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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러시가 북한 붕괴의 전조인가

90년대에도 탈북 러시가 있었다. 91년 소련·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자 많은 북한 사람은 북한 체제의 해체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침몰선을 탈출하는 쥐떼 같은 탈북 러시가 일어나고 그 클라이맥스가 97년 북한 주체사상의 '아버지' 황장엽의 한국 망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때의 위기, 탈북 사태가 예고한 체제 붕괴의 위기를 넘기고 오늘까지 건재한다. 그때와 지금이 같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소한 일로 당·정부 실력자들을 처형·숙청하는 김정은의 공포정치, 강력한 국제제재,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소원해진 북·중 관계일 것이다.

대북 국제제재 속에 일어나는 북한 사람들의 탈북 행렬에 북한 붕괴론에 크게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출은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과 워싱턴의 붕괴론자들(Collapsists)을 열광시킨 것은 8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태영호 일가족의 탈북이다. 올 들어 8~9명의 3등 서기관급 북한 외교관들이 한국이나 제3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태영호가 최고위급 탈출 외교관이어서 비상한 주목을 받는다.

태영호의 '수송 작전'도 요란했다. 영국 공군기가 2대의 전투기 호위를 받으면서 일단 그를 독일의 미군기지로 이송하고, 거기서 태영호 일가족은 서울로 왔다. 망명 의사를 확인한 영국 첩보기관 MI6는 먼저 미국 중앙정보부(CIA)에 그 사실을 통보했다. CIA의 '선수'들이 태영호와 만나 이야기를 해 보고는 그에게서 별다른 정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 미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태영호는 10년 이상 외국에서 근무해 CIA가 궁금한 북한 내부 사정, 공포정치를 계속하고 미사일을 펑펑 쏘는 김정은의 행태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붕괴론자들은 고위급 외교관이 남북한이 일체의 대화 창구를 닫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시기에 서울로 망명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성 이상의 실질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북한 사람들의 탈북 행렬이 과연 북한 체제 붕괴나 지도자 교체의 전조가 될까. 과거 남북한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보자.

박정희 시대였던 1970년대, 군에서 군단장을 거쳐 중장으로 예편한 뒤 외무장관까지 지낸 최덕신이 평양으로 월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외무부 장관이면 공사는 상대도 안 되는 가마득히 높고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70년대 중반에는 실질권력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간다는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국회의원 김형욱이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 그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가 박정희의 유신정치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증언까지 했다.

같은 시기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의 공보담당 공사 겸 공보원장 이재현이 갑자기 유신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하고는 미국 망명을 선언했다. 미국의 유력 학자와 언론인들을 상대로 향응을 베풀면서 유신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선전하는 총책임자였던 그도 망명 후 의회의 증언대에 서서 울먹이기까지 하면서 그가 충성하던 박정희 정부의 정책을 비난했다. 워싱턴 한국 대사관의 중앙정부 파견 김상근 참사관은 서울의 중앙정보부와 워싱턴의 중앙정보부 지부 간에 주고받은 지시와 보고서를 몽땅 FBI와 한국의 인권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하원의 프레이저 위원회에 넘기고 망명했다. 그도 예외 없이 의회에서 반한국적인 증언을 했다. 뉴욕에서는 김형욱 '담당' 중앙정보부 파견 참사관이 워싱턴으로 달려가 그가 가진 자료와 정보를 FBI에 넘기고 의회에서 증언도 했다. 오늘의 탈북 사태는 비교도 안 될 규모의 망명 러시가 일어나 한·미 관계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촉발한 코리아 게이트라는 태풍은 78년을 고비로 조용히 사라졌다. 79년 12월 한국서 지도자 교체가 일어난 것은 이런 망명 사태와 관계없이 중앙정보부장과 청와대 경호실장의 탐욕스러운 권력투쟁의 결과였다.

90년대에도 탈북 러시가 있었다. 91년 소련·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자 많은 북한 사람은 북한 체제의 해체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침몰선을 탈출하는 쥐떼 같은 탈북 러시가 일어나고 그 클라이맥스가 97년 북한 주체사상의 '아버지' 황장엽의 한국 망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때의 위기, 탈북 사태가 예고한 체제 붕괴의 위기를 넘기고 오늘까지 건재한다. 그때와 지금이 같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소한 일로 당·정부 실력자들을 처형·숙청하는 김정은의 공포정치, 강력한 국제제재,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소원해진 북·중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조만간 북한 체제 붕괴나 지도자 교체를 가져온다고 미리 '김칫국'을 마시는 것은 어리석다. 공포정치가 도를 넘으면 김정은에게도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가 등장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은 곧 붕괴한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강 대 강의 대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김정은의 불가예측성을 생각하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작년에 북·중 접경지대, 지난달 러시아 연해주를 답사한 중앙일보의 평화 오디세이가 확인한 대로 우선 남·북·중·러 4각 경제협력체제로 지금의 위기를 생산적으로 해결할 길이 있다.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최고인민위원장이 1997년 7월 안기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ktv.go.kr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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