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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 미국으로 길이 보전하세"(?)

언필칭 인종의 용광로라고 스스로 자랑하며 메이플라워호 이래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들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인 미국에서 헌법을 만들면서 하필이면 대통령만큼은 꼭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 한해서 그 자격을 주겠다는 조항을 콕 박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비밀(?)을 캐기 위해선 잠시 18세기 후반 유럽으로 건너가 보아야 한다.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789년 프랑스인들이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들고 대혁명을 일으킨 이 이성과 합리의 시대인 18세기 후반에 불행히도 지도에서 사라져 버린 슬픈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폴란드.

  • 바베르크
  • 입력 2016.09.20 13:41
  • 수정 2017.09.21 14:12
ⓒBrendan McDermid / Reuters

1. 들어가며 - 도널드 트럼프, 드디어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응?)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드디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응?) 주장을 거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했다.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하와이주에서 태어났다는 출생 증명서를 진작에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간 스스로 불을 지펴 온 이런 어처구니 없는 흑색선전을 이제서야 겨우 거두면서도, 애초에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를 의심했던 것은 자신의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라는 얼토당토 않는 사족을 붙여, 더 빈축을 샀다. 트럼프의 이런 마타도어는 실은 오바마 대통령의 부친이 케냐에서 미국으로 건너 왔고,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것을 미국 유권자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인종주의적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2. 원정출산한 아이는 자격이 있어도 천재 이민자는 자격이 없는 미국 "직업"은?

그런데, 애초에 왜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여부가 이렇게 정치적 쟁점이 되었을까?

이는 미국 헌법 제2조(Articel II) 제1항(Section 1)의 다섯번째 문단(수정헌법 제12조에 의하여 수정된 부분을 제외하면 네번째 문단)에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이거나, 이 헌법이 채택될 때 미국 시민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사람도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No Person except a natural born Citizen, or a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at the time of the Adoption of this Constitution, shall be eligible to the Office of President)"

미국 헌법이 채택된 것이야 1787년의 일이니, 결국 미국 헌법상의 위 구절의 현재적 의미는, 미국 땅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에게만 대통령으로 선출될 자격을 준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러니까 예컨대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나 매들린 울브라이트처럼 외국에서 이민 와서 나중에 미국 시민이 된 사람은 암만 빼어난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반면에, 좀 덜떨어진(쿨럭;) 아들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이라도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일단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도널드 트럼프나 미국에서 birther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이 정말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태어났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었던 것이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가 정치 쟁점이 되고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출생 증명서를 공개하게 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3. "슬픈 폴란드"를 숨죽이며 지켜 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결단

그런데, 언필칭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스스로 자랑하며 메이플라워호 이래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들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인 미국에서 헌법을 만들면서 하필이면 대통령만큼은 꼭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 한해서 그 자격을 주겠다는 조항을 콕 박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비밀(?)을 캐기 위해선 잠시 18세기 후반 유럽으로 건너가 보아야 한다.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789년 프랑스인들이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들고 대혁명을 일으킨 이 이성과 합리의 시대인 18세기 후반에 불행히도 지도에서 사라져 버린 슬픈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폴란드. 폴란드는 이 이성과 합리의 시대인 근대에 저항하던 유럽 반동의 보루(뭐래니?)라 할 수 있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짬짜미하여 갈라먹는 바람에 졸지에 망했고 폴란드인들은 망국민이 되었다.

모두 3차에 걸쳐서 나름 수십년 간의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된(쿨럭;) 이 폴란드 말살 작전 도중 이를 주도한,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여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마리 앙트와네트의 엄마) 여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폴란드의 왕을 선거로 뽑는 제도를 통해, 폴란드에 별반 관심이 없었던, '폴란드에서 태어나지 않은' 폴란드 입장에서의 외국인(아우구스투스 3세)이 왕으로 뽑혀서, 한때 동부 유럽을 호령했던 강국 폴란드가 약화된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어서 이들 외세는 폴란드 귀족들을 매수하는데 성공했고 말랑말랑한 인사(스타니슬라우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를 폴란드의 마지막왕으로 밀어 올려 폴란드를 생선뼈 발라 먹듯이ㅜㅗㅜ 꼼꼼히; 분할해서 멸망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퀴리부인이 소싯적에 러시아 장학관의 눈을 피해 폴란드어를 공부해야 했고, 쇼팽이 폴란드 흙을 담아 파리로 떠났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강대국들에 의한 폴란드의 최종 3차 분할이 1791년까지 진행되는 것을 대서양 건너편에서 숨죽이며 지켜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같은 이들. 미국이라는 갓 태어난 나라를 어떻게 하면 다시는 영국 같은 초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게 가꾸고 지켜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들에게 폴란드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던 일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새로 치면 시리아 내전으로 유럽에 쏟아지는 중동 난민들의 소식이나,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과격파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테러 소식처럼, 18세기 후반의 국제뉴스로 폴란드의 비극이 계속 생중계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폴란드 3국 분할 사건은 당대에 벌어진, 우리한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대참사였던 것이다.

특히나 자신들이 만드는 새로운 나라에 왕이 아닌 대통령을 두고 이를 선출하자고 논의 중이었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주변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세작(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비폴란드인을 왕으로 밀어넣는 드라마를 찍는 걸 보고 미국 헌법에 하나의 조항을 새로 넣기로 결심한다. 그건 바로 앞에서 살펴 본 "미국 땅에서 태어난 이만이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미국이 이민의 나라이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실은 다 영국 등에서 온 이민의 후손이지만, 이 헌법 조항은 외국이 미국의 정치에 간섭할 기회를 차단해서 폴란드 같은 비극을 막아 보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고민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4. 맺음말 - 헌법을 절박하고 치열하게 바라보지 않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절망하며

지금이야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정치에 어느 외국이 감히 간섭하냐 하겠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18세기말에 수년 간의 전쟁 끝에 당대 초강대국인 영국에서 간신히 독립한 신생국을 어찌 안전하게 만들까 깊이 고민하고 있었고, 그들은 폴란드 같이 실패한 나라의 사례를 미국이 결코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어쩌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의 구절 하나를 놓고서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였던 이런 모습이 어쩌면 미국이 오늘날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들이 헌법을 고쳐야 한다며 이런저런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관련이 있는 권력구조를 어떻게 하자는 얘기들만 하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니 대통령 중임제니 하는 정치공학적 수사들만 내놓을 뿐이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폴란드의 3국 분할 과정을 초조하게 지켜보았을 때 못지 않게, 북한이 거듭 핵실험을 하고, 세계 경제 침체 속에 저성장과 저출산의 늪에 빠진 우리의 엄중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헌법을 어떻게 손보아야 하겠다는 소리는 내가 과문한 탓인지 개헌을 논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입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는듯 싶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사람 미국으로 길이 보전"하자는 각오로 헌법을 만들던 때 같은 치열함, 절박함, 고민 같은 게 똑같이 헌법을 논하겠다는 우리 정치인들한테 안타깝게도 손톱만큼도 있어 보이지 않아 절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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