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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관한 사실 3가지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개인의 정복욕에 불타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드라마에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재탄생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우리가 아직까지 몰랐던 사실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부터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발발 즈음의 시대로 함께 가보자.

1. 울지 않는 새를 위해 재롱을 떤다.

사실 흔한 이야기 중 하나가 일본 전국시대에 활약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울지 않는 새의 일화다. 각자의 방식으로 결국 새를 울게 만든다는 것인데 그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장 특이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택한 일명 ‘재롱’이라는 방법은 빠른 시일 내에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매우 주효한 방법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얻은 것을 지키고 가꿀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또 새 앞에서조차 재롱을 부릴 수 있는 그 소탈함 역시 아래에서 위로 신분 상상을 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의 품위와 인성을 갖추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것이었다.” (책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김정미 저)

2. 자신의 정확한 능력을 모르고 설쳤다.

실력이 좋다는 것에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음이 포함된다. 그것을 모르면 과감한 것이 아니라 만용을 부리는 것이 된다. 수많은 스타들이 말도 안 되는 일에 도전하다가 승승장구하던 기운이 꺾이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요토미는 정반대였다.

“도요토미는 천하가 자신의 발아래 엎드리자 중심을 잃고 헛된 망상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일본의 통일은 90퍼센트 정도가 오다 노부나가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 밑에서 30년간 가신으로 살았던 도요토미는 오다 사후 10퍼센트 정도 통일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용맹보다는 지략으로 나라를 얻은 도요토미이지만 그는 통일 후에 과거를 잊어버리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허세를 부렸다.” (책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김정미 저)

3. 권력이 자신의 대를 넘지 못했다.

권력은 유한하다. 기를 쓰고 이것을 지키려 하면 더욱 멀리 달아난다. 사실상 자신의 대에서 권력이 끊긴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 강제적이고 강압적으로 일 처리를 하다가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자기 멋대로 일을 벌이던 도요토미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랐지만, 속으로는 다들 불만이 상당했다.

“일본에서는 성과 없이 국력만 소모하는 오랜 전쟁을 빨리 그만두고 싶어 하는 세력이 대두하기 시작하였고, 그 와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양자였던 조카 히데쓰구를 죽이고 뒤늦게 본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후계자로 정하면서 정국의 혼란을 예상하게 하였다. 도욧토미 히데요시는 공포정치로 전쟁을 고집하였지만 그의 노쇠한 육체는 헛된 망상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어린 아들 히데요리의 보호역을 맡은 마에다 도시이에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후시미 성에서 사망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임 이후 이제나 저제나 전쟁의 끝을 바라던 일본은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서둘러 조선에서 철수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힘을 너무 낭비한 일본 대부분의 다이묘들은 결국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힘을 비축해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무릎을 꿇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로 히데요시파를 제거한 뒤 이후 300년 이상 지속된 도쿠가와 막부를 열었다.” ((책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김정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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