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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금의 세계'와 '내 안의 음란마귀'

요즘 케이블에서 심야에 영화를 보면 짜증만 난다. 19금이라 붙이고 심야에 방영을 하면서도, 흉기와 담배에 블러를 하고, 욕을 묵음처리 한다. 등급제는 대체 왜 하는 것인가. 어차피 다 자를 것인데. 시간이 흘러도 한국은 여전히 위선적인 선비들의 사회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샤워 장면을 보고 흥분한 후, 청소년들이 불건전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검열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측은하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위선적인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 김봉석
  • 입력 2016.09.05 12:28
  • 수정 2017.09.06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얼마 전, 〈내 안의 음란마귀〉라는 음험한 제목의 책을 냈다. 뽈랄라 수집관을 운영하는 현태준 작가와 함께, 지난 20세기에 경험했던 갖가지 성인문화에 대한 추억을 담은 책이다. 친구네 집에서 찾은 플레이보이나 포르노 비디오,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숨어들어간 이야기, 빨간 책이라 부르던 야한 만화와 소설 등등. 그런 음란한 것들이 영화나 소설에만 있는 것이 아님도 알게 된다. 단정하고 우아한 것들의 이면에는 다른 모습이 있다. 추한 것 같기도 하지만 매혹되고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성장했다. 그건 지금 나의 중요한 부분이다.

〈내 안의 음란마귀〉를 기획할 때의 제목은 〈19금의 사생활〉이었다. 2000년에 냈던 책 〈18금의 세계〉에서 도래한 제목이었다. 이유가 있다. 1998년 일본문화 개방이 되었을 즈음 〈클릭! 일본문화〉라는 책을 냈다. 같은 잡지를 만들었던 후배와 함께였다. 그런대로 책이 팔리고 화제도 되자 모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본의 성인문화를 다룬 책을 내자는 것이었다. 일본 AV, 에로망가, 핑크영화 등을 보기는 했지만 책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좋은 조건을 내걸었다. 일본에 가서 취재를 하고 자료를 살 경비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스즈키 코지의 〈링〉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출판사가 한참 고무되어 있을 때였다.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참 높을 때였다. 영화제 수상작이나 영화사의 명작들만이 아니었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는 〈변태 가족. 형의 신부〉, 구로사와 기요시는 〈간다천 음란전쟁〉 이라는 핑크영화로 데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뉴욕에 유학을 간 통신원에게 영화제에서 성인 애니메이션 〈우로츠키 동자〉가 대단한 화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하기도 하지만 엄청난 상상력에 서양인들도 경악했다는 것이다. 일본에 출장을 갔을 때, 〈시티 헌터〉의 배경에 등장하는 '마이 시티' 백화점에 있는 서점에서 에로망가를 사오기도 했다. 그래서 제의를 받아들였다. 후배와 함께 일본에 가서 나가노 브로드웨이의 만다라케를 가고, 신주쿠의 비디오마켓을 뒤지고, 아키하바라에서는 5층짜리 건물 전체가 AV샵인 곳을 들어가 보기도 했다. 1990년대 말의 일본은 한국과 많이 달랐고, 신기했다.

자료를 잔뜩 구입했고, 목차를 잡아 집필 준비에 들어갔다. 제목은 일찌감치 정했다. 〈18금의 세계〉. 자료를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출판사에서 낸 하나무라 만게츠의 소설 〈게르마늄의 밤〉이 청소년불가로 결정된 것이다. 처음부터 성인용이라고 내면, 비닐을 씌우게 되어 있고 서점에서 매대에 놓지 못하며 광고도 할 수 없다. 즉 홍보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 그냥 출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후 검열에 의해 청소년불가로 결정이 되면 더 문제가 된다. 책을 회수하여 비닐을 씌우고 다시 배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단 경찰에 고발이 되기 때문에 출판사 대표가 반드시 경찰서에 출두하여 진술을 해야 한다. 〈게르마늄의 밤〉이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문학성이 높은 소설이고 어쩌고는 소용이 없었다. 재심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일단 따라야만 한다.

불똥이 〈18금의 세계〉에 튀었다. 절대로 청소년불가로 될 만한 책을 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18금의 세계〉는 어쩌라는 것인가. 그냥 야한 영화나 소설 정도가 아니라 진짜 성인문화를 다루자는 기획은..... 출판사에서는 수위를 낮춰 달라고 했다. 절대로 비닐을 씌울 수 없고, 낸 다음에 고발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미리 검열을 생각하니 포르노에 해당하는 것은 아예 다룰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사 온 자료의 90%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국에서 성인용의 만화나 소설, 영화 정도만을 다루자고 했다. 일본만화라면 이케가미 료이치의 〈크라잉 프리맨〉과 히로카네 켄시의 〈시마 과장〉 정도. 핑크영화는 국내의 호스티스 영화나 〈매춘〉 등도 있으니 약간 다룰 수 있었다. 애초의 기획은 산산이 무너졌다.

마음이 문제다. 애초부터 한국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성인문화를 다룬다고 했으면 문제가 아니었지만, 타의로 수위를 낮춰 진행하다 보니 지지부진했다. 원고도 마음도 들지 않았다. 출판사는 책을 내고 얼마 뒤 문을 닫았다. 제목은 너무나 맘에 들었지만 정작 나온 책은 어디 가서 내 책이라고 말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목이 강렬하고, 표지도 꽤 선정적이었다. 그뿐인 책이라 보고 나서 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게 늘 마음의 부담이 되었다. 매년 일본에 갈 때마다 성인문화 자료들을 잔뜩 사왔다. 언젠가 진짜로 '18금의 세계'를 파고들어 책을 써 보겠다고 다짐했다.

〈내 안의 음란마귀〉는 그런 다짐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나의 대중문화표류기〉에서 성장기에 접한 대중문화에 대해 자전적인 에세이를 썼다. 〈내 안의 음란마귀〉는 그 책에서 슬쩍 빼낸 어두운 분야의 이야기들을 쓴 것이다. 본격적으로 성인문화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현태준 작가의 키취적인 만화가 흥을 돋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번 컬럼은 거의 책 광고인 것만 같다. 하지만 거의 십 수 년 동안 성인문화에 대해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말하고,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아니 더 절실해졌다.

요즘 케이블에서 심야에 영화를 보면 짜증만 난다. 19금이라 붙이고 심야에 방영을 하면서도, 흉기와 담배에 블러를 하고, 욕을 묵음처리 한다. 등급제는 대체 왜 하는 것인가. 어차피 다 자를 것인데. 시간이 흘러도 한국은 여전히 위선적인 선비들의 사회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샤워 장면을 보고 흥분한 후, 청소년들이 불건전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검열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측은하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위선적인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내 안의 음란마귀〉를 냈다. 그리고 더 많이 어른의 문화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욕망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고, 변태라도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인정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필자의 블로그 페이지에서 〈내 안의 음란마귀〉의 내용 중 일부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아레나〉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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