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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1592'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김응수가 말하는 9가지

KBS 1TV '임진왜란 1592'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고있는 배우 김응수(55)가 제작 뒷얘기를 공개했다.

드라마 연출 경험이 전무한 다큐멘터리 전문 PD가 메가폰을 잡은 '임진왜란 1592'는 촬영 전부터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특히 터무니없이 부족한 제작비에 연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촬영으로 배우와 스태프 모두 녹초가 됐다고 했다. 제작진이 밝힌 '임진왜란 1592'의 제작비는 13억원으로 190억원의 제작비가 든 영화 '명량'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그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국내 첫 팩추얼드라마(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결합한 극사실주의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정통 사극을 능가하는 생동감과 감동으로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김응수는 임진왜란 1592가 호평을 받게 된 뒷면에는 감독, 배우, 스태프의 혼연일체가 된 기적 같은 팀워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이순신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 같다.

= 그야 뭐, 이순신은 많이 아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잘 모르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제대로 그린 적이 없지 않나. 피상적으로 조선을 침략한 침략자로만 알고 있었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에 그런 걸 그려냈다. 그래서 새로웠던 것 같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복잡한 인물 같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지만, 통찰력이 있는 야심가로, 백성을 살피는 정치가로도 그려졌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인간의 욕망을 철저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심리를 읽는 데도 탁월했다. 바늘장수를 비롯해 직업을 서른여섯 가지나 전전했기 때문이다. 특히 장사꾼을 많이 했는데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욕망을 이용해 신분상승을 거듭한 끝에 가장 높은 관백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자기와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가만두면 자기도 당한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의 욕망이, 칼끝이 나에게 향하지 않고 바깥으로 향하게 하려고 명나라와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그때까지 전국시대를 거치며 거의 100년 넘게 전쟁만 해왔기 때문에 전쟁에 기가 막히게 능했고 조총이란 신병기도 갖고 있었다. 게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던 오사카(大阪) 성에는 엄청난 금괴가 비축돼 있는 등 경제력도 뒷받침됐다. 천하를 한번 탐내볼 만했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확대하기 위해 사람들을 꼬드겨 남의 나라를 침략하게 하고 많은 사람을 죽게 한 히틀러와 같은 대악당이다.

- 인물 표현에 반일감정이 의식되지는 않았나.

= 반일감정은 너무 쉬운 것 같다. 저 사람이 과거에 나를 때려서 싫다.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 초기 감정으로 끝나선 안 된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지만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나쁜 나라라는 정도로밖에 모르지 않나. 이래선 한일 관계도 나아지지 않는다.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저런 구석도 있구나 하는 걸. 우리가 잘못했던 부분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또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 연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 '임진왜란 1592' 제작발표회 때 지금까지 한 작품 중 최고라고 했는데.

= 배우로서 내적인 만족감이 제일 크다는 의미다. 나는 원래 배우가 되려고 했고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스타가 돼서 부귀영화와 명예를 얻고 싶어서 배우가 된 건 아니다.

배우는 연기하는 인물을 통해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보는 사람들을 기쁘고 화나고 슬프게 할 수 있다. '임진왜란 1592'의 메시지는 결국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싸우지 말자는 평화의 메시지다. 이런 좋은 작품을 했다는 게 배우로서 최고의 가치고 그만큼 기쁘다.

진실한 것에는 감동을 받더라.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진실밖에 없다. 그런 것이 거기에 있었다고 본다. 메시지가 좋기 때문에 출연료가 적어도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없다.

- '임진왜란 1592'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 KBS 이건준 PD와 예전에 아침 드라마를 몇 개 했는데, 이 PD가 작년에 이런 작품 있는데 대사를 100% 일본어로 해야 한다면서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담당 PD가 직접 전화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담당 PD한테 직접 전화하시라고 하라고 했다.

김한솔, 박성주 PD와 셋이 만나서 새벽 3시까지 얘기를 했는데 둘 다 진솔하고 겸손하더라. 사건과 사물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철저한 자료와 텍스트 리딩을 거쳤더라. 특히 실제 팩트를 갖고 공부하는 게 습관화가 돼 있었다.

- 국내 첫 팩추얼드라마인데 성공하리라 믿었나.

= 팩추얼드라마를 어떻게 연출할 것이냐 사실 그건 도박이었다.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박에 성공했다. 올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김한솔, 박성주 PD의 인격 때문이었다. 촬영을 맡은 백홍종 촬영감독도 될 거라는 확신을 줬다. 백홍종 촬영감독은 '차마고도'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분인데 KBS 대하사극 '근초고왕'을 같이 했었다. 정말 대단한 촬영감독이다.

대본을 받아서 읽는데 너무 재밌더라. 전체 출연 배우들이 모여 첫 리딩을 하는데 일본인 배역을 맡은 후배들도 일본어를 잘하고 연기도 너무 잘하더라.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김한솔 PD가 직접 발로 뛰면서 연극배우 중심으로 캐스팅했더라.

사진 슬라이드 아래로 기사 계속됩니다.

- 제작비가 부족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였나.

= 도요토미 히데요시 부분을 먼저 찍었는데, 세트 촬영이 많았다. 그런데 세트를 지을 돈이 없어서 기존에 있던 KBS 수원 드라마세트장을 부수기 전에 얼른 들어가 조금 수리해서 찍었다. 얼마나 돈이 없는지 촬영 현장에 물 한 병 제대로 없었다. 나도 김밥 한 줄 먹고 컵라면 먹으면서 했다. 미쳐서 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김한솔 PD, 백홍종 촬영감독, 배우, 스태프가 모두 미쳤다. 미치지 않았으면 그 열악한 환경을 돌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촬영이 재밌더라. 정말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경우는 드물었다. 연출, 스태프, 배우의 호흡이 기가 막혔다. 드라마 촬영 경험이 없는 김한솔 PD의 연출이 관건이었지만 현장에선 전혀 문제가 없었다. 촬영감독이 이렇게 찍자고 하면 찍는데 3, 4 테이크를 가본 적이 없다. 1, 2 테이크로 물 흐르듯이 찍었다. 2회차쯤 가니까 조명팀도 혼연일체가 됐다.

교양국 PD가 연출을 맡아 많이 불안해했고 출연을 거절한 배우도 있었다. 역시 사람은 판단을 잘해야 한다.(웃음)

- 촬영하다 응급실까지 갔다고 하던데.

= 저는 작년 8월 초에 시작해서 8차례 정도 촬영을 했는데 열흘 만에 끝냈다. 돈이 없어서 빨리 안 찍으면 안 됐다.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 5시까지 강행군이었다. 그러다 보니 피로가 누적돼서 쓰러진 것이다. 최대한 버텨보려고 했는데 조선 침략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지막 긴 연설을 촬영하는 도중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더라. 김한솔 PD가 한번 더 가자고 했는데 몸이 이래서 안 되겠다 했더니 그 자리에서 오케이 사인을 내더라. 집에 와서 자다가 응급실에 갔다.

-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 최수종과 비슷한 연배인데, 평소 친분이 있나.

= 수종 씨는 저보다 한 살 어리다. 5년 전에 KBS에서 만든 탈북자를 그린 2부작 드라마 '아들을 위하여'를 같이 했는데 같이 작업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만났다. '임진왜란 1592' 3부가 방송되고 10분도 안 됐는데 수종 씨한테서 휴대전화로 문자가 왔더라. '선배님 너무 잘 봤습니다. 만나서 소주 한잔 하시죠'라고 하더라. 내 전화번호도 모를 텐데 물어서 한 거 같더라. 애정 어린 말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 조만간 대작할 거다. 자기(이순신)가 이겼으니까 적장(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그런 것 아니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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