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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감히 이 옷을 입어?'라는 법이 있었다

흔히 옷을 만드는 일은 그리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전히 패션과 관련된 산업은 엄청난 규모이며, 그곳에서 성공하면 큰 부를 쌓을 수 있기에, 경쟁도 무척 치열하다.

패션의 역사는 그리 만만치 않다. 과거에는 단순히 옷을 입고 다니는 목적을 넘어서, 옷이 사실상 신분 표시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모가 입던 옷을 자녀가 물려 받아 그대로 입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부모의 신분이 자녀의 것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관리들이 관등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내가 누구라는 것을 밝힐 필요가 없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위 계급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귀족이나 왕실의 사람들에게는 제복이 필요했다. 신분을 제대로 알아보고 충성을 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1303년 무렵 프랑스에서는 국회 참석 가격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제복을 만들었다. 패션은 관료제에 이용되었다. 파리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는 엄숙한 옷차림 때문에 군중 속에서도 눈에 확 띄었다. 모피를 입는 것도 지위를 나타내는 뚜렷한 기표 중의 하나였다. 왕족은 어민(ermin, 백색 모피)으로 만든 곳을 입었다. 어민을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책 ‘북유럽 세계사’, 마이클 파이 저)

그러나 유럽에서는 상인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경제력이 강해지면서 패션과 관련된 여러 질서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감히 상류층의 옷을 큰 돈을 번 사람들이 따라 입었던 것이다. 재산에 비례하여 이런 튀는 행동들이 자주 등장했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법이 등장한다.

“13세기와 14세기에는 법으로 패션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만용을 부리지 못하도록 할 셈이었다. 이러한 조치에는 언제나 공통된 핵심 메시지가 있었다. 즉 네 주제를 알고 거기에 어울리는 옷을 입으라는 것이었다. 특권층은 경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1279년 프랑스의 왕은 귀족들이 미니버(다람쥐 모피)로 만든 윗도리는 네 벌 이상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옷감은 1야드에 30수(sou, 화폐 단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왕은 스스로만 군계일학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책 ‘북유럽 세계사’, 마이클 파이 저)

다행히 패션에 관한 이런 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법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법을 피해가며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구축했을 것이다. 패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도드라지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패션 산업은 영원하지 않을까? 디지털 시대에도 축소되지 않을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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