에 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정희원 씨가 한국일보에 썼듯이 '외국어 이름에 대응하는 두 가지 다른 한글 표기는 우리 사회에 소개될 당시의 맥락과 역사성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같은 철자를 쓰더라도 어느 나라 말에서 왔는지, 한국에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따라 한글 표기가 달라지는 경우는 참 많다.

예를 들어 'Joseph'는 유럽에선 다수의 국가가 '조지프'라고 부르지만, 미국인인 'Joseph Gordon Levitt'을 네이버는 조셉 고든 레빗이라 읽고,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과 라헬의 아들은 조셉도 조지프도 아닌 '요셉'이다. 또 야곱이 미국에 살면 제이콥이고, 라헬(Rachel)이 '프렌즈'에 나오면 '레이첼'이다.

조금 다른 경우지로,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자라투스트라'와 '조로아스터'가 각각 독일어와 영어식 표기에서 왔다는 걸 아는 건 참 재밌는 일이지만, '자로아스트라'라고 쓰지만 않으면 딱히 당신의 지적 수준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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