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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 자유와 자율로 강한 군대를

전문화를 통한 정예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의 사병은 독립된 지위와 인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 부품의 상태를 면치 못한다. 사병 복무로 얻은 지식과 경험은 제대 후의 사회 활동에서 자산이 되지 못한다. '군에서 썩는다'라는 냉소적 표현이 국민적 공감을 얻는 이유가 있다. 군복무 중에 쌓은 경력은 전역 후에도 자산이 되도록 하려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

  • 안경환
  • 입력 2016.09.18 06:15
  • 수정 2017.09.19 14:12
ⓒ한겨레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에 최대한의 경의를 보낸다. 개개인의 창의와 자유를 존중하는 데서 공동체의 번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유와 자율, 양대 덕목은 자유민주주의 삶의 본질적 가치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수한 사회가 된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고 공동체의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대는 한 나라 국정의 상징이다.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군대는 국가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필수적 조직이 되었다. 군대는 직업, 행정, 기술, 산업, 예술 등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유기체다. 한 나라의 선진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는 그 나라 군대가 작동하는 기능과 역할이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강건, 청렴, 효율의 상징이 되는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나라는 결코 선진국 자격이 없다.

국방은 모든 국가의 소중한 책무다. 강한 군대를 만들고 유지할 책무가 국가에게 있다. 오늘날 군대는 직접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보다는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평화를 담보하는 안전판으로서 더욱 가치가 높은 것이 군대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제평화를 추구하고 모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이 점 또한 북한과 크게 다른 점이다.

군대의 구성과 운영에 자유민주주의 헌정의 원리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 것인가, 많은 나라에 공통된 과제다. 핵심주제의 하나가 징병제냐, 아니면 모병제냐이다. 병역을 의무로 강제하는 징병제를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과 자율적 책임을 바탕으로 삼는 모병제를 채택할 것인가?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모병제가 선진국의 추세가 되었다. 한때는 누구나 의문 없이 징병제를 신봉했던 나라들이 앞다투어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후에도 여전히 미국군대는 세계 최강이다. 군복무자의 일상적 자율도 최대한 존중된다. 일본의 자위대는 물론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다. 유럽은 거의 예외 없이 모병제이다. 타이완도 최근에 모병제로 전환하고 있다. 요컨대 군인이 응분의 대접을 받는 나라야만 선진국이다.

헌법은 나라의 최고규범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 (헌법 39조 1항)라고 규정한다. 병역법은 사병은 징병제를 원칙으로 삼고 예외적으로 각종 대체복무를 허용한다. 그 '예외'는 국제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도 매우 이례적이다. 세계인의 상식인 종교적 양심에 기초한 대체복무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런가 하면 국위를 선양한 바둑, 예술, 스포츠 선수에게는 면제의 특전을 준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39조2항) 지극히 당연한 원리를 굳이 헌법이 강조하는 숨은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징병제 군복무자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주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한창 인생과 장래를 설계하며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는 청년들에게 군복무는 별도의 계획을 세울 것을 강요한다. 그것은 꿈의 유보, 사회적 관계와 경력의 단절이다. 사회생활과의 단절, 바깥세계로부터의 격리, 소외된 것 자체가 청년에게는 적지 않은 불이익이다. 이들의 내심에는 속말로 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군복무가 향후의 삶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불만이 가득 차 있다. "군대가 사람을 만든다!"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전래의 경구도 신세대 청년들에게는 괜한 허사로 느껴진다.

1999년, 하위직 공무원시험에서 사병 복무자에게 소정의 가산점을 부여한 정책이 위헌으로 선언되었다. 세계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미국의 경우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미국은 모병제 아래서도 군 복무자에게 공무원 채용에 있어 절대적 우선권을 부여하는 주정부도 많다. 미국법원은 1979년 이래 지속적으로 이러한 제대군인 우대정책을 헌법에 부합한다고 확인해 왔다.

우리나라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성숙일로를 걷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고 우리 스스로 자부하듯이 짧은 기간 동안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함께 이룬 거의 유일한 '기적의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의 선진 행보에 따라 개인의 존엄, 사생활의 자유, 인권. 환경, 복지와 같은 삶의 질의 문제가 국정과 국민의 핵심의제로 부상했다. 과거에는 방만한 사치로 치부했던 많은 가치들이 이제는 정당한 현실적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도 모병제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가? 연전에 시대의 추세를 읽은 한 정치인이 '모병제로 젊은이들에게 꿈을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가 무책임한 포퓰리즘으로 매도되었다. 비슷한 사적 회고다. 1980년대 초임교수 시절, 여자교수를 채용하자고 제안했다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발상'이라며 즉시 소외당했다. 그즈음 모병제 논의를 제안하는 글을 썼다가 '국가관이 없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평판도 얻었다. '이상'이 '현실'로 구체화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채 못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여교수가 탄생했지만 모병제 논의는 여전히 금기시 되고 있다. 한때 야간통행금지 없이는 안보와 치안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실로 몽매한 시절이었다. 행여 징병제도 그런 게 아닐까? '피로 지킨 나라' '신성한 국방 의무' '북한의 위협' 등속의 장엄한 구호에 체포되어 시대의 변화와 세상의 흐름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정작 당사자인 청년세대에게는 이런 구호들은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구세대의 습관적 허사에 불과하다.

징병제 아래서의 병영은 당사자가 강제로 집단 수용된다는 점에서 본질적 성격이 감옥과 유사하다. 비자발적 집단 수용 상태에서는 온갖 사고와 인권 유린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한 방에서 혈기왕성한 청년 수십 명이 집단 감금생활을 하면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2014년, 12명의 사상자를 낸 22사단 전방초소의 총기사건, '관심사병'의 자살, 28사단 '윤일병' 살해사건...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병영의 가혹행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군대도 사회의 축도다. 군인의 일상이 국민 생활수준보다 너무 낮으면 안 된다. 병영생활의 여건을 판단함에 있어 과거와 현재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병영과 바깥세상을 비교해야 한다. 북한과 같이 국민의 일상을 옥죄는 나라에서는 제도적인 인권 유린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인권은 한 나라 국민이 합의하는 인간 존엄의 수준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권의 기준과 기대치가 높아진다. 오늘날의 청년의 인권감수성은 과거세대의 기준으로 볼 때는 사치에 가깝다.

징병제의 치명적인 약점은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청년을 바깥세상과 단절시킨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취학연령도 높고 교육기간도 길다. 고교 졸업생의 80 퍼센트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군복무, 전후의 단절이 주는 심리적 위축감이 크다. 또한 OECD 국가 중에서 평균 경제활동 기간이 가장 짧다. 그 짧은 활동기간의 중심에 몇 년간의 군복무(및 전후)기간의 커다란 공백이 발생한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노년 빈곤 현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숨은 요인 중의 하나로 징병제의 부작용이 드러날 것이다.

모병제는 장점이 많다. 그러하기 때문에 선진화의 길을 내딛는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채택하는 것이다.

첫째, 수십만 개의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 모병제는 군대를 양질의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경찰관, 소방대원과 마찬가지로 군인도 지원자로 선발한다. 세부적 지원 분야에 따라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이 다를 것이다. 모병제는 '헬 조선'의 구호를 뇌까리면 자조와 실의에 빠진 청년들의 삶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둘째, 전문화를 통한 정예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의 사병은 독립된 지위와 인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 부품의 상태를 면치 못한다. 사병 복무로 얻은 지식과 경험은 제대 후의 사회 활동에서 자산이 되지 못한다. '군에서 썩는다.'라는 냉소적 표현이 국민적 공감을 얻는 이유가 있다. 군복무 중에 쌓은 경력은 전역 후에도 자산이 되도록 하려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모병제는 군의 유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도 적게 들며 병역과 관련된 각종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군 복무는 한국사회의 평등의 중요한 지표로 여겨져 왔다. 과거 상류층 자제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복무를 면제받았다는 의혹이 만연했고, 대통령 후보의 자제의 군복무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모병제는 이러한 소모적인 사회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남는 것은 예산 문제다. 과연 얼마만큼 예산이 소요되는지, 우리나라의 재정규모에 비추어 합당한 규모인지, 소요예산을 다른 예산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엄연한 사실은 적어도 오래 전부터 우리 청년의 의식 속에는 이미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가 이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마냥 짓누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지키고 세운 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후세에게 물려주는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거창한 전래의 명분에 집착하지 말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전향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 이 모임이 이렇듯 자유와 자율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헌정 원리에 따라 모병제를 통해 강한 군대를 만드는 국민적 지혜를 모으는 단초를 여는 데 기여하기를 빈다.

* 이 글은 2016년 9월 5일 열린 모병제희망모임 1차 토론 기조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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