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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인지 알고 싶어요

점으로 표시되었다는 시각장애인용 구별장치는 신권이 아니면 무용지물에 가까웠고 길이로 구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지폐들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마저도 같은 액수이면서 길이가 서로 다른 신권과 구권이 뒤죽박죽 섞여서 돌아다니는 실제 지폐시장에서는 완벽히 지폐의 액면가를 구별해낸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시각장애는 신체장애가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낸 사회적 장애라는 것을 인정하고 백기투항 후 어머니의 자비를 구하는 쪽으로 작전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 안승준
  • 입력 2016.09.14 06:36
  • 수정 2017.09.15 14:12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들! 밤 새워서 기차표 예매에 성공했다는 사람들 이야기, 언제 어디서 어떤 도로를 선택하면 차 안 밀리고 고향에 갈 수 있다는 솔깃한 정보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보도 꼼꼼히 챙기고 눈치도 봐가면서 각자의 촉을 최대한 세워보아도 명절의 교통대란을 완벽하게 피해갈 수는 없다. 기껏해야 좀 덜 밀렸다는 상대적 만족감 혹은 예년보다는 괜찮았다는 역사적 평가 정도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그나마의 최선인 것이 어쩔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국민의 과반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고향 앞으로 줄지어 떠나는 것은 각자에게 그 이상을 가져다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그것이 가족이고 풍습이고 사람이고 따뜻함이고 뭐 이런 훈훈한 단어들로 설명하고 있지만 적어도 어릴 적 나에게는 그것들은 전부도 아니었고 최고의 목적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녀석들을 보는 것도 그때만 먹을 수 있는 풍성한 음식들도 나를 이끄는 힘이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일 년에 몇 번 경험할 수 없는 목돈의 획득이 내게 있어서는 대단히 큰 의미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용돈 많이 주기로 소문났던 삼촌 옆에 유난히도 상냥한 표정으로 줄지어 서 있던 동생녀석들이 시키지도 않은 심부름까지 하려고 했던 걸 보면 그 녀석들도 나와 많이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대한의 전략적 노동의 결과로 지갑이 하나둘 열릴 때 우리는 비로소 명절은 가족 모두가 모여야 하는 의미 있는 날이구나를 생활 속에서 깊이 느꼈던 듯 하다.

한 장, 두 장 지폐들이 나름의 물리적 두께를 만들어 갈 때쯤 성취의 뿌듯함은 커져갔지만 그때도 딱 하나 신경 쓰고 경계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할 두려운 대상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어머니였다.

엄청난 세율의 과세를 피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관문은 소득의 축소신고였다.

욕심을 부리다 대대적 세무조사에 걸리기라도 하면 전액몰수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교묘한 작전으로 매의 눈을 피하는 것은 계산에 계산을 반복해야 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다 돌려줄 거라는 인간적인 약속은 너 키우는데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알라는 거부할 수 없는 경제적 핑계들로 자연스레 파기되어 버릴 것을 알았기에 어머니께 거짓을 고하는 폐륜적 범죄를 우리는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전액몰수라는 끔찍한 고통을 몇 차례 겪기는 했지만 해가 지나고 머리가 커 가면서 나의 실질적 소득은 점자 상승곡선을 그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보이게 되지 않은 눈은 그 동안의 기술들을 대부분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여기다 숨기고 저기다 감추는 것은 그런대로 가능한 일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얼마짜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돈에도 나름의 도리라는 게 있는데 나름의 현재적 가정 경제를 감안한 하사금의 액수를 물어보는 것은 어른들의 자존심과도 관계가 있었으므로 금기사항으로 정해둔지 오래된 터였다.

경쟁위치에 있는 동생들에게도 어머니와 동맹을 맺은 다른 어른들에게도 그 자세한 것들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점으로 표시되었다는 시각장애인용 구별장치는 신권이 아니면 무용지물에 가까웠고 길이로 구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지폐들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마저도 같은 액수이면서 길이가 서로 다른 신권과 구권이 뒤죽박죽 섞여서 돌아다니는 실제 지폐시장에서는 완벽히 지폐의 액면가를 구별해낸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시각장애는 신체장애가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낸 사회적 장애라는 것을 인정하고 백기투항 후 어머니의 자비를 구하는 쪽으로 작전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지폐구별은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장애관련 서적에는 지폐구별기가 있다고 써 있기도 한데 아날로그 기반의 그것도 어차피 길이를 근거로 하는 것이라 신권과 구권이 섞인 상황에서는 완벅한 도구로 작용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스캐너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폰 어플도 있긴 한데 매번 한 장씩 꺼내서 얼마짜리인지 구별하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그냥 대충 구별해서 내다가 실수하는 것보다도 더 부끄러운 일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받을 때 잘 구별해서 지갑의 칸을 구별해서 정리해 놓는 가장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조금 더 복잡한 전략이라고 해 봐야 최대한 지폐의 가짓수를 줄여서 만원짜리와 천원짜리만 가지도록 노력하고 오천원짜리는 반을 접어서 넣어놓는 것 정도일 것이다.

나의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신사임당을 만날 일은 별로 없지만 간혹 만날 때는 얼른 세종대왕 다섯분으로 교체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는 카드문화가 발달되어 있어서 현금사용을 꼭 해야 할 때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현금사용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시각장애인들은 웃지 못할 실수담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천원짜리 몇 장을 축의금으로 넣은 일이나 몇천원 정도 나온 택시비를 감사함의 표시라며 만원짜리를 낸다고 생각하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집에 와보니 오만원짜리가 없어진 걸 알게 되었다는 일은 흔한 일 중 흔한 일이다.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과자 몇 봉지 사 주려고 지폐 몇 장 꺼내주고 슈퍼마켓 심부름을 시켰다가 의도치 않게 큰 파티를 열어 준 적이 있다.

강의를 다니다 보면 사례금의 장수만 얼른 세다 보면 큰 돈을 뻔뻔하게 덥석 받아오는 경우도 있고 몇 푼 안되는 교통비에 과도한 사양이나 인사를 건네고 와서는 민망해 하기도 한다.

돈이라는 건 참 묘한 것 같다. 좋은데 맘껏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친한 사람들에게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내기도 참 어려운 것이 그것인 것 같다.

그러기에 참으로 개인적이고 그러면서도 살다 보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돈인 것 같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지폐의 구별이 대단히 사소한 일이면서도 대단히 불편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얼마 전 호주의 한 소년이 그 나라의 지폐를 시각장애인도 구별하기 쉽게 바꿔놓은 훈훈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하나의 토픽이나 감동스토리 정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 지폐를 직접 만져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그 나라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는 왜 안하고 있던 것일까?

돈은 국민 누구나 사용해야 하는 것이고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데 왜 누군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용했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 수많은 재질들이 있는데 돈만은 꼭 같은 재질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일까?

호주 소년의 이야기가 해외토픽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슬프게까지 느껴졌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간단한 일이 세상 어디에서도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작은 고민의 부재로 그냥 불편함으로 남아있을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도 얼른 구별하기 쉬운 지폐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 살피지 못해서 불편해 하고 있는지 모를 누군가가 있지는 않은지 좀더 세심하게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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