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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체조요정'이 50년만에 이대를 졸업한다. 여성차별적인 학칙 때문이었다

ⓒ최영숙 제공/연합뉴스

26일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졸업식이 열리는 날이다. 늘상 대학 졸업식에는 최고령 졸업자의 사연이 화제가 되기 마련. 너무 공부를 하고 싶어 늘그막에 입학했다는 사연이 학사모를 쓴 사진과 함께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날의 최고령 졸업자에게는 색다른 사연이 있다. 최영숙(69)씨는 이화여대 체육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1968년 제적당했다. 결혼을 금지하는 학칙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1968년 9월 17일 국내 일간지에는 4년 전인 1964년 도쿄올림픽에 동반 출전한 남녀 국가대표 체조 선수의 결혼 소식이 일제히 실렸다.

1967년 도쿄 유니버시아드 대회까지 함께 출전하며 사랑을 키운 강수일(73)·최영숙 두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이들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결혼식은 분명 축복이었다.

하지만 신부 최씨는 대학 졸업장을 포기해야 했다. 이화여대 재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를 보고 결혼 사실을 알게 된 학교는 최씨에게 제적 통보를 했다. 기혼자에게 입학·졸업은 물론 편입학 자격도 주지 않는 당시 '금혼학칙'이 최씨에게 예외일 리 없었다.

최씨는 촉망받던 기계체조 국가대표였다. 결혼 소식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릴 정도였으니 그의 인기는 요새 '체조요정' 손연재에 비할 만했다.

당시 경향신문에 실린 최씨의 결혼 소식 기사

26일 연합뉴스와 만난 최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눈에 띄어 운동을 시작했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1등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유망주였다. 입시가 다가오자 여러 대학의 제안을 뿌리치고 1965년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담임선생님이 이화여대 아니면 입학 원서를 써주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사실 자신도 이 학교로 마음이 기운 터였다.

대학생이 돼서도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최씨는 2학년 때 개교 80주년 행사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결혼 발표와 함께 막상 학교를 떠나게 되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재일교포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부족한 공부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뭔가 허전했다.

최씨는 결혼 후 일본에서 활동하면서도 체조를 잊지 않았다. 국제심판 자격증을 따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리듬체조 심판으로 활약했다.

비록 제적을 당했지만 그는 자신이 '이대인'이라는 점은 잊지 않고 살았다.

"제가 졸업장을 못 받았다는 걸 아는 사람도 많았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이대생으로서의 자부심도 간직하고 있었죠."

그의 '이대 사랑'을 잘 알던 주변에서 '동문 모임'에 여러 차례 최씨를 불렀지만, 정작 자신은 쑥스러운 마음에 졸업장이 없다는 핑계로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최씨가 금혼학칙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칙이 폐지된 해는 2004년이지만 최씨는 일본에서 사업 등을 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뒤늦게 그 사실을 파악했고, 지난해에 재입학을 할 수 있었다.

졸업까지 필요한 학점은 불과 8학점뿐이었다.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틈틈이 강의를 들었고, 부족한 부분은 리포트로 메웠다.

축제 때는 무대 위에 오르기도 했다. 50년 전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라인댄스 공연에 동참했다.

최씨는 이날 오전 열리는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장을 받으면 최고령 학부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최씨에게 졸업식 날 학사모를 쓰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기쁘다기보다는 행복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졸업장 없이 이대생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근 50년을 살아왔으니 누구보다도 긴 시간을 학생의 마음으로 지낸 건데…"라며 "이제 졸업장을 받으니 정말 행복하다. 다른 상도 필요 없다. 상은 현역 시절에 많이 받았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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