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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보라고 꾸민 건 아니지만"

나는 여자가 꾸미는 이유에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항목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성 평등이 이루어진다면 그런 날이 오겠지. 이게 안 되는 건 항상 여자의 치장이 남자를 위한 것으로 프레임 짜였고 쓰였기 때문이고, '잘 보이고 싶은' 객체의 욕망보다 '보기 편한 것'을 선호하는 주체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발 벗고 나서서 '보편적 남성의 취향'을 벗어나는 치장을 후려치고 꾸미지 않은 여성을 조롱하고 멸시한다. 이런 사정이니, 여성들은 더 강박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해야 알아처먹을까 말까니까. "너 보라고 하는 거 아냐! 날 위해서야!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 짐송
  • 입력 2016.09.06 06:31
  • 수정 2017.09.07 14:12
ⓒGettyimage/이매진스

1.

나는 여자의 치장이 언제나 남성의 취향과 즐거움, '여성적'인 규범에 헌신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대항하려는 의도에 동의하는 한편, 꾸미기 노동이 철저히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원자적 개인이 아니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혼자는 불가능하다. (아무도 안 만나고 사는 사람이라도 전기를 쓰고 공장에서 만들어져 유통된 종이를 쓴다) 따라서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미감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자기만족은 절대 순도 백 프로의 사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취향 역시 그러하다. 개인적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주조되고 주입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타인'을 항상 헤테로 남성으로 한정하며 성적 대상화로만 보는 편협한 시선이지,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꾸미는 행위 자체가 아니니 좀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꾸미는 데는 무수한 이유가 있고, 그중에서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심혈을 기울이는 날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순간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제기가 필요한 부분은 왜 모두가 '남자에게 잘 보이'도록 치장하도록 강제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이나 조롱을 받으며, 그런 치장들은 하나같이 연약하고 무해하고 유아적이어야 하느냐이다. "쎈" 화장은 안 되고, "무서운" 스타일링은 안 되고 그런 거. 최근 극심해진 여성의 유아 퇴행 이미지 선호 일환으로 '어려보이는' 일자 눈썹이 대세가 되거나 누구나 알 수 있는 예시로는 S모 브랜드가 맡고 있는 '너무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되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

2.

생각해보면 자기만족 외에도 여성의 꾸밈 노동에는 다양한 목적과 여러 층위의, 평가 받고 싶은 대상들이 있다. (ex; 존잘님에게 잘 보일 거야 문 파워 메이크업! 헉 환불하러 가야 돼 어서 아이라인을 광대까지 빼자!) 나 역시 오늘은 어떻게 하고 싶다는 기분에 따라 치장할 때도 있지만, 순전히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찍어 바르며 부산을 떨기도 한다.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에 따르면, 이러한 외모 꾸미기는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신체에 기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맥락들을 삭제하고 기승전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남자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 "오늘 데이트?"로 몰아가는 게 빻았다는 말이다. 이 말이나 생각들은 여성의 꾸밈, 아름다움이 오로지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 가능하며, 여성을 하위주체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고, 모두를 이성애 중심주의에 가둔다.

3.

나는 여자가 꾸미는 이유에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항목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성 평등이 이루어진다면 그런 날이 오겠지. 이게 안 되는 건 항상 여자의 치장이 남자를 위한 것으로 프레임 짜였고 쓰였기 때문이고, '잘 보이고 싶은' 객체의 욕망보다 '보기 편한 것'을 선호하는 주체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이런 잡지를 만드는 나에게도, "누굴 꼬시려고~?" 같은 실없는 농담부터 "데이트?" 같은 소릴 한다. 그리고 온 세상이 발 벗고 나서서 '보편적 남성의 취향'을 벗어나는 치장을 후려치고 꾸미지 않은 여성을 조롱하고 멸시한다. 이런 사정이니, 여성들은 더 강박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해야 알아처먹을까 말까니까. "너 보라고 하는 거 아냐! 날 위해서야!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하지만 기분이 좋으려면 그것을 아름답다고 감지하는 나의 미감이 지속적으로 지지 받아야 한다. 그 의복에 투영된 사회적 코드나 감정들의 해석, 사회적으로는 이상하게 보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취향 공동체들의 열렬한 반응, 인정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다. "너 보라고" 꾸민 건 아니지만, 다른 "이걸 봤으면"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 꾸민다"라는 말은 좀 더 섬세하게 독해하자면,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연애 대상/성적 대상으로서의 매력보다 더 중요한 기준과 미감이 나에게는 있으며,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으니까"에 가까울 것이다. 사회적 문법과 무관하게 그게 너에게 잘 어울린다는, 그런 차림을 한 네가 멋지다는 반응이 정말 1도 없으면 자존감 대마왕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취향을 유지하기 힘들다.

4.

안일한 헤테로 남자들은 자기들의 취향이 여성들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거 아니야 틀렸어. 온 세상이 나서서 '남자가 좋아하는' 차림새, 화장, 향수, 헤어 스타일 가르쳐주는데 설마 몰라서 안 하겠냐능? TV만 틀어도 철철 쏟아진다. 그러니까 아무데나 헐레벌떡 달려와서 자기 호불호 이야기하고 남자들 취향 알려주고 고나리하고 그러지 말길. 되게 무례하고 황당한 행동이다. 도대체 타인이 내가 '보시기 좋게'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 엄청난 자의식이 아닐 수 없으나, 자의식이 과하면 높은 확률로 유해하니 고이 접어 나빌레라.

나는 또 내가 내키는 대로 꾸미거나 말거나 할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 잡지의 독자나 강연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계절이 바뀐 기념으로 아끼던 옷이나 구두를 개시하느라, 코덕들과의 만남에서 신상의 발색력을 공유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가면서 똘망똘망해보이려고, 간만에 친척들과 만나는데 살 쪘다는 소리 피곤하니까(파워 쉐딩), 오늘 가는 멋진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싶어서, 그리고 때로는 이성을 유혹하려고 등등.... 정말이지 외모 꾸미기에는 무수한 원인과 목적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자기만족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포장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강박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서, 쇼윈도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기 위해서 꾸민다고 선언하기보다는 좀 더 뻔뻔해지는 게 유효하리라. "응 좋다는 사람 따로 있지~ 니는 조용히 해" 같은...애티튜드?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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