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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해놓고 아이는 왜 안 낳느냐고 묻지 말아 주세요

약 석 달 전쯤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결혼을 했는데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게 물은 사람은 기혼자였고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라 속으로 뜨악했지만 최선을 다해 답했다. 이런 세상에서 애를 낳는 게 애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좋은 아빠가 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결혼하기 전부터 '무자녀 가족'을 이루겠다는 내 신념은 확고했지만, 올해 들어 더욱 단단해졌다. 지난 2월 일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휴거'라는 유행어가 사용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 박세회
  • 입력 2016.09.08 12:36
  • 수정 2017.09.09 14:12
ⓒShutterstock / Oksana Kuzmina

약 석 달 전쯤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결혼을 했는데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게 물은 사람은 기혼자였고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라 속으로 뜨악했지만 최선을 다해 답했다. 이런 세상에서 애를 낳는 게 애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좋은 아빠가 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결혼하기 전부터 '무자녀 가족'을 이루겠다는 내 신념은 확고했지만, 올해 들어 더욱 단단해졌다. 지난 2월 일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휴거'라는 유행어가 사용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에 사는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이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는 의미로 '휴거'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 6월에는 대전의 한 임대 아파트와 일반 분양 아파트 단지 사이에 철조망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의 학생들은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한 학교의 학생 수는 약 1,200명, 다른 학교의 학생 수는 160명이라고 한다.

개교 당시에는 두 학교의 학생 수가 거의 같았지만 '임대아파트 거주 아이들이 다닌다'는 이유로 일반 아파트 거주민들이 위장 전입 등의 방법으로 입학을 기피하다보니 이런 극단적이 현상이 벌어졌다.

나는 이걸 기사화하며 JTBC가 일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인터뷰한 걸 봤다. 임대 아파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OO(임대아파트)에 많이 사니깐 애들이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요. 친하게 안 지내고 싶고, 말을 걸기가 싫죠."

나는 30년이 넘게 나로 살아와서 나를 꽤 잘 안다. 만약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어디선가 '휴거'라는 단어를 배워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대로 아이가 누군가에게 '휴거'라고 부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이 이렇게 계속 흘러간다면 내 아이는 어떻게든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나는 내 아이가 남에게 '임대아파트 아이들은 별로일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걸 듣거나, 반대로 내 아이의 입에서 '임대 아파트에 산다고 애들이 놀려요'라는 얘기를 듣고 배겨낼 만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결혼은 했는데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내게 물어본 그 사람에게 나는 이런 얘기까지 해가며 충분히 알아듣게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궁금한 게 있었나 보다.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동거를 하지 결혼은 왜 하셨어요? 결혼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누리면서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건 좀 이기적인 거 아닌가요?'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뭔가 큰 혜택이 있을 거라고 크게 오해한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혼했다고 국가에서 해주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주택자금을 저리로 빌릴 수 있게 해주는 게 가장 큰 정책인 듯한데, 1인 가구를 위한 지원도 있어 큰 차이가 없다. 만약 내가 모르는 혜택이 있더라도 별로 받을 생각이 없으니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다.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그때부터 뭔가를 조금 해주는 것 같은데, 육아의 고행을 생각하면 좀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뜻 '동거를 하지 결혼을 왜 했느냐'는 데 대한 답은 떠오르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집으로 오면서 동거와 결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며칠 뒤 아내와 맥주를 마시다가 앞으로 누군가가 '애도 안 낳을 거면 동거를 하지 결혼을 왜 했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크게 아플 때 수술 동의서에 자신있게 사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결혼했습니다."

그 사람이 물어봤을 때 이런 좋은 대답을 준비해 뒀더라면 좋았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드라마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결혼하고 나면 애를 낳을 때까지 '결혼도 해놓고 왜 애를 안 낳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그때마다 엄청난 짜증이 몰려왔었는데 나름의 대답을 준비해 놓으니 이젠 좀 덜 짜증이 난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만 불임인지 아닌지는 검사를 받아본 적 없고,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를 존경하며, 친구가 아이를 기르는 게 힘들다면 소주 한 잔 정도 마시며 위로해줄 생각이 있다. 조카가 태어나면 거대한 유모차 정도는 사줄 생각이고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복지정책에 세금이 더 필요하다면 흔쾌히 내겠으니 전화 하시라. 그러나 그 세금에 '무자녀 세'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하겠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사람 만이라도 내게 '아이는 왜 안 낳느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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