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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구봉서 씨,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 원성윤
  • 입력 2016.08.27 06:18
  • 수정 2016.08.27 08:14
ⓒ연합뉴스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27일 오전 1시59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구봉서는 코미디계 대부로 영화와 방송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19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후 태평양가극단에서 악사생활을 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배삼룡, 곽규석, 이기동, 남철, 남성남 등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며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로했다.

사진은 2013년 5월 8일 서울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원로대중문화예술인 초청 오찬'에서 원로 가수 금사향(왼쪽부터), 코미디언 송해, 구봉서 씨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특히 '비실이' 배삼룡,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찰떡 콤비를 이뤄 슬랩스틱 코미디가 무엇인지 보여줬고, 악극단 시절을 거쳐 방송 시대가 열린 후에는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방송사와 쇼무대에서 구봉서를 끌어오기 위해 막후 벌인 납치 혈투가 전설로 남아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찰리 채플린의 희극 연기를 신봉했던 구봉서는 "코미디는 풍자"라고 믿었다. 매를 맞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코미디가 지닌 세태 풍자 정신이 못마땅했던 박정희 정부가 노골적으로 코미디를 탄압했을 때, 화가 난 구봉서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술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따지기도 했다. 당시 문공부장관의 지시로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어지자 그는 박 대통령을 만나 “택시가 사람 하나 치었다고 택시를 없앱니까?”라고 읍소했고, 곧바로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했다.

그는 은퇴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요즘은 풍자 코미디가 부족하다"며 "코미디가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 한다면 의미와 역할이 퇴색될 것"이라고 했다.

1965년 5월 31일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연예인들과 박정희의 만남. 우측부터 위키리, 후라이보이 곽규석, 구봉서, 가수 박재란, 이미자

그는 인기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1956년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오부자'(1958), '부전자전'(1959), '오형제'(1960), '맹진사댁 경사'(196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대히트작인 '오부자'에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평생 '막둥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과거 영화 촬영 중 부상한 후유증으로 척추 질환을 앓아왔으며, 지난 2009년 1월 중순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뇌수술을 받았다.

6년 전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했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모습으로 매주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지난해 3월에는 KBS 1TV '인순이의 토크드라마 그대가 꽃'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함께 구가했던 동료들을 하나둘 먼저 떠나보낸 그는 2010년 2월 평생지기 배삼룡도 세상을 뜨자 "이젠 내 차례인가 싶고 너무 슬프다. 두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한 사람이 갔으니 이젠 내 차례 아닌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2000년 MBC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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