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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옥 정태춘 그리고 마이클 잭슨

나는 그것이 늘 의아했다. 왜 엄마는 아빠보다 키가 커 보이는 것을 꺼렸을까. 그리고 같은 맥락의 제일 중요한 의문, 왜 엄마는 '정태춘 박은옥'의 호명 순서에 반박하지 않은 것일까. 아빠보다 기타를 잘 친다고 종종 자랑하는 가수 박은옥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재능이 아깝지도 않고 남편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억울한 적이 없었을까. 마이클 잭슨같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남자를 동경하는 여자는 왜 아빠와 결혼했으며, 어째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사는 것일까.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들이 피어오른다. 황당하게도 나는 여자로서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는 바로 마이클 잭슨이라고 생각한다.

  • 정새난슬
  • 입력 2016.08.26 06:17
  • 수정 2017.08.27 14:12

[정새난슬의 평판 나쁜 엄마]

사람들에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사이가 나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앙숙이다. 5분 이상 대화하면 다투게 된다. 성인이 되어 다시 깨닫게 된 사실은 우리가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더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엄마나 딸의 이름으로만 살아온 두 사람은 각자의 고정된 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엄마에게 나는 '고집 세고 거친 딸'일 뿐이고 내게 엄마는 '걱정을 도매로 사서 하는... 보수적인 엄마'일 뿐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엄마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엄마는 화려한 보석보다 소박한 공예품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예쁜 편지 봉투와 포장지를 좋아한다. 손녀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남대문을 뒤져 귀여운 유아복을 사 입히는 것을 즐거워한다. 고인이 되신 마이클 잭슨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와 관련된 상품이 담긴 작은 상자도 갖고 있다(옛 애인에게 받은 연애편지라도 되는 듯이 숨겨 놓았다). 엄마의 혈액형은 AB형이며 키는 167㎝이다. 제법 큰 키다. 중년이 된 지금은 높은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가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아빠보다 키가 커 보일까봐 낮은 굽의 신발만 신었다. 나는 그것이 늘 의아했다. 왜 엄마는 아빠보다 키가 커 보이는 것을 꺼렸을까. 그리고 같은 맥락의 제일 중요한 의문, 왜 엄마는 '정태춘 박은옥'의 호명 순서에 반박하지 않은 것일까. 아빠보다 기타를 잘 친다고 종종 자랑하는 가수 박은옥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재능이 아깝지도 않고 남편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억울한 적이 없었을까. 마이클 잭슨같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남자를 동경하는 여자는 왜 아빠와 결혼했으며, 어째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사는 것일까.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들이 피어오른다. 황당하게도 나는 여자로서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단서는 바로 마이클 잭슨이라고 생각한다.

'춤을 추는 남자는 아름답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되풀이해서 들었다. 외갓집 형편이 어려워지기 전에는 엄마도 유치원에서 춤을 배웠다고 자주 회상하며 말해주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짧은 기억이지만 춤을 추던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춤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이다. 손녀와 함께 '블루베리 댄스'(작사 작곡 박은옥)를 출 때 엄마의 몸짓을 보면 꽤 끼가 있다고 느껴진다. 아빠를 만나 계속 포크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댄스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온몸으로 빛을 내뿜으며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 배우? '무엇이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배우자의 가치관에 묶여 있기 전의 그 여자, 자신의 욕망과 재능에 충실한 예술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빠가 소위 '운동권 가수'가 된 이후, 우리 집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계획, 성향과는 상관없이 아빠의 기질에 맞춰 움직이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왔다. 함께 옳은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희생도 많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숨기고 버리며 '정태춘 박은옥' 옷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몸을 낮추고 남편이 흔드는 깃발을 바라보며 개량한복을 다리미질하는 마이클 잭슨 팬, 박은옥. 무대 밑의 여자.

모든 딸들의 돌림노래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나 역시 엄마에게 자주 말한다. 엄마는 노래를 계속 불렀어야 했다고. 나는 엄마처럼 단념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녀가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유를. 너는 다 큰 여자인데 부엌일도 제대로 못하냐는 타박에 '엄마, 나를 부엌으로 보낼 바에는 지옥으로 보내주시오' 외치는 나는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 마이클 잭슨 상자를 봉인 해제하세요. 이제 부엌 밖으로 나갑시다.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됩시다. 나, 당신, 내 딸, 세 여자가 함께 막춤 추며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노래합시다. 언젠가는 꼭 박은옥 정태춘의 이름으로 세상에 당신을 보여주세요. 아니면 그냥 박은옥. 그걸로도 훌륭합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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