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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날, 국가는 장애인을 내팽개쳤다

보건복지부가 제17회 사회복지의 날 행사를 하는 행사장 바로 바깥에서 정작 장애인들은 내팽개쳐지고 휠체어에서 떨어져 바닥을 기어야만 했다. 복지부 장관이 참석하는 자리였기에 어느 때보다 경호는 더욱 삼엄했고, 진압은 신속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 비마이너
  • 입력 2016.09.09 07:23
  • 수정 2017.09.10 14:12

'복지를 복지로 부르지 못하는' 제17회 사회복지의 날

시설장에게 국민 훈장 수여하는 행사장 바깥, 장애인은 바닥을 기었다

경찰에 둘러싸인 채 진압당하는 장애인 활동가. 경찰의 진압에 저항하며 소리치고 있다.

휠체어에서 분리된 채 경찰에 의해 끌려나오는 모습.

보건복지부가 제17회 사회복지의 날 행사를 하는 행사장 바로 바깥에서 정작 장애인들은 내팽개쳐지고 휠체어에서 떨어져 바닥을 기어야만 했다. 복지부 장관이 참석하는 자리였기에 어느 때보다 경호는 더욱 삼엄했고, 진압은 신속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7일 오후 2시부터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여하는 제17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이 개최됐다. 복지부는 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탄생의 순간부터 평생 동안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가 함께합니다"라는 주제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엔 사전에 초대된 사회복지 관련 단체장·종사자 등 700여 명이 참석하며, 159명에 대한 훈장 수여식이 진행됐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은 복지부의 이러한 행동이 기만적이고 장애인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노했다. 정부가 내세우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예산 맞춤형 복지'로 전락하여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죽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전장연 등은 사회복지의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이 밝히며 오후 1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복지를 복지로 부르지 못하는' 제17회 사회복지의 날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17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앞.

그러나 이들이 도착하기 30분 전인 12시 30분부터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는 수백 명의 경찰로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휠체어 탄 장애인 두 명이 정부서울청사 방향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오는 도중에 도로점거를 시도하자, 경찰은 신속하게 이들을 진압했다. 경찰이 휠체어와 장애인들의 신체를 분리하려고 하자 장애인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휠체어에서 떨어졌으며 그중 한 장애여성은 머리에 통증을 호소했다.

경찰에 의해 진압되는 장애인 활동가.

동료 장애인 활동가가 진압당하는 것에 다른 장애인이 항의하자, 경찰이 제압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세종홀에서 50m가량 떨어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앞에서 오후 1시 20분경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정훈 전장연 정책국장은 "공권력에 의해 장애인 두 사람이 길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이 억울함을 누가 알겠나"라면서 "한 달 전에 복지부 장관을 잘 지켜달라는 협조 공문이 내려졌다고 한다. 장애인이 화장실 간다고 하는데도 비켜주는 않는 이게 바로 한국 복지, 보건복지부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장애인을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단지 아들·딸·사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비조차 받을 수 없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장애등급제 폐지는 현재 중·경증 단순화로 탈바꿈하여 장애등급제의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한 채 외피만 갈아입었다. 전장연은 "1, 2차에 걸쳐 수십억의 예산을 쏟아부으며 시범사업을 진행했지만 결과물 하나 내놓지 못하고,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내세운 생애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는 그야말로 공염불"이 됐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지난 5월엔 장애등급 재심사로 수많은 장애인이 등급 하락을 당하면서, 등급별로 주어지는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장애인 활동가의 모습.

장애인 활동가가 휠체어에서 끌려 내려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참담함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찰은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이 열리는 행사장과 분리된 공간 안에 장애인 활동가들을 가둬놓았다.

자립생활 예산 삭감하고 거주시설 예산은 인상하고, 시설장들에겐 '훈장' 수여

이들은 이날 사회복지의 날을 기념해 159명에게 수여되는 훈장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기념식에선 사회복지법인 해강복지재단 조학환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대원복지재단 향진원 원장 등 2명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는 것을 비롯해 다수의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관리자들에게 주요 훈장이 수여됐기 때문이다. 전장연 등은 "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두고 시설을 거대화시킨 장본인들에게 국가가 나서서 칭찬하는 꼴"이라면서,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고 시설에 가둔 반인권적인 인사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경찰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당한 문애린 전장연 활동가는 휠체어가 아닌 바닥에 주저앉아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 문 활동가는 "경찰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끌어내고 잡아 비틀었는지, 휠체어에 올라갈 힘조차 없다"면서 "우린 목숨을 구걸하러 나온 게 아니다.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기본적인 활동보조 예산, 꼭 제대로 반영하라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말하러 나온 거다."라고 외쳤다.

문 활동가는 "길 건너 광화문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엔 영정사진이 12개 있다. 그 중엔 시설에서 돌아간 분도 있다. 시설장들은 알고 있나. 복지부 장관은 알고 있나."라면서 "얼마나 긴 세월 거리에서 더 외쳐야 한단 말인가. 장애인들도 제발 좀 같이 좀 살자."고 절규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 내년도 장애인 예산을 규탄하며 오후 1시 20분경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지적대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이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당 수가와 고작 월 109시간에 그치는 서비스 시간을 내년에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시간당 수가 9000원에서 중개기관 수수료를 제외하면 활동보조인의 몫은 수가의 75%인 6800원에 불과하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휴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걸 고려하면 한 달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활동보조 일을 회피하는 직업군으로 만들고 서비스의 질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도 인상은커녕 5%나 삭감됐다. 국고지원 자립생활센터도 62개소로 동결됐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산은 삭감된 반면, '탈시설-자립생활'에 역행하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운영 지원금은 늘어났다. 거주시설에 대한 총예산은 올해 4370억 원에서 4551억 원으로, 지원 시설 수는 470곳에서 485곳으로, 지원 입소자 수는 2만 4766명에서 2만 5136명으로 크게 확장됐다.

2017년 정부 예산안에 전장연 등은 "장애인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그저 주는 대로 받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정부를 규탄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은 국제적인 수치를 당해도 아무 할 말 없는 지경"이라면서 "2011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 대비 장애인복지 현금급여 지출 비율은 0.4%, OECD 평균(1.79%)의 1/4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실성 있는 예산 편성을 요구하며 지난 6일부터 청운동사무소 앞 종로장애인복지관 옥상에서 중증장애인생존권 예산 쟁취를 위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여 농성 2일 차를 맞이하고 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 이 글은 <비마이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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