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일본 와인, 여기까지 왔다

일본 와이너리들이 노리는 것은 세계 와인 시장의 틈새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시장입니다. 코슈 와인의 미묘한 풍미가 아시아 음식의 복잡다단한 맛과 잘 어우러진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커는 코슈 와인이 프랑스의 화이트와인인 무스카데와 흡사한 캐릭터(Quasi-Muscadet)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2010년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에 병당 20달러 선에서 처음 수출하기 시작한 일본 코슈 와인은 지금은 대개 병당 30달러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결코 우습게 볼 와인이 아닙니다.

  • 이여영
  • 입력 2016.08.26 07:35
  • 수정 2017.08.27 14:12

로버트 파커에서 88점을 받은 아시아 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직도 와인은 유럽과 미국 일부 지역, 그리고 몇몇 신대륙 국가에서만 생산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아직 30년 전 와인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은 거의 모든 선진국과 거대 경제권 국가들이 어떤 형태로든 와인을 생산합니다. 1980년 이전까지 와인 불모지였던 아시아 지역도 제조에 적극적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영동을 중심으로 한국형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습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와인'으로는 일본 와인이 꼽힙니다. 적어도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욕먹는 포도에 베팅하는 일본 와이너리들 (Japanese Wineries Betting on a Reviled Grape)', 2010. 10. 26자). 특히 화이트 와인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마저 받고 있습니다.

일본 와인의 가장 큰 특성은, 다른 모든 서양 수입품이나 문화에 대해 그렇듯, 자신만의 소재와 방식으로 만들고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유럽 품종을 들여와 그들 방식으로 생산하지 않습니다. 일본 와인의 주력 품종은 코슈(甲州)라는 토종 브랜드입니다. 후지산 인근 야마나시(山梨)현에서 주로 재배되던 시큼한 회색 포도입니다. 미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분교의 DNA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인 주요 와인의 원료 품종들인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포도 혹은 포도나무의 학명)와 정체불명의 일본 야생 포도의 교배종입니다.

그들이 주류 포도 품종 대신 토종에 집중하는 데는 날씨 영향이 큽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여름과 초가을에 장마와 태풍이 집중돼 와인용 포도 재배에 큰 타격을 입힙니다. 반면 코슈는 비와 바람을 잘 견딥니다. 세균에도 잘 견디고 자연스러운 산도를 유지합니다. 대신 늦게 익어 수확도 늦게 해야 합니다. 보통 유럽 포도주들이 11월 중순 이후 병입해 판매하는 반면 일본 코슈 와인은 봄에 합니다. 알콜 도수도 약간 떨어져 10.5% 가량 됩니다.

원래 일본 코슈 포도주의 역사는 150년 가까이 됩니다. 포도 수확 과정에서 썩거나 상한 포도에 설탕을 잔뜩 넣어 담갔던 것이 시초입니다. 1970년대 경제 부흥기에 유럽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소개되면서 이런 설탕 와인은 급격히 입지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포도 농장의 3, 4 세대들이 서구적 와인 제조법을 도입하면서 일본 와인의 재도전이 본격화 됐습니다. 이들은 프랑스나 호주 등지의 와이너리와 교류와 협력을 통해 자신들만의 와인 제조법을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어니스트 싱어(Earnest Singer)라는 저명한 와인 메이커는 코슈 품종의 가능성을 보고, 일본 5개 지역의 토지를 임대해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2004년 그가 세계 와인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로버트 파커를 초청해 시음시킨 결과, 코슈 와인은 '교육용 테이스팅'(educational tasting)이라는 평과 함께 88점을 받았습니다. 코슈 와인에 올인한 싱어는 파커의 아시아 대리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 와인이 벌써부터 세계적인 와인과 직접 경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와이너리들이 노리는 것은 세계 와인 시장의 틈새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시장입니다. 코슈 와인의 미묘한 풍미가 아시아 음식의 복잡다단한 맛과 잘 어우러진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커는 코슈 와인이 프랑스의 화이트와인인 무스카데와 흡사한 캐릭터(Quasi-Muscadet)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2010년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에 병당 20달러 선에서 처음 수출하기 시작한 일본 코슈 와인은 지금은 대개 병당 30달러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결코 우습게 볼 와인이 아닙니다. 수출은 고사하고 국내 소비자에게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와인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코슈 와인 시음기>

2016-08-25-1472145233-5972990-14039912_1069422046479888_3487436574044231603_n.jpg

일본 양조장과 와이너리, 주류 유통상을 완전히 꿰고 있는 주류 수입업체 DRAM 덕에, 8월23일(화) 심야에 일본 와인 6종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코슈 와인 4종에 유럽 주요 품종으로 일본인들이 만든 레드 와인 2종이 대상이었습니다. 저와 월향 식구 10여명이 시음을 했고, 수입을 고려중인 회사는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맞는 와인을 선택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

코슈 와인 맛은 알려진 대로 대체로 가볍고 사각거리는(crispy) 느낌이었습니다. 연한 감귤(cirus)향이 은은히 배어나오는 것이 특징적이었습니다. 와이너리나 브랜드에 따라서는 약간 신 맛과 떫은 맛이 강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음식 없이 와인만 마실 경우는, 소비자 취향에 따라 약간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스시나 이자카야 안주류와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사케와는 또 다른 특징, 즉 사케와 유럽 화이트와인의 중간 정도 취향으로 어필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본 쿄슈 와인이 목표로 삼는 특성은 단순하고(simple), 깨끗하며(clean), 무엇보다도 신선하다(fresh)는 것인데요. 일본 술뿐만 아니라 문화의 지향점과도 맞아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코슈 와인 외에 와인 제조 기술이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레드와인(호사카 산노쿠라 르쥬·카베네소비뇽, 시라, 메를로, 카베네프랑)을 마셔보고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웬만한 중급 와인 이상의 맛과 향을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류 와인 제조법을 다 익히고 자신들만의 품종과 생산 방식을 확립해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습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와인 #라이프스타일 #술 #이여영 #코슈 #포도주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