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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숲에서 전기, 가스, 수도 없이 맨몸으로 사는 부부를 만났다(인터뷰)

ⓒHPK

허프포스트는 남들과 비슷한 삶을 택하지 않았어도 자신들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인터뷰 하는 '허핑턴포스트 21세기 제너레이션' 기획을 진행합니다. 1편 '스무살 나이로 지구를 한 바퀴 돈 남자'에 이어 2편은 '숲에서 사는 부부'입니다.

멀다. 진짜 엄청 멀다. 마치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태국의 방콕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 9시도 안 돼 KTX를 타고 전남 장흥에 사는 이들 부부를 만나러 갔지만, 취재진이 장흥에 도착한 시각은 거의 오후 4시 남짓.

아침이라 비몽사몽 해 내릴 곳을 놓치는 어리바리함도 한몫했지만, 이들 부부가 사는 숲은 정말.......멀었다.

부부의 아기 비파도 함께

2010년 처음 만난 '페달'(별명, 사진 왼쪽)과 '하얼'(별명, 사진 오른쪽)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2012년 11월 말부터 전남 장흥에서 숲 생활을 시작했다.

'뼛속까지 도시인'이었다던 이들은 왜 수도, 전기, 가스 등등 정말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일까.

허프포스트가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자세히 정리했다. 신선한 충격과 함께 삶에 대한 매우 중요한 메시지까지 건넨다.

숲 속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고 하면 차단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 부부는 태양광으로 충전한 휴대폰 하나로 SNS를 하며 다른 이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으니까.(하얼의 페이스북 바로 가기)

= 두 분 모두 숲에 들어가시기 전에는 '뼛속까지 도시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숲에서 살게 된 건가요?

페달: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내부순환도로 바로 앞이었는데 늘 차 소리, 매연과 함께였죠. 비염이 심해서 고생했고.. 먹거리는 생협을 이용하고 텃밭도 가꿨지만, 전반적으로 '도시 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할 즈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어요. '아, 변해야 할 시기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얼을 계속 설득했죠.

하얼: 사실 처음에는 시골로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왜 가야 하지?' 저는 환경문제와 관련한 정책을 연구하고 그걸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편집자 주: 두 사람 모두 서울에서는 환경단체에서 일했었다) 그래서 좀 더 공부하려고 환경대학원을 준비 중이던 중 갑자기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거죠.

그때, 페달이 저에게 물었어요. '네가 공부를 더 많이 해서, 결국 되고 싶은 게 뭐냐'고. '결국, 무엇을 위한 삶인가?' 고민하게 됐어요. 정작 내 삶은 챙기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구호로만 환경 문제를 외쳤던 게 아닌가, 반성했고, 저의 일상에서 '환경을 위한 삶'을 실천하자고 마음먹게 됐죠.

페달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하얼(왼쪽)과 아기 비파

= 그러니까 전기를 값싸게 만들기 위한 원전이 크나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을 보고, 아예 인생을 전환하게 된 건가요?

페달: 그전에도 환경단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고 외치긴 했었어요. 하지만 사실 24시간 전기로 둘러싸인 생활이었죠. 회사에서도 컴퓨터를 쓰고, 늘 플러그인되어 있고.. 말로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후쿠시마 사태가 터져도 '지금 당장 원전을 통해 생산되는 전기는 쓰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요.

하얼: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산업화된 사회에서 자랐고, 전기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니까요. 저희는 다만, '조금 더 거슬러' 가보고 싶었어요. 옛날에는 전기 없이 사는 게 '상식'이었으니깐요. 지금의 '상식'과는 다르지만, 그때도 어쨌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전기 등등의 에너지가 꼭 '상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종의 '틀'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토토'(흰색 개)와 '황토'(황색 개)도 같이 산다.

= 이곳, 전남 장흥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페달: 처음에는 전남 담양의 슬로시티 마을에서 1년 정도 살았어요. 고택 관리 등등을 하면서. 그런데 그 생활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서울과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니까. 담양에서도 전기, 수도, 가스 없이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게 참 힘들었거든요. 이미 전기, 수도, 가스 등등이 다 돼 있는 집이었으니까. 조금 힘들면 가스 한번 쓰고, 전기도 한번 쓰게 되고.. 자꾸 안락함에 젖어들게 되더라고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하얼. 밥을 할 때마다 아궁이가 꼭 필요하다.

그러다가 신혼여행을 이 집으로 오게 됐어요. 이 집의 원래 주인 분과는 담양에서 알게 됐는데, 전기 등등 아무것도 없이 산다길래 '한번 놀러 가도 돼요?' 했다가 신혼여행 겸 놀러 오게 된 거죠. 그리고 1주일 정도 여기서 지내면서 정말, 정말, 놀랐어요. '우리는 환경운동가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말뿐이었구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변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그 후 주인분이 후쿠시마 사고로 충격을 받으셨는지, '원전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며 한국을 떠나신다고 하셨어요. 우여곡절 끝에 저희가 이 집에서 살게 됐고요. 처음 숲에 들어왔을 때 냉장고/세탁기 등등 모든 살림살이를 기부하고 옷도 기증하고.. 정말 속옷 한 장까지 다 버리고 이 집에 들어왔어요. 그때는 화학소재로 된 옷도 더는 입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부부의 고무신

= 숲에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페달: 격정적이셨죠. (웃음) 대학 나와서 번듯하게 직장생활 하던 아들이 갑자기 며느리를 만난 후 (웃음) 시골로 가겠다고 하니까, 시어머니가 크게 충격받으셨어요. 주변에서 '그 집 아들 뭐해?'라고 했을 때 '시골에서 농사짓는다'라고 말하기 창피하셨던 것 같아요.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거든요.

하얼: 지금은 두 집안 모두 지지해 주세요. 주변을 보면 아웅다웅 대출금 갚기 힘들고,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고 한데.. '너희들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고.

페달

= 이제, 숲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죠. 들어오니 어떠세요?

하얼: 처음에는 '환경에 피해 주는 행동을 하지 말자' '석유도 쓰지 말고 원자력으로 만든 전기도 쓰지 말자' '농사짓고, 자연에서 소박하게 살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거대했던 것 같아요. 플라스틱, 고무도 안 되고.. 옷, 약, 미용품 등등 석유/전기가 쓰이지 않는 건 없으니까. 떳떳하고 자부심이 있긴 했는데, 그건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페달: 아이가 태어나면서 많은 게 달라졌어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아이 장난감 등등을 물려받게 되니까. 예전에는 이런 것에 대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원래의 뜻이) 흐려졌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틀이 깨졌구나' 하는 분들도 계세요.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편하고 행복한 방식으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죠.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내가 괴롭다거나, 환경을 파괴하지는 않는 방식으로.

하얼. 옷도 직접 만들어 입으며, 빨래는 '과탄산소다'로 집 옆 시냇물에서 한다.

= 도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숲 속에서 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페달: 무일푼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행하지' 않더라고요. 불편하긴 해도. 만약 도시에 있었다면, (돈이 없어서) 힘들었을 텐데.

돈으로 해결하려면 뭐든 쉬운데, 저희는 돈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희가 활용할 수 있는 인맥, SNS 등을 최대한 활용해요. '이러 이런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페이스북에 올리면 미국에서도 오고, 일본에서도 찾아오세요. 전국 곳곳에서. 어떤 때는 20명까지 오고.. 이 집을 확장할 때도 장비 없이 사람 손으로만 한다고 하니까 궁금하기도 해서, 오시는 것 같아요.

도르래 등을 이용해 직접 만든 부엌 겸 거실

하얼: 참 신기한 게, 뭔가가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채워져요. 예를 들어 이 집을 확장할 때도 돈이 없었어요. 기술도 없었고. 그런데 아는 분이 도와주겠다고 하셔서 그분이랑 같이 산에서 주춧돌을 들고 내려와 놓기도 하구요. 포크레인 같은 대형 장비가 들어올 수가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물리학도인 친구가 대나무를 자르고 거기에 '도르래'를 만들어 (웃음) 도와줬어요. 그렇게 이 집이 완성됐죠. 불안해하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 누군가 도움을 주더라고요. 이런 경험은 숲에 들어온 후 셀 수 없이 많아요.

취재진을 격하게 반겨준 황토

= 농사도 처음 지어본 것 아닌가요? 엄청 힘들 것 같은걸요.

페달: 엄청 힘들만큼은 안 해요. (웃음) 재밌을 만큼만 짓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딱 저희가 먹을 만큼만 지어요.

텃밭에서 키우는 '토종 오이'. 흔히 보아온 오이와 좀 다르게 생겼다.

숲 생활에 필수인 나무를 쟁여놓는 나무 창고

하얼이 나무할 때 쓰는 지게

= 이곳의 구체적인 일과가 궁금하네요.

페달: 정해진 틀은 없어요. 몸이 피곤하면 종일 자고, 비 오는 날은 종일 놀아요. 농번기처럼 바쁠 때는 새벽에 일어나 김매기 하고. 몸의 리듬에 따라서 그냥 살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여행 가고 싶으면 여행 가요. 다만, 숲에서 살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이 있어요. 불을 때기 위해서 나무를 쪼개 준비해 두거나, 샘터에서 물을 길어두거나. 이런 게 준비 안 돼 있으면 힘들거든요. 도시에서처럼 정신없이 바쁘진 않지만,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노동은 필요해요.

= '숲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는 싶을 때는 언제인가요?

페달: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될 때. 그게 제일 좋아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엄청 커요.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정말 행복한 일이죠.(웃음)

하얼: 해 질 무렵에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져요. 책도 읽고, 조용히 사색하는데, 그럴 때 '숲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티타임을 위한 주전자

= '진짜 힘들다!!' 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페달: 언제가 가장 힘들고 그런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힘듦'과 '즐거움'을 경험해요. 정신적인 괴로움은 없는데 몸이 고달플 때 '힘들어요'. 하얼이 도끼질을 하다가 다쳤다든가 그럴 때 말이에요. 서울 살았더라면 씻는 것도 편하고, 밥 해먹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여기서는 발 하나 다치면 물 뜨러 가기도 힘들고...

문득문득 '정체된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럴 때는 문제를 돌파해 보려고 하죠. 예를 들어, 하얼이 '인터넷으로 글 쓰는 걸 하고 싶은데 그걸 하지 못해서 괴롭다'라고 할 때. 그러면 '태양광 전기를 사용하자'로 결론 내려요. 태양광 전기를 써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사용하자고. 발전일까, 퇴보일까.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겠지만 마음이 많이 예전에 비해 부드러워졌죠.(웃음)

임신해서도 입덧이 심하고 우울증이 왔거든요. '여기서는 아이를 키우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답답해서 숲을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었고요. 집 짓는 행위는 '파괴'라고 생각했었는데, 집을 좀 더 넓히기로 '타협'했어요. 이렇게 서로 논의하면서 그때그때 문제를 헤쳐나가요. 현재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죠. '어쨌든 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나'라고 생각하니까.

= 혹시 숲으로 들어온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나요.

페달: 아니.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순간순간 힘들어도,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하지 '괜히 들어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도시 삶에서도 어려움이 있고, 시골 삶에서도 어려움이 있어요. 공간이 바뀐다고 해서 가지고 있던 '어려움'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본인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마 저희가 숲에서 하는 고민은 서울에 가더라도 계속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서울에서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스스로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말하곤 해요.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귀농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게 현실이에요.

하얼: 흠...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누군가한테 자꾸 '의존'했을 것 같아요. 부모라든가, 일하는 단체의 권위라든가, 학력이라든가. 계속 방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서울에서 살던 시절의 모습

=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네요.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게 다 괜찮아지진' 않는다는 것

하얼: 음...여기서도 힘든 순간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와요. 장마철에 해도 잘 안 뜨고, 창고에 저장해둔 것에도 곰팡이가 피고, 갑자기 비가 내려 냇가에 놓아둔 빨래가 다 떠내려가 버리고... 그럴 때는 '숲에서 행복하게 살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자연이 우리를 거부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죠. 보통 생각하는 '시골의 낭만' '숲에서 사는 낭만', 이런 것은 사실 일부분이에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하지만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빨래도 바짝 마르고, 그런 환경에 있을 때는 굉장한 행복감을 느끼고.(웃음)

= 생활비는 어떻게 버시는지요?

페달: 정기적으로 두 군데에 글을 보내고 있어요. 귀농운동본부 잡지에 계절마다 한 번씩 글을 써서 원고료를 쌀로도 받고, 농산물로도 받아요. 다른 한 군데는 나무 관련 잡지인데, 거기서 매달 원고료를 주거든요. 가끔 강의도 들어와요. 평균적으로 한 달에 40~50만 원 정도를 버는데,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별로 없어서. 이 정도로도 괜찮아요.

하얼: 일단 집세, 공과금 등등이 안 들잖아요.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5~6일 정도를 노동해야 먹고 살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자유 시간이 많죠.

비파는 맨발로 뛰어논다.

= 아기를 숲에서 키운다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페달: 저도 처음에는 '숲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아기를 키우려면 도시로 다시 가야 할까?' 생각했어요. 인프라가 너무 없으니까. 주위의 많은 사람이 걱정했고, '무모하다'고 한 사람도 계셨어요. 그런데 16개월 동안 비파를 숲에서 키우면서 느꼈던 것은 '적응할 수 있다'는 거예요. 비파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고맙게도 비파는 지난 16개월 동안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어요.

= 아, 그것도 궁금하네요. 병원 가는 문제 때문에 곤란한 적은 없었나요?

하얼: (웃음) 비파도 그렇고, 저희 둘 다 병원 문제 때문에 힘든 경험은 없었어요.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어디 다치거나 했을 때는 병원 가서 치료해야겠지만, 소화가 안 된다든가 배가 좀 아프다든가 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생활하다 보면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목이 마른 지 연신 시냇물을 마시는 비파

= 비파가 크면, 학교 문제를 위해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길 생각도 하고 있나요?

하얼: 안 그래도 그 문제를 페달과 많이 이야기해요. 하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학교 문제 때문에 터전을 바꾸거나 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비파가 원한다면 달라지겠지만. 비파가 성인이 됐을 때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과 좀 다른 세상이 되길 바라죠.

= 도시 생활에 대한 갈증은 전혀 없나요?

페달: 순간순간 에어컨이 간절할 때도 있어요. 그럼 과감하게 차 타고 가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도서관도 가요.

그리고 장흥에도 영화관이 있거든요. (웃음) 얼마 전에는 이웃 친구들과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갔고, 아랫집 친구들에게 컴퓨터가 있어서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해요. 풍족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어요.

대신 책을 많이 읽어요. 밤새 몇 권을 보기도 하고. 2주에 한번씩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문화생활은 생각하기 나름인데, 자기가 만들어가면 되는 것 같아요.

냉장고도 당연히(?) 없다.

편리한 설거지를 위하여 항아리를 변형했다.

= 겨울에는 엄청 추울 것 같은데, 힘드시지 않나요?

하얼: 사실 이곳의 겨울은 별로 춥지 않아요.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눈은 또 많이 오는 지형이에요. 눈이 내리면, 포근하게 숲에 안겨져 있는 느낌이 들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서 하염없이 책만 읽기도 하고. 차도 끓여 먹고. 우리 둘 다 우쿨렐레를 칠 줄 아니까 함께 우쿨렐레 치면서 노래 부르고. 시내에서 간단한 요가 같은 것도 하고. 맛있는 것도 해먹고. 그렇게 지내요.

재래식 화장실은 냄새난다는 편견과 달리, 신기하게도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겨울 목욕에 요긴한 '욕조'

=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하얼: 숲으로 들어오면서, 서울에서 가입했던 보험 등등을 모두 해지했어요. '항상 잘 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살면, '아직 닥쳐오지 않은 불안' 때문에 힘들진 않을 것 같아요. '불안감'이라는 것부터가 실체 없는 것 아닐까요? 내가 내 삶에 충실하면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하니까, 주변에서 오히려 도와주는 느낌을 받아요. 그렇다고 다른 분들의 도움에 의존해서 사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숲에 들어오기 전에는 '민들레 홀씨같이 날아다녔다'고 한다면, 지금은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린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 아무리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조금 흔들릴 뿐 뿌리째 뽑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마음이에요. 내 삶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 있어요.

휴대폰도 이 태양광 충전기로 충전해서 쓴다.

= 숲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 문명과는 차단된 느낌인데, 활발하게 SNS 하시는 걸 보면 되게 재밌어요. 두 분에게 휴대폰, 페이스북, SNS는 어떤 의미인가요?

하얼: 저희 '두 사람만' 행복하려고, 폐쇄적으로 살려고, 숲에 들어온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SNS 하는 게 참 좋아요. 사람들이 SNS에서 저희를 보고 지지해주시는 게 큰 힘이 되죠.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잘살고 있구나. 계속 우리의 길을 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두 분의 생활에서 다른 이들이 어떤 메시지를 받길 바라나요?

페달: 저희에게 '참 대단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 말속에는 '너희는 대단한데, 우리는 대단하지 않아서 그렇게 살 수는 없어'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전혀 대단하지 않거든요'.(웃음)

누군가는 저희의 삶이 '가까이 다가가기 불편하다'고도 하세요. 지켜야 할 원칙이 많을 것 같다고.

'저 사람들은 뭔가 특이하다' '그러니까 저렇게 살지'라며 저희를 멀리 보기보다 '아, 저런 삶의 방식도 있구나'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자연에서 살고 싶다' 거나 '이 삶은 아닌 것 같아'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예시'로서 받아들여지길 바라요. '폭주하는 기관차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고 살아있어요' '이렇게 살아도 행복해요'라고.

같이 뛰어내리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미 뛰어내린 사람도 있어요. '폭주하는 기관차에서 뛰어내리면 절대 안 된다. 뛰어내리면 도태될 거야. 죽을 거야'라고 겁먹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하얼: '정답을 정해두고 살지 않아도 된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실패가 나쁜 게 아니다, 실패해도 된다, 자기 길이 아닌 것 같으면 돌아서 옆길로 걸어나가도 된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요?

저희처럼 전기 없이 석유 없이 살 필요는 없어요. 누구나 나무꾼이 되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이것은 저희의 삶, 기준일 뿐이거든요. 각자 자신들의 삶과 기준에 맞는 선에서 '환경보호를 위한 방법'을 찾아보고, 일상에서 실천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 지금 생각해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페달: 이곳 동백숲 마을에는 저희를 포함해 4가족이 살고 있어요. 마을 안에서 함께 생계를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등등 '느슨한 마을 공동체'를 꾸리는 걸 함께 고민하고 있죠.

하얼: 단기적으로는 비파 또래의 아이들이 숲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지역 사람들과 '숲 어린이집'을 작게 만들고 싶어요. '숲에서 놀자'는 모토로.

장기적으로는 숲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고 싶네요. 예술/창작활동과 조합해 '숲 예술학교'를 열거나 '숲 산책' '숲 치유' 프로그램 같은 것들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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