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접고 펼칠 수 있는 이 자전거는 '움직이는 도시'를 제안한다(화보)

  • 박수진
  • 입력 2016.09.19 06:47
  • 수정 2016.09.19 06:56
ⓒN55

[미래] 도시의 삶과 죽음

공간을 소유할 수 없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지 않나?

개발시대를 거치며 자동차는 인간의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동차는 그 편리함만큼의 거대한 반작용도 불러왔다. 자동차 사망사고가 대표적이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길도 사라졌다. 자동차가 도시를 지배하면서 걷기는 실종됐고, 도시에서 걸어 다니며 만날 수 있는 ‘우연성’을 배제하면서 도시적 매력을 반감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자동차가 가져다준 편리함을 버릴 수 있을까?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인 엔55(N55)는 특별한 자전거를 제안한다. 이들이 제안하는 자전거는 새로운 시대, 도시에 대한 풍부한 사유를 도와준다.

왜 자전거인가? 엔55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 도시는 소음이 크고 오염이 가득하며 위험한 자동차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동차는 대부분 한두 사람의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교통체증을 유발해 교통수단으로서의 효율성도 떨어뜨려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도시에서 항상 위험을 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전기차가 대안일까요? 아니에요. 100~200㎏의 인간을 운송하기 위해 1000㎏이 넘는 기계를 쓴다고요? 그건 정말 난센스예요.”

‘자동차의 대안’ 넘어선 교통수단

인력만으로 빠른 이동을 가능케 하는 자전거는, 걷기의 보완이며 자동차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무겁고 커다란 짐을 나르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각종 생필품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기우뚱거리며 자전거를 타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작은 가구를 살 때도 자동차는 꼭 필요하다.

그래서 엔55는 자전거에 커다란 짐칸을 넣었다. 두 바퀴짜리 ‘XYZ 카고 바이크’ 모델은 짐 칸 박스가 49.5×69.5㎝ 크기로 운전자 외에 90㎏까지 실을 수 있고, 세 바퀴짜리 ‘XYZ 카고 트라이크’ 모델은 박스 크기가 55×80㎝로 최대 150㎏까지 실을 수 있다.

사진 화보 아래로 기사 계속됩니다.

이들이 제안하는 자전거에는 미래적 개념들이 담겨 있다. 우선 자신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커스터마이즈’(주문제작) 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카고 박스를 푸드트럭과 같은 ‘푸드자전거’로 만들 수도 있고, 박스 안에 의자 모듈을 끼워 넣어 자녀를 태우고 다닐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엔55는 이 자전거에 인조잔디 패널을 올리는 시도도 한다. ‘파크사이클 스웜’(PARKCYCLE SWARM)이라 이름이 붙은 이 자전거를 타면 원하는 곳 어디든 공원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전거의 뼈대를 만드는 방식에 있다. 자전거는 바퀴와 체인, 기어 등을 제외한 모든 뼈대 구조가 알루미늄 튜브와 볼트, 너트만을 이용해 조립된다. 용접이 아닌 조립은 사용자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한다. 자신의 필요가 바뀌면, 그에 맞춰 또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응하는 미래적 가치인 유연함을 제공하는 개념이다.

이 뼈대 구조의 기본이 되는 형태는 과거 목재로 구조물을 만들던 방식과 같다. 3개의 축을 엇갈려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는 식으로, 엔55는 이를 ‘XYZ 노드’라고 부른다. 누구든 흉내 낼 수 있는 쉬운 구조를 만든 것이다. 엔55는 이 자전거의 기본형이 되는 ‘1인승 자전거’의 매뉴얼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다. 다만 그 외의 모델은 판매 중이다. 엔55는 “개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판매하고는 있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하지만 않는다면 공개된 1인승 자전거 매뉴얼을 바탕으로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르면, 엔55의 이 실험이 단지 자동차의 대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다. 이들의 꿈은 좀더 원대하다. 누구든 XYZ 노드로 연결된 자전거를 만들 수 있고, 그걸 타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전거가 놓이는 장소는 공원이 되기도 하고, 식당이 되기도 한다. 모듈화되어 있는 부품으로 조립된 자전거는 언제나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고, 다른 무언가로 변신할 수 있다. 2013년부터 이 자전거를 직접 만들어 보며 엔55와 꾸준히 대화를 이어온 오늘공작소의 한광현 선임연구원은 13일 그들의 실험을 두고 “도시와 공간에 대한 질문을 예술적으로 표현해냈다”고 풀이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눕는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토지마다 공원, 도로 등 각각의 이름이 정해져 있어요. 그런데 엔55는 이러한 규정에 대해 도발합니다. 누울 수 없는 곳에 자전거를 끌고 가 누울 수 있게 만들고, 누군가가 용도를 정해둔 곳에 대한 전복을 꾀합니다. 또 이 자전거만 있으면 언제든지 구조를 해체해 그곳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볼 수 있어요. 모듈화되어 있으니까요.”

엔55는 XYZ 노드란 구조를 바탕으로 알루미늄 튜브만으로 정글짐을 만들고, 식탁을 만든다. 정글짐 안에는 해먹을 연결해 누울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개념을 엔55는 ‘오픈시티’라고 부른다. 21세기 도시 유목민들의 실험이 자전거라는 상징으로 드러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엔55가 자전거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자동차의 대안만은 아니다. 이들은 도시 유목민들을 위한 ‘움직이는 도시’를 제안한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도시 #덴마크 #코펜하겐 #자전거 #공간 #교통 #교통수단 #디자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